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타격 추적 데이터 공개, '좋은 스윙은 무엇인가'

오타니 쇼헤이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메이저리그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발전했다.

2006년 'PITCH f/x'의 등장으로 투구 추적이 시작되면서 구속 혁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트랙맨'과 '호크아이'는 공의 회전수와 타구의 속도, 각도 등을 제공했다. 막연하게 '공 끝이 좋다'는 공이 '상하/좌우로 얼마나 움직이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됐고, '잘 맞은 타구' 역시 '속도와 각도'로 구체적 해석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메이저리그는 또 다른 미지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른바 타격 추적 데이터(Bat-tracking data)다. 이를 통해 스윙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들이 드러났다.

투수들은 더 빠른 공을 던질수록 유리하다. 기록도 이 사실을 증명한다. 90마일 공과 97마일 공의 성적이 다르다. 타자들은 빠른 공을 상대할수록 타격 성적이 떨어졌다. 강속구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투수에게 유리한 공은 분명했다.

리그 평균 타율 / 장타율 비교

90마일 이하
2022 [타율] .231 [장타율] .379
2023 [타율] .236 [장타율] .398
2024 [타율] .230 [장타율] .370

97마일 이상
2022 [타율] .228 [장타율] .346
2023 [타율] .226 [장타율] .350
2024 [타율] .204 [장타율] .288


스윙도 마찬가지다. 강한 타구를 만드는 건 빠른 스윙이 더 용이하다. 스카우트들이 타격을 평가할 때 '배트 스피드가 빠르다'는 표현을 괜히 쓰는 게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안 어림짐작만 했던 배트 스피드가 숫자로 구현됐다. '빨라 보인다'에서 '진짜 빠르다'로 바뀐 것이다.

이번에 <스탯캐스트>가 공개한 타격 추적 데이터는 6개 항목이다. 앞서 언급한 '배트 스피드'를 비롯해 여기서 파생된 데이터들을 소개한다.

배트 스피드(Bat speed)
배트 스피드 측정은 방망이의 스윗 스팟에 맞힌 것을 기준으로 한다. 방망이 헤드에서 6인치 정도 떨어진 부분이다. 좋은 타구를 생산할 수 있는 중심부로 여겨진다. 배트 스피드의 상위 90%를 기반으로 구한 값이며, 리그 평균은 72마일이다.

2024 평균 배트 스피드 상위 (마일)

80.6 - 지안카를로 스탠튼
77.7 - 오닐 크루스
77.0 - 카일 슈와버
76.9 - 맷 채프먼
76.7 -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76.7 - 크리스토퍼 모렐

지안카를로 스탠튼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스탠튼의 배트 스피드가 빠르다는 건 예상할 수 있었다. 타구질이 차원이 다르다. 통산 115마일 이상 타구가 188개에 달한다. 2위 애런 저지(76개)와 3위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54개) 4위 오타니 쇼헤이(31개)를 합친 것보다 많다.

배트 스피드는 타구 속도와 밀접하다. 스윙이 빠르면 맞힌 타구도 빠르다. 스윗 스팟에 제대로 맞은 타구는 타구 속도가 1.2마일 가량 증가한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배트 스피드 1마일 차이는 비거리 약 6피트를 좌우한다. 홈런과 뜬공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거리다. 만약 배트 스피드를 조금이라도 끌어 올린다면 한 끗 차이의 결과는 굉장히 커진다.

배트 스피드는 투수의 구속이다. 각자 타고난 특성이 있다. 적합한 스타일을 찾아서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구속이 느린 투수는 힘으로 타자를 제압하기 힘들지만, 제구를 앞세워 타자를 돌려세운다. 저마다의 생존 방식이 존재한다.

배트 스피드도 방망이를 비교적 천천히 돌릴 경우 파워보다 정확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흔히 정확성이 높은 타자를 두고 "배트 컨트롤이 뛰어나다"고 말하는데, 배트 스피드가 느리기 때문에 스윙을 교정할 시간이 생긴다. 반대로 빠르면 제어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24 평균 배트 스피드 하위 (마일)

62.4 - 루이스 아라에스
64.4 - 스티븐 콴
64.4 - 니키 로페스
65.4 - 저스틴 터너
65.5 - 윌머 플로레스


배트 스피드가 가장 느린 선수는 루이스 아라에스다. 아라에스는 절대 나쁜 타자가 아니다. 지난 2년간 리그 타율 1위였고, 2019년 이후 통산 2000타석에 들어선 118타자 중 타율 1위에 빛난다(0.324). 아라에스는 배트 스피드가 느린 대신 공을 정확하게 타격한다. 현재 아메리칸리그 타율 1위 스티븐 콴(0.353)도 아라에스와 비슷한 유형이다.

배트 스피드별 타구 성적 (이미지 - ESPN)

거듭 강조하지만, 배트 스피드는 절대적인 지표가 아니다. 무조건 '빠르면 좋고, 느리면 나쁘다'로 정의할 수 없다. 다만, 위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 배트 스피드가 빨랐을 때 맞힌 타구들의 결과가 더 빼어났다. 이벤트별로 실제 득점 가치에 따른 점수를 부여하는 wOBA(가중출루율)도 배트 스피드 80마일 이상 0.419, 70마일에서 79마일 사이 0.322, 69마일 이하는 0.205로 차이가 두드러졌다.

빠른 스윙률(Fast-swing rate)
배트 스피드가 매겨진 수십 만개의 타구를 따졌을 때 홈런이 나온 배트 스피드는 75마일 정도다. 그래서 배트 스피드가 빠른 스윙도 75마일을 근거로 삼는다. 타구 속도에서 강한 타구(hard-hit)를 95마일 이상으로 보는 것과 유사하다.

이 수치는 당연히 기존 배트 스피드가 빠른 타자들이 높다. 배트 스피드 하위에 있는 아라에스와 콴은 75마일 이상 배트 스피드를 점유한 적이 없다. 반면, 스탠튼은 빠른 스윙률이 무려 98%에 이른다. 스탠튼에 이어 카일 슈와버가 73.9%로 2위다. 슈와버도 2022년 46홈런, 2023년 47홈런을 때려낸 홈런 타자다.

평균 배트 스피드에서 스탠튼 다음으로 빨랐던 오닐 크루스는 빠른 스윙률이 73.5%다. 전체 3위지만, 스탠튼의 빠른 스윙률과 비교하면 다소 편차가 있다. 스탠튼이 꾸준하게 빠른 배트 스피드를 유지한 것과 달리, 크루스는 배트 스피드가 오락가락했다. 이는 크루스가 타석에서의 접근법을 상황마다 다르게 가져갔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정타율(Squared-up rate)
뉴욕 메츠 피트 알론소는 "배트 스피드가 중요해도 최우선 과제는 스윗 스팟에 정확히 맞히는 것이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아무리 배트 스피드가 빨라도 스윗 스팟에 닿지 않으면 위력은 반감된다. 이에 타격 추적 데이터는 스윗 스팟에 맞힌 정타율도 내세운다.

모든 스윙은 투수가 던진 공의 구속과 그에 대응한 배트 스피드를 고려했을 때 최대로 얻을 수 있는 타구 속도가 계산된다. 타구 추적 데이터를 주관하는 마이크 페트리엘로는 신시내티 엘리 델 라 크루스의 시즌 첫 홈런을 예로 들었다.

델 라 크루스는 93.6마일 공을 77.3마일의 배트 스피드로 받아쳤다. 여기서 기대되는 최고 타구 속도는 114.8마일이다. 그리고 델 라 크루스는 112.3마일의 타구를 만들어냈다. 최대값의 98%에 해당한다. 그러면 델 라 크루스의 정타율은 98%로 기록된다.

루이스 아라에스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정타율은 배트 스피드가 느려도 높게 나올 수 있다. 89마일 공을 66마일 배트 스피드로 받아쳤을 때 기대되는 최고 타구 속도가 100마일이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98마일 타구가 나왔다면 이 타자의 정타율도 98%다. 실제로 지난 번 아라에스가 선보인 타구다.

<스탯캐스트>가 발표한 정타 기준은 80%다. 최대값에서 80%에 해당하는 타구 속도를 보여야 스윗 스팟에 맞힌 정타가 됐다고 본다.

2024 최다 정타 순위

90 - 루이스 아라에스
88 - 마커스 시미언
83 - 후안 소토
83 - 호세 라미레스
82 - 애들리 러치맨


가장 많은 정타를 친 타자는 '타격의 달인' 아라에스였다. 배트 스피드는 느리지만, 스윗 스팟에 잘 맞힘으로써 위협적인 타구를 양산했다.

눈여겨 봐야 될 선수는 후안 소토다. 소토는 평균 배트 스피드가 76.1마일로 전체 10위, 빠른 스윙률이 66%로 전체 7위였다. 그런데 수준급 타격 기술이 요구되는 정타도 세 번째로 많았다. 배트 스피드도 빠르면서 스윗 스팟에 맞히는 타구가 많았다는 건 소토가 왜 '타격 천재'로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토와 더불어 순위권에 있는 호세 라미레스(71.2마일)와 애들리 러치맨(69.3마일)은 모두 배트 스피드에서 리그 평균 아래였다.

최상급 스윙(Blasts)
우리는 타구 속도와 발사 각도가 이상적인 타구를 '배럴(Barrels)'이라고 부른다. 최상의 조합이 이뤄지면서 <타율 0.500, 장타율 1.500 이상>을 기대한다.

스윙도 이상적인 스윙이 있다. 배트 스피드도 빠르고, 정타율이 높다면 최상급 스윙으로 간주한다. 그만큼 충족하는 기준이 어려운데, 배트 스피드와 정타율의 합이 164 이상이다. 배트 스피드가 80마일이면 정타율이 84%는 나와야 하는 것이다. 배트 스피드가 78마일이면 정타율은 86%는 넘어야 한다. 두 지표의 평균이 82가 나오는 건 매우 힘들다.

2024 최상급 스윙 최다 타구

58 - 윌리엄 콘트레라스
50 - 후안 소토
46 - 오타니 쇼헤이
46 - 바비 위트 주니어
45 - 살바도르 페레스

후안 소토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소토는 이 부문도 상위권에 있다. 1위 윌리엄 콘트레라스는 평균 배트 스피드가 74.2마일, 정타도 80개로 전체 6위였다. 지난해 왜 포수 실버슬러거를 받았는지 이해된다. 역시나 각 항목마다 높은 위치에 있었던 오타니도 최상급 스윙에 의한 타구가 상당히 많았다.

스윙 길이(Swing Length)
스윙 직후부터 공을 가격하는 순간까지의 경로다. 일반적으로 스윙 길이가 길면 파워형, 짧으면 콘택트형이다. 스탠튼의 스윙 길이가 8.4피트, 아라에스는 5.9피트다. 메이저리그 평균 스윙 길이는 7.3피트로, 이 기준에 의해 양분되는 기록을 보면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스윙 길이가 평균보다 짧으면 타율, 평균보다 길면 장타율에 강세를 보였다.

평균 대비 짧은 스윙 길이
[타율] .258 [장타율] .359 [헛스윙률] 19%

평균 대비 긴 스윙 길이
[타율] .235 [장타율] .422 [헛스윙률] 30%


나쁜 스윙(Swords)
타자가 잘못된 판단으로 한 스윙이다. 어정쩡한 스윙 후 방망이가 들린 모습이 검을 든 동작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LA 에인절스 잭 네토가 13번으로 가장 많이 포착됐다.

이 기록은 투수를 찾아봐야 한다. 투수가 위력적인 공을 던졌을 때 나쁜 스윙이 자주 나오기 마련이다. 공교롭게도 네토의 팀 동료 패트릭 산도발이 총 10번의 나쁜 스윙을 유도했다. 이어서 크리스 세일과 루이스 세베리노가 각각 9번을 차지했다.

<스탯캐스트>의 스윙 데이터는 올해부터 집계한 것이다. 이전 데이터는 테스트용으로 수집됐다. 이번 시즌도 아직 초반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 그래야 보다 유의미한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

타자들은 이 데이터를 토대로 배트 스피드를 어떻게 늘릴지 고민할 것이다. 지금껏 베일에 싸여 있던 스윙 데이터가 메이저리그의 트렌드를 선도할지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