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원곡보다 유명한 번안곡들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번안곡이 등장한 건 대략 1960년대 이후다. 미8군의 영향으로 팝송에 익숙했던 가수들이 이를 번안해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송창식과 윤형주로 결성된 트윈폴리오는 번안곡으로 낸 독집 앨범이 크게 히트했다. 타이틀곡 ‘웨딩케잌’은 코니 프랜시스의 동명곡을 번안했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엔…”으로 시작되는 히트곡 ‘하얀 손수건’도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노래다.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트윈폴리오의 노래가 더 애절하다. 그만큼 두 사람의 화음이 완벽했다는 방증이다.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 돌고 돌아/ 정처 없이 이곳에서 저 마을로/ 기웃기웃 구경이나 하면서/ 밤이면 이슬에 젖는 나는야 떠돌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조영남이 가사를 붙인 ‘물레방아 인생’은 그룹 C.C.R의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가 원곡이지만 토속적인 노랫말이 압권이다. 조영남의 또 다른 히트곡 ‘내 고향 충청도’도 미국의 전통 민요 ‘오하이오의 강둑(Banks of Ohio)’이 원곡이다. 미국에서는 존 바에즈가 먼저 부르고, 올리비아 뉴턴 존이 불러 히트했지만 한국에서는 조영남의 노래가 됐다.
저작권법이 강화된 1980년대 이후엔 번안곡이 대폭 줄어든다. 그래도 원곡을 능가하는 노래는 끊이지 않았다. 나이트클럽을 휩쓴 방미의 ‘날 보러와요’는 닐 세다카의 노래 ‘원 웨이 티켓’을 번안하여 불렀다.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는 라트비아 가요이며,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는 영국가수 알 스튜어트의 곡이다.
1세대 걸그룹 S.E.S(사진)가 부른 ‘드림스 컴 트루’는 핀란드 출신의 여성듀엣 나일론 비트의 곡을 번안해서 불렀다. 원곡을 능가해 S.E.S의 대표곡이 됐다. 번안곡의 성공 여부는 ‘현지화’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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