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에 선인장 농사 시작, 연매출 1억원 넘는 데 걸린 기간

다육식물 농가 홍해농장 이길재 농부 인터뷰
홍해농장의 이길재 대표. 이 대표 뒤에 있는 원형의 선인장의 나이는 그와 비슷하다. /더비비드

“30년은 키워야 꽃을 피우는 선인장도 있어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려야 하죠. 저는 삶을 선인장에게 배웠어요.”

포동포동 귀여운 다육식물의 외관의 비밀은 강인함이다. 다육식물은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잎이나 줄기 혹은 뿌리에 물을 저장한다. 고산지대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눈부신 생명력을 보여주는 비결이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꿈을 접고 가업을 택한 홍해농장의 이길재 대표(52)는 다육식물에게 인생을 배웠다. 남들 눈에는 낙원처럼 보이는 농장이 그에게는 감옥이자 지옥일 때가 있었다. 힘들 때마다 그를 지탱한 건 오랜 인고 끝에 피운 선인장 꽃이었다. 이 대표를 만나 선인장에게 배운 교훈에 대해 들었다.

◇고양시에 숨은 다육식물의 천국

홍해농장 온실의 전경. 총 1000여종의 다육식물을 기르고 있다. /더비비드
홍해농장의 온실에는 다육식물 뿐만 아니라 전시회에 출품하는 대형 선인장도 많다. /더비비드

이 대표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서 다육식물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영농조합법인 선인장연구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회장은 모임이나 박람회를 주최하고, 가입 농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관공서에 요청하는 역할을 한다.

홍해농장은 총 4000평(온실 면적 2000평), 21동 규모로 10cm 다육식물 화분 50만개를 수용할 수 있는 크기다. 이국적인 모양으로 사랑받는 선인장 역시 다육식물의 일종이다. 다만 선인장과 다육식물은 별도의 카테고리로 판매되고 있다.

홍해농장에서 기르는 식물의 종류는 총 1000여종으로, 사이즈가 작은 가정용 다육식물부터 전시회에 출품할법한 대형 선인장까지 총 망라하고 있다. 개중에는 그와 나이가 비슷한 대형 선인장도 있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에케베리아종. /더비비드

- 다육식물 입문 계기가 궁금합니다.

“수의사가 꿈이었어요. 수의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 중일 때 다육식물 재배 사업을 하던 어머니가 일이 힘들다며 일 손을 보태 달라고 했어요. 어머니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인장 마니아입니다. 취미로 개인 온실을 가꾸다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전업으로 돌렸죠. 어머니 일을 도우면서 보니 이 일이 비전이 있어 보였어요. 깊은 고민 끝에 본격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 어떤 비전이었는데요.

“수의학과는 매년 수천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어요. 경쟁률은 치열하고 희소성은 떨어졌죠. 반면 20살이었던 당시만해도 전국의 다육식물 농가는 200곳에 불과했어요. 200곳 중에서 10등 안에 드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어요. 당시 어머니 농장이 연매출이 약 4000만원이었는데, 제가 들어가면 1억원은 찍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했죠.”

◇10년 만에 넘은 매출 1억원의 벽

온실을 돌보고 있는 이 대표. /더비비드

매출 1억원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가 화훼업에 뛰어든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선인장을 비롯한 다육식물은 ‘기르는 사람만 기르는 특이한 작물’이란 인식이 강했다. 유통 중인 다육식물의 종류도 적었다. 수요가 적으니 다육식물을 취급하는 도매상이 거의 없어 판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설상가상 농가들 간 ‘가격 낮추기 경쟁’이 치열했다. 경쟁자가 적은 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앞이 캄캄했겠어요.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하늘이 도와줘야 했죠. 초반에 몇 번 크게 실패했습니다. 수해를 입고 금지옥엽 기른 식물들이 죄다 물에 잠겨 죽은 적이 있었어요. 그 해 연 매출이 1000만원이 채 안됐습니다. 농약을 잘못 사용해 다육이들을 다 죽인 적도 있어요. 농약사의 권고대로 했을 뿐인데, 제 손으로 망쳐서 억울했습니다. 알고 보니 다육식물에 맞춘 규정이 없어서 벌어진 참극이었어요. 그땐 농사에 뛰어든 걸 후회했습니다. 당장 관두고 싶었지만 청춘을 투자한 게 아까워 버텼어요.”

다육식물에 물을 주고 있는 이 대표. /더비비드

- 상상도 하기 싫은데요. 어떻게 대응했나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다육농가들과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야 이 산업이 성장하니까요. 혼자 알고 있는 기술은 발전이 없어요. 약 올바로 쓰는 법, 종자 퍼뜨리는 법, 예쁘게 키우는 법 등 온갖 크고 작은 노하우를 서로 적극적으로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농가들끼리 매일같이 토론을 했죠. 경기도기술원 한하의 선인장다육식물연구소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연구소에서 해외 사례, 교배 방법을 알려주면 바로 현장에 바로 적용해가며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 공부 못지 않게 판로 개척이 급했을 것 같은데요.

“선진지인 일본으로 견학을 갔습니다. 우리나라에 없는 걸 들여와서 국내 다육시장의 분위기를 전환할 구상이었어요. 농가 간 가격 후려치기의 굴레를 끊어내야 우리가 살 수 있으니까요. 한 서른 품종을 수입한 뒤 번식했어요. 당시 10cm 화분 하나의 도매가가 700원이었는데, 2000원을 불렀습니다. 희소성이 있으니까요. 처음엔 도매상들에게 미움을 받았어요. 비싸니까요. 1년 가까이 찾는 이 하나 없어 수입품의 가격을 낮출까, 이 사업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할 때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다육식물을 기르는 과정. 편편한 판에 잎을 기른 다음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옮겨 심는다. /더비비드

- 어떤 기적이었나요.

“알음알음 입소문이 났나봐요. 다육식물 마니아 분들이 직접 찾아와서 수입 식물을 사갔어요. 이전까지는 도매상을 통해서만 거래가 이뤄졌는데 동네 꽃집에서 직접 찾아와 물건을 사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30살이 넘었던 2000년대 초반에야 숙원이었던 매출 1억원의 목표를 이뤘습니다.”

- 그 이후에는요.

“해외 품종의 매력을 알게된 마니아들이 우리나라에 없는 걸 가져와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래서 일본, 호주, 미국, 멕시코 등 다육식물로 유명한 나라를 다니며 신품종을 들였습니다. 정말로 갖고 싶은 품종을 훔친 적도 있어요. 나중에 해외 농장주에게 이실직고했더니 이미 알고 있더군요. 수입 사업 전 100종 정도에 불과했던 국내 유통 다육식물의 종류는 이 시기를 거치며 4000종으로 급증했습니다.  신품종 개발도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수입 사업을 한 15년 가까이했는데, 그 시기 동안 말 그대로 다육식물 붐이 일었습니다.”

◇벼락맞은 수출 효자

이 대표는 이웃 농가를 돕기 위해 접목 선인장을 위판 중이다. /더비비드

다육식물 수입 붐은 수출 붐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 다육식물 마니아들이 한국인 특유의 섬세한 손길을 거친 다육식물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화훼 수출 1위 품목은 선인장, 2위는 다육식물이다. 선인장 수출액의 대부분은 접목 선인장인 ‘비모란’이 차지한다. 비모란이란 엽록소가 없어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등을 띠는 선인장으로 접목 선인장의 상단부에 배치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하지만 이 산업도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을 비껴가지 못했다. 국경 간 문턱이 높아지고 전세계적인 불황으로 수출량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설상가상 최대 수출 대상국 중 하나인 미국의 검역이 강화되면서 접목 선인장의 수출량이 급감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의 접목 선인장 수출량은 372만본이었던 전년 동기 대비 19.6% 감소한 299만본에 그쳤다. 2020년 718만본이 수출됐던 접목 선인장은 2022년 572만본으로 수출물량이 감소한 바 있다.

한국화훼농협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화훼농협은 지역 단위 농협과는 달리 전국구 단위로 운영된다. 농가들이 농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산지유통센터에서 공동선별을 하는 등 다방면으로 농가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가입 농가 중 선인장 농가의 중은 10% 안팎에 불과하지만, 접목 선인장 농가들이 처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방면으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접목 선인장을 만드는 과정. /더비비드

- 우리나라가 다육식물과 선인장 수출 강국인 줄 몰랐습니다.

“수입 사업이 활발할 때 교배를 통해서 신품종을 많이 만들었는데요. 이 신품종들이 수출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선인장연구소에서 만든 아이시그린이 크게 히트쳤어요. 하나에 50만원에 육박할 정도였죠. 최고 인기 품종은 꽃잎처럼 생긴 에케베리아입니다. 주로 일본, 대만, 미국, 중국, 대만, 유럽 등의 국가에 수출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충국 시장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저 역시 전성기일 때 매년 10억원에 가까운 수출액을 기록했습니다.”

- 그런데 검역 강화로 수출량이 줄었다고요.

“사실 접목 선인장에만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접목 선인장 사업을 접었는데요. 이웃 농가들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접목 선인장은 말 그대로 두 선인장을 접목한 개체를 뜻합니다. 알록달록한 비모란과 지지대 역할을 하는 삼각주에 붙인 형태가 보편적인데요. 미국에서 검역을 강화하면서 연결부 부분에 곰팡이가 핀 것을 잡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통상 한 컨테이너에 10만개의 비모란이 들어가는데, 올해만 7개 컨테이너가 적발됐어요. 올해만 총 70만개의 비모란이 폐기된 것이죠. 동료 농가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안타까워 현재 접목 선인장 일부를 위탁판매 하고 있습니다.”

선인장다육식물연구소에서 재배 중인 접목 선인장의 예쁜 모습. /더비비드

- 이런 위기 상황에서 화훼농협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고양화훼유통센터의 수출팀이 접목 선인장 농가를 대상으로 판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농가들이 미국, 호주, 일본, 캐나다 등으로 선인장을 납품할 수 있도록 해외 바이어를 발굴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일을 대행하고 있죠. 수출 전 공동선별 작업도 진행합니다. 선인장 공동선별 경력만 10년 넘은 베테랑들이 접목 선인장을 등급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대신합니다.”

- 타 업종처럼 인터넷 판매로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 않나요.

“B2C 사업은 하지 않습니다. 상도라는 게 있어요. 다른 농가도 마찬가지고요. 도매상과 화방이 죽으면 농가도 살 수가 없어요. 농가는 시골에서 농사에 집중하고, 꽃집은 도심에서 판매에 주력한 덕에 지금까지 함께 생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전자 상거래가 발달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망가지고 있는데요. 이 생태계에 타격을 주는 일은 피하고 싶습니다.”

◇선인장도, 인생도 ‘과유불급’

접목 선인장 사이에서 포즈를 취한 이 대표. /더비비드

‘선인장은 물을 싫어한다’는 통념과는 달리 선인장은 물을 좋아한다. 비 오는 날 물을 최대한 끌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막에서의 습관 때문에 선인장은 물이 닿는 족족 빨아들인다. 그렇다고 물을 마구잡이로 줘서는 안된다. 무한정 줄 경우 세포가 터져서 죽기 때문이다.

- 말 그대로 과유불급이네요.

“맞아요. 인생도 그렇더군요. 한참 잘 나갈 때 중국에 투자를 한 적이 있어요. 18억원을 대출한 뒤 총 5개 도시에 온실을 지었습니다. 사업이 워낙 잘 되고 있을 때라 장밋빛 미래만 보고 사업을 너무 크게 벌인 게 화근이었어요. 현실은 기대치를 따라주지 않더라고요. 개인적인 사유로 이 사업을 접었는데요. 아직까지 대출 이자를 내는 중입니다. 이때 빌린 18억원이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줬습니다. 물론 아직도 너무 아깝지만요.”

- 풍파를 많이 겪으셨네요. 다른 선택지에 대한 미련은 없나요.

“30살 전후만해도 아쉬움 투성이였습니다. 밖에 있으니 얼굴은 까맣고, 아내는 힘들어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좋은 곳도 못가고. 하우스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은 공감할 텐데요. 더우면 더워서 어디 못 가고 추우면 추워서 못 떠납니다. 여행으로 자리라도 비우면 모든 이해관계자가 피해를 보는 구조거든요. 지금은 잘 했다 싶습니다. 다른 이에게 일을 시켜도 될만큼 시스템화가 됐고, 심리적 여유도 생겼어요. 친구들은 모두 퇴직했지만 제게는 퇴직이 없습니다. 세상에 통닭집은 많지만 선인장 농가는 적으니 경쟁력도 있어요. 다시 돌아가도 농사를 할 것 같아요.”

이 대표는 자신과 선인장은 애증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더비비

- 대표님에게 선인장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애증의 관계죠. 어릴 적부터 봐와서 너무 싫은데 또 이거 없으면 못 살아요.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다육식물의 최고 매력은 키우는 방식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정석적인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일반 식물 시장과는 다르게 찌그러지거나 뒤틀릴수록 몸값이 높아져요. 이 시장을 키우는데 일조한 다육식물 마니아분들과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

선인장과 다육식물은 똑바른 모양으로 자라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뒤틀리거나 찌그러질수록 높게 평가받는다. /더비비드

- 다육식물 잘 기르는 팁 알려주세요.

“햇빛을 많이 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온도차가 많이 나는 환경에서 키워야 합니다. 다육식물의 원산지인 멕시코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일교차가 큰 지역이거든요. 게다가 다육식물은 더위에 취약합니다. 고온에 오래 노출되면 죽어요. 여름철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죠. 오로지 방에서만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육이를 들이지 않는 걸 추천합니다. 선인장은 키우기 쉽다는 인식이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살리는 게 아니라 예쁘게 키우는 게 관건이거든요. 정성을 들인만큼 모양이 나와요. 선인장과 다육식물 역시 뿌린만큼 거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