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디우스 실내 그대로 베끼고 외관만 바꿔서 출시했다가 폭망한 미니밴
바람 잘 날 없던 쌍용차는 2010년 말 인도의 자동차 기업 '마힌드라&마힌드라'에 인수되어서도 회사 사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활을 걸고 만든 '코란도C'가 쟁쟁한 경쟁차들 사이에서도 준수한 판매실적을 올렸고, 픽업트럭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등 판매량이 증가하긴 했지만, 그 사이 경쟁차들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회사가 안정을 취할 새도 없이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었죠.
당연히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좋은 상품성으로 무장한 신차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쌍용차의 개발 여건은 경쟁업체와 비교하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라인업을 동시에 개발할 수 없었고 현지에서 SUV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던 모기업 마힌드라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었고요.
막대한 개발비가 투입되는 만큼 쌍용과 마힌드라 두 회사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에 무게가 실렸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접근성과 활용도가 높은 소형 SUV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그 프로젝트로 나온 게 티볼리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었죠.
당연하게도 다른 라인업의 사정은 녹록치 못했는데요. 쌍용의 자존심이었던 체어맨의 후속조차 불투명해진 상황에 주인공 '로디우스' 역시 무사할 리 없었지만, 의외로 이 차는 살아남았습니다. 로디우스의 단종은 단순히 '라인업' 하나가 아닌 'MPV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RV 전문회사 쌍용 입장에서는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원래라면 풀모델 체인지가 이루어져야 맞지만 급한대로 각종 사양을 개장했고, 그 중에서도 전작의 가장 큰 패인이었던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손봤습니다. 여기에 앞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던 '액티언 스포츠'의 케이스를 발판 삼아 이번에도 한국인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 있던 그 이름, '코란도'를 붙이기로 결정했죠.
이렇게 또 하나의 코란도, '코란도 투리스모'가 2013년 출시됐습니다. 차량의 성격에 맞게 이탈리아어로 '여행'을 뜻하는 '투리스모'를 서브네임으로 붙였는데 흔히 말하는 GT(그란투리스모'의 그 '투리스모'죠. '렉스턴'이나 '체어맨 투리스모'로 출시됐어도 좋았을 법했지만, 이 모델이 가진 상품성으로는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고급차 이미지를 되려 깎아내릴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외관은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었지만 범퍼와 램프, 휠 등 비교적 수선이 용이한 부분뿐만 아니라 사이드 캐릭터 라인, 필러 디자인 등 상당히 많은 부분을 변경해 직전 모델의 인상을 말끔하게 지워낸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주로 곡선을 사용하면서 차분하지만 유약한 이미지가 있었던 로디우스와 달리 힘 있는 선과 면을 활용해 쌍용차 특유의 단단하고 강인한 인상으로 거듭났고, 장의차 같다며 혹평받았던 D필러도 각을 세워 터프해진 얼굴과 조화를 이뤘습니다. 소폭 커진 알루미늄 휠과 전용 에어댐 패키지를 옵션으로 마련해 무게감을 덜어낸 것도 좋은 부분이었죠. 전반적으로 전작에서 추구했던 크로스오버 MPV에 한 발짝 더 다가간 분위기였어요.
다행히 전문 매체와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실제로 판매량으로 증명이 됐지만, 이번에도 '멋진 디자인인가?'에 대해서는 다들 말을 아꼈습니다. 안 그래도 큰 차에 직선 위주의 디자인을 덮어 씌우다 보니 겉으로 보기에 차가 무겁고 둔해 보였고, 휠 구경을 키우긴 했지만 비대한 몸집에 비해 여전히 작은 바퀴로 비례감과 균형미가 떨어져 보이는 등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프로젝션 램프가 양 끝에 몰려있는 차들은 사시 같아 보여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차도 그렇죠.
그래도 외관은 누가 말 안 해주면 로디우스로 만들었다는 걸 모를 정도로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실내였습니다.
예산 몰아주기에서 외장 디자인팀이 이겼는지 전작인 로디우스의 실내를 거의 그대로 옮긴 건데요. 물론 매번 스리슬쩍 달라지는 스티어링 휠과 버튼 시동 스마트키, 열선 스티어링 휠, 7인치 내비게이션, 운전석 앞에 '디지털 클러스터'를 추가하는 등 전작에서의 지적을 수용하고 트렌드에 맞는 편의 장비를 보강해 편의성을 더하고자 노력했지만, 가운데 자리 잡은 계기판의 임팩트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마저도 뒷좌석은 아예 달라진 부분이 없었죠. 초기에는 11인승만 판매되면서 비좁은 4열 시트와 '스윙 도어'로 인한 단점 역시 전작과 그대로 공유했어요.
이번에도 1년 뒤 출시된 3세대 카니발이 전작 대비 모든 부분이 크게 개선되면서 비교당해야만 했고, 특히 올 뉴 카니발은 활용도가 낮은 4열을 아예 트렁크 바닥으로 수납할 수 있게 했지만, 코란도 투리스모는 로디우스의 설계가 그대로 반영된 탓에 등받이만 접히도록 한 것 역시 경우에 따라 단점으로 작용했습니다.
파워트레인은 직전 모델 '로디우스 유로'와 동일한 2.0L 디젤 단일 사양으로 한국형 디젤 엔진을 표방하며 실용 구간 토크를 강화해 일상 주행에 최적화했다는 그들의 말처럼 낮은 배기량에도 불구하고 저 RPM에서부터 충분한 토크를 선사했기에 우려와는 달리 괜찮은 가속감을 제공했습니다.
단, 이 차의 존재 목적, 여러 명의 승객을 태우고 4바퀴를 굴리는 상황에서는 부족한 힘에서 오는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났어요.
출력은 아쉬웠지만 승차감만큼은 여전히 경쟁력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전작의 에어 서스펜션까지는 아니었지만 서브 프레임과 서스펜션 등 설계 일부를 기존 '체어맨'에서 '체어맨 W'의 것으로 업그레이드해 더욱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제공한 것이 특징이었어요. 덕분에 신형 카니발이 뒷좌석 탑승객에게 멀미를 유발하는 공명음 이슈로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꽤 많은 소비자들이 코란도 투리스모를 눈여겨볼 정도였죠.
비장의 무기도 내놨는데요. 바로 하이루프 리무진 '코란도 투리스모 샤토'였습니다. 카니발 하이리무진에 대응하는 샤또는 루프를 확장해 탑승객 거주성을 크게 높인 특별 사양으로 후륜구동 설계로 바닥이 높아 약점으로 지적받던 뒷좌석 공간을 개선하고 각종 고급 편의 사양을 더한 모델이었습니다. 10년 전 선보인 'C.E.O 엔터테인'과 '로디우스 리무진' 쇼카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모델이었죠.
스마트폰 미러링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감상이 가능한 22인치 LED 모니터와 고출력 JBL 사운드 시스템, 대형 룸 램프, 화장품이나 음료를 차게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 같은 편의장비를 갖추고 측면 커튼, 스웨이드 내장재 등 고급 소재를 둘러 호화롭게 구성했습니다.
번쩍이는 크롬 휠과 일체감 있게 디자인된 확장 루프가 코란도투리스모의 거친 디자인과 묘하게 잘 어울렸고 컬러에 따라 고급차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어요. 뿐만 아니라 리무진급 호화 사양이 필요 없는 분들을 위해 넉넉한 공간감만을 누릴 수 있는 '하이루프' 모델 역시 별도로 제공해 선택지를 넓힌 것도 좋은 부분이었고, 특장점인 4륜구동까지 빠짐없이 갖추면서 4륜구동 미니밴 리무진이라는 독보적인 모델로 활약했죠.
현대차가 스타렉스 리무진에 4륜구동을 넣으면서 대응한 와중에도 나름 의미 있는 판매량을 달성했습니다. 나중에는 올 뉴 카니발을 참고해 일체형 루프박스를 탑재해 공간 활용성을 높이고 리무진 모델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웃도어' 모델을 추가하기도 했죠.
한편 2014년 진행된 연식 변경에서는 각종 편의 사양을 확대 적용한 9인승 모델이 추가됐습니다. 2013년 하반기 11인승 이상 승합차에 110km/h 이상 속도 제한 장치가 의무화되면서 자가용으로 11인승 모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고 경쟁 차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죠.
속도 제한 장치가 장착되기 이전에 출고를 서두르는 판에 얼떨결에 반사 이익을 보기도 했고, 법 개정 이전에 출고된 차들과 속도 제한 장치가 장착되지 않은 차량의 중고차 값이 일시적으로 뛰기도 했어요.
안전한 이동에 도움이 되는 조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쉽다고 느끼는 분들 많았죠. 타보신 분들 아실 거예요. 110km/h만 넘어가면 맥이 탁 풀리는 그 허탈한 느낌 말이죠. 덕분에 승합차 혜택은 받지 못하지만 2종 보통 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데다 속도 제한 없이 버스 전용차로 이용까지 가능한 9인승 모델을 고려하는 고객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에 더해 2015년 하반기에 출시된 '뉴 파워' 모델은 꽤나 많은 부분이 달라졌는데요. 새로운 휠 디자인과 USB 충전 포트, 전방 카메라, 크루즈 컨트롤 스위치를 포함한 스티어링 휠 등 각종 사양을 업그레이드했고 'EURO 6 배출가스' 기준에 대응해 배기량을 키워 출력을 높인 2.2L 디젤 엔진에 G4 렉스턴에 쓰인 '벤츠 7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려 성능을 개선했습니다. 눈에 띄게 강력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전보다는 한결 나아진 동력 성능을 체감할 수 있었고 정숙성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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