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내신 1등급 아니면 끝…학생 1만명 학교 떠나

유주연 기자(avril419@mk.co.kr) 2026. 6. 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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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연 사회부 차장

올해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작년 고교 입시를 앞두고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조언은 "학생 수가 많은 학교를 고르라"는 것이었다. '내신 등급' 때문이었다. 지난해 고1부터 처음 적용된 내신 5등급제는 상위 10%까지 1등급, 34%까지 2등급을 부여한다. 등급 구간이 넓어져 부담이 줄어든 것 같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2등급 범위가 과거 9등급제 시절의 3등급(누적 23%)을 지나 4등급(누적 40%) 문턱까지 늘어나면서 대입 변별력이 사실상 상실됐기 때문이다. 상위권 대학을 노리는 학생들에게 이제 '1등급에서 밀려나면 끝'이라는 공포감이 극대화됐다. 입학과 동시에 자퇴를 고민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지난해 일반고 1학년 학업 중단자가 사상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 고교 문턱을 넘은 지 1년도 안 돼 학교를 떠난 학생이 1만450명에 달한다. 학업 중단에는 자퇴, 퇴학, 재적 등이 포함되는데 자퇴가 대부분이다. 단순한 부적응 탓이 아니다. 학업 중단 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학군지에 몰려 있다. 첫 학년 시험에서 원하는 등급을 놓치는 순간 자퇴까지 고민할 만큼 큰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아들의 학교에서도 입학한 지 서너 달 만에 한 반에 몇 명씩 학교를 떠났다는 얘기가 들린다.

치열한 내신 경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적성과 진로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게 하겠다던 고교학점제가 내신 5등급 상대평가와 결합하면서 취지가 뒤틀려버린 데 있다. 우리 아이들은 폭넓은 지식을 탐색하기보다 선택자 수를 따져 가며 등급에 유리한 과목을 고르는 눈치작전에 내몰리고 있다. 대학은 급변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춰 학과 간 장벽을 허물고 무전공 선발을 늘리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일찍 진로를 확정해 과목을 선택하고 학생부를 채우라고 다그치는 것도 아이러니다.

교사들도 큰 우려를 표한다. 서울의 한 교사는 "고등학생 때 진로를 결정해 특정 과목을 이수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방식"이라며 "세상에 필요한 공통 과목을 넓고 깊게 배워 아이들이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주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토로했다.

기술 혁신이 사회를 뒤바꾸고 있는데 우리 교육의 시계는 멈춰 있다. 한 명문 사립대 교수는 "우리 학교 경영대 졸업생의 절반이 취업을 못 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문과 최상위권의 가장 확실한 안전판으로 여겨지던 경영학과마저 AI 파도에 흔들리는 시대다. 세상이 이토록 격변하고 있는데, 지금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준비시켜 주고 있는가.

[유주연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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