[구상 교수의 디자인 비평] 디지털 시대 감각의 기아 K8 페이스 리프트
기아 브랜드의 대형 승용차 K8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 등장했다. K8은 2021년 4월에 등장했으니, 그 사이에 3년 6개월이 지난 것이다. 기존의 준대형 승용차 K7의 풀 모델 체인지 개념의 차량으로 나온 모델이 K8이었기에, 차체 크기 5미터가 넘는 대형 승용차로 나온 것이었다.
페이스 리프트된 K8은 길이가 35mm, 너비는 5mm 늘어나고, 높이와 휠베이스는 그대로여서 전장, 전폭, 전고가 각각 5050mm, 1880mm, 1455mm에, 휠베이스 2895mm이다. 물론 10~20mm의 치수 변화는 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차체의 디자인 이미지가 기존 K8이 마치 다이아몬드 커팅 이미지의 기하학적 조형으로 이루어진 아르-데코(Art-Deco)풍 그릴에서 아방가르드(Avant-Gard)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급진적 이미지로 바뀌었다.
최근 기아에서 새로 출시되는 전기차 디자인이 어렵지 않게 연상된다. 게다가 최근 기아 차 디자인 특징인 수직형 베젤의 LED 헤드램프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그런데 수직형 헤드램프는 차량을 전면에서 보면 양쪽으로 물러나 있고 그 사이 슬림 그래픽 수평 크롬 몰드와 블랙 몰드 등이 자리잡고 있다. 범퍼 아래쪽 공기 흡입구는 수평 기조를 강조한 그래픽이어서 전체적인 앞모습 인상은 수평적 이미지다.
그런데 뒷모습은 상대적으로 적게 바뀌었다. 본래부터 수평적 그래픽의 리플렉터와 LED 렌즈, 양쪽에 마치 부메랑 형태의 수직형 램프가 있던 구성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면서 범퍼 아래쪽, 배기구를 연상시키던 디테일을 싹 밀어 없애고 마치 전기차 같이 배기구가 없는 디자인으로 바꾸었다. 본래의 수평적 이미지를 더욱 강조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앞 얼굴과 뒷모습이 모두 수평의 조형을 가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차체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앞모습은 대체로 공격적이거나 수직적인 조형을 강조해서 순간적으로 마주치더라도 강렬한 인상을 주려고 한다., 뒷모습은 뒷차에 의해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관찰되는 특성으로 인해 수평적이고 안정적인 인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실내 모습 역시 수평적 인상을 더욱 강조했다. 약간 사다리꼴 형태로 위쪽이 좁아지던 이전의 디스플레이 패널 형태에서 좌우로 긴 사각형 디스플레이 패널 형태는 수평형 스포크의 스티어링 휠과 조합돼 어딘가 자율주행 차량의 실내 같기도 한 이미지다.
페이스 리프트 이전의 인스트루먼트 패널과 스티어링 휠이 V 형태가 있는 3 스포크 형태이던 것에서 이제는 4 스포크 형태로 바뀌어 좀 더 수평적 단순성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내 색상 조합도 크러시 패드 상부를 어두운 톤으로 설정하고 트림 부분을 더 밝은 색으로 대비시켜서 경쾌함과 고급감을 강조했다. 두 색채 간의 대비를 높여서 마치 0과 1을 의미하는 흑백 톤의 조금 더 디지털 감성에 가까운 선명한 대비의 조합을 의도한 인상이다. 물론 어두운 톤으로만 이루어진 조합도 있는데, 장중한 느낌을 주면서 또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밖에 눈에 띄는 디테일은 메탈 질감의 페달이고, 가속 페달은 오르간 타입 이다. 수 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승용차 고속 질주에 의한 사고가 어이없게도 매달린 구조의 가속 페달 아래쪽에 매트가 끼어 발생한 것이었기에, 그에 대한 예방책이 바로 이처럼 페달의 아래쪽이 바닥에 고정된 오르간 타입 가속 페달이다. 실내에는 새롭게 변경 적용된 편의사양들이 눈에 띈다. 앞좌석의 중앙 콘솔은 커버가 양쪽으로 분할돼 좌우를 따로 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실상 이런 부분의 디테일은 차량의 본질적 부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제 사용성에는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차체 외부 디자인에서의 아르-데코 성향은, 예를 들면 C-필러의 쿼터 글라스에 적용된 삼각형 메탈 가니시에도 다이아몬드 패턴 장식 등으로 적용되었다. 페이스 리프트 이전의 라디에이터 그릴 역시 이런 감각이었지만, 지금은 기아의 전기차 EV 시리즈와 구분되지 않는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휠 디자인 역시 둥근 원 형태를 제외하면 모두 직선에 좌우 대칭 형태로 매우 전위적인 감각이다. 대개의 휠 디자인이 사방으로 대칭이어서 방향성이 없는 게 보통이지만, 최근의 기아 전기 차량의 디자인은 휠에서도 변화된 감각을 보여준다. 실제로 전기 동력 차량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술의 개념이고, 그것을 상징하는 새로운 조형으로 디자인되어 소비자에게 다른 경험과 가치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전기를 쓰지 않는 차들도 이제 모두 전기차처럼 디자인된다면 전기차의 차별성은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 물론 디지털 시대의 감성을 넣다 보면 유사한 인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 온 아날로그 감성의 차들이 모두 똑같지 않듯이 디지털 감성 역시 다양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새로 등장한 K8 페이스 리프트 모델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닌 대중 브랜드 고급 승용차의 접근법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중 브랜드 차는 브랜드의 통일성 보다는 개별 제품의 특징(product identity)을 강조해서, 소비자에게 각각의 차량이 그 차량만의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기아 브랜드에서 K8은 K8이어야 하는 것이지 기아의 EV 시리즈와 비슷한 디자인 경험을 제공한다면, 굳이 K8을 사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제품마다 구별되는 창의적 디자인으로 감성적인 가치를 새롭게 제시해서 경험과 가치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 기아 브랜드의 방향과 특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글 구상 자동차 디자이너,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