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일 '아파트'와 로제 '아파트'가 함께… 세대·성향 넘은 '평화 집회'

서현정 2024. 12. 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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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폐기된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엔 1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운집했다.

이곳에선 이후 매일 저녁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지만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이 '대통령 퇴진' 목표를 공유하며 세대 간 갈등 요소가 희미해진 데다 2016년 탄핵 정국 당시 '비폭력 집회'의 힘을 경험한 덕에 평화 시위가 정착됐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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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자 구분 사라져… 정치의 생활화"
2016년 탄핵 후 '민주시민' 학습 효과
9일 서울 여의도 일대에 모인 시민들이 탄핵안 투표를 거부한 국민의힘을 규탄하러 중앙당사로 행진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친구들과 놀 때 썼던 부채에 '탄핵' 스티커 붙여서 가져왔어요. 집회 현장에서 여러 세대랑 합심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촛불집회 참가자 이모(29)씨-

"1980년대 후반 학창시절 집회 땐 경찰의 폭력 진압이 겁났거든요. 이번 집회는 민중가요도 부르고 재밌네요. 철없다고 생각한 젊은이들도 와서 보니 대견해요." -촛불집회 참가자 김모(56)씨-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폐기된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엔 1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운집했다. 이곳에선 이후 매일 저녁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지만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이 '대통령 퇴진' 목표를 공유하며 세대 간 갈등 요소가 희미해진 데다 2016년 탄핵 정국 당시 '비폭력 집회'의 힘을 경험한 덕에 평화 시위가 정착됐다는 분석이다.

1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응원봉 모양으로 생긴 집회 도구가 판매되고 있다. 강예진 기자

10일 오후 6시부터 시작하는 촛불집회 30분 전부터 국회 앞에선 가수 이적의 '하늘을 날다', 걸그룹 트리플에스 '걸스네버다이(Girls never die)'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전날 시위 때도 트로트 '아모르파티', 댄스곡 '위플래시'와 '빙고' 등 세대를 넘나드는 유행곡이 흘러나왔다. 자녀 셋을 둔 김모(56)씨는 "예전 시위는 비장하고 결연했는데 이번 집회는 축제 같다"며 "추위를 잊고 즐겁게 자리를 지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연령, 성별, 정치적·성적 지향의 차이를 넘어 한데 섞인 모습도 특징이다. 윤수일의 노래 '아파트'와 아이돌 가수 로제의 '아파트'가 섞인 노래에 고교생들은 리듬에 맞춰 춤을 췄다. 4·19혁명 때도 시위 현장에 있었다는 박모(81)씨는 "우리가 피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청년들과 함께 지키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보수의 텃밭인 TK(대구·경북) 출신으로 7일 국회 앞으로 온 김상천씨도 "일자리 없는 청년도, 차별에 고통 받는 소수자도 비상계엄으로 깨달은 교훈을 잊지 말고 거리로 나서자"고 외쳤다.

9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농수산물시장사거리에서 열린 '내란주범 윤석열 즉각 체포! 윤석열 탄핵! 국민의힘 해체! 사회대개혁 쟁취! 인천시민촛불' 집회에서 시민들이 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뉴시스

며칠간 이어진 집회에선 작은 물리적 충돌도 막으려고 애쓰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7일 탄핵안 가결이 좌절된 뒤 일부 참가자들이 국회 정문을 넘으려 하자 시민들이 "평화 시위" 구호를 외치며 제지했다. 9일 촛불문화제에선 경찰이 도로 위 시위는 곤란하다고 하자 주최 측과 시민들이 인도로 이동해 집회를 이어갔다. 대규모 집회에서 시민과 공권력의 충돌을 막기 위해 나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집회 시위 지원단의 신하나 변호사는 "집회 인원이 몰리니 경찰 인력을 더 배치해달라고 요청했을 뿐 평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의식이 굉장히 성숙해진 것 같다"고 했다.


'정권퇴진' 기조 아래 하나 돼

전문가들은 정치 집회가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은 걸 평화 시위 정착 배경으로 꼽았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생업을 포기한 채 투쟁하며 앞서는 사람과 뒤에서 지지하는 사람의 구분이 사라지고 집회를 생활의 일부로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를 제대로 바꿔보자는 열기가 갈등 요인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는 해석도 있다. 참여연대와 전국민중행동은 이번 주 내내 펼쳐질 범국민촛불대행진을 예고하며 '평등한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 안내문을 배포했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등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대상화하는 말을 하지 말고, 신체 접촉을 하지 말자"는 내용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시민들이 광장에서 갈등과 분절을 녹이는 용광로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때의 학습효과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2016년 이후 우리는 국민이 참여하면 공권력이 무릎을 꿇는 경험을 했다"며 "성숙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공간에서 대통령보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헌정 질서를 더 제대로 실천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봤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우리 민주주의는 이런 위기에서 더 견고해진다는 걸 시민들이 보여주고 싶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문지수 기자 door@hankookilbo.com
강예진 기자 ywh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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