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 현장을 이끄는 심의(心醫)" [Den이 만난 명의]

조회 2982025. 2. 10.
지방과 서울을 잇는 의료 허브로서 양평병원은 지역사회 보건의료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양평병원에서 지역의료 서비스의 중심이 되는 인물, 심지훈 병원장을 만났다.

지역 병원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환자를 돌본다. 단순한 진료 이상으로,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고 불안을 덜어주는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 병원 의료진은 의료 전문가를 넘어 희망의 상징이자 환자 의지의 버팀목이 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양평병원 심지훈 병원장은 지역 환자를 돌보는 정형외과 전문의이자 누구보다 진심으로 환자에게 다가가는 심의(心醫)다.

그는 환자의 신뢰와 만족이 최우선이라는 철학으로 진료에 임한다. 대퇴골 골절, 척추질환 등 고령 환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여러 질환을 해결하며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또 척박한 지역의료 현장에서도 선구자 역할을 자처한다. 2차 병원 최초로 ‘씽크’ 시스템을 도입해 고령 환자들의 상태를 간편하고 효율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지역의료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정부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응급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한다.

양평병원 병원장으로서 그는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고 환자와 지역사회에 헌신하며 지역의료가 가야 할 길을 따라 묵묵히 걷고 있다.


ⓒ Den
Profile
심지훈 병원장은...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로 3년간 근무했다. 2010년 정형외과 레지던트를 시작해 2014년 전문의를 취득, 척추 분과 전임의로 1년간 근무했다. 2016년 존경하던 선배를 따라 양평병원에 온 뒤 어느새 10년째 근무하고 있다.
공중보건의 당시 해양수산부 산하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의료 대원으로 활동했으며, 2016년 KeSPA가 주최하는 e-스포츠 소양 교육에 자발적으로 참석해 프로게이머들의 건강을 챙겼다.

병원장로서 업무와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진료를 병행한다. 바쁘지 않나?

병원은 의료법인 양평병원 재단에 소속되어 있어 대표 이사장이 운영 전반을 관리한다. 병원장으로서 나는 병원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다. 정형외과 전문의로서는 수술 환자를 위주로 진료한다.

어느 조직이든 중간관리자가 가장 힘든 법이지 않나?

부정할 순 없다.(웃음) 양평병원이 외형적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직원이 100명 이상인 데다 입·퇴원 환자 수도 많다. 가장 어려운 점은 구인이다. 간호사, 행정 직원, 의사 모두 구하기가 어렵다. 2~3년 전에는 내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두 달 동안 내과 진료를 하지 못한 적도 있다. 그때 정말 괴로웠다. 요즘은 신규 전문의가 적고 개원을 많이 하다 보니 봉직의 구인난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양평에서 근무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대부분 첫 직장의 근무 이유는 거창하지 않은 것 같다. 나 또한 그렇다. 전임의를 마치고 여러 병원에서 제의를 받았지만, 결국 존경하던 선배를 따라 양평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 양평병원 전임 병원장이 의국 선배였다. 그와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양평병원으로 왔다.

지역 병원의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생활이 궁금하다

대한민국 전체가 고령화사회로 진입했지만, 양평 지역은 60~70대 인구가 가장 많다. 10~30대 인구는 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인구구조가 특이하다. 또 농사짓던 분이 많고,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가 적다. 그래서 퇴행성 질환을 오래 앓은 환자와 고령의 골절 환자가 대다수다. 대학병원과 전임의 시절에도 고령 환자를 진료했지만, 지금은 나이가 더 많은 환자를 본다. 심지어 100세가 넘는 환자를 수술하기도 했다. 고령 환자를 수술할 때마다 과연 수술이 맞는 선택인지 고민할 정도다.

고령 환자가 많은 만큼 진료 자체가 조심스러울 수 있겠다

의외로 가장 힘든 부분은 환자에게 설명하는 일이다. 고령 환자가 많은 만큼 최대한 상세하고 쉽게 설명하려고 하지만 귀가 어둡거나 인지능력이나 이해력이 부족한 환자도 적잖이 마주하게 된다. 소리를 높여 두세 번 반복 설명을 해도 되묻는 경우가 많다. 특히 꼭 설명이 필요한 치료나 다음 단계의 치료가 필요할 땐 보호자를 동반하길 권유한다.

젊은 환자를 진료할 때와는 전혀 다른 고충을 겪는 셈이다

그렇다. 그래도 어르신들이 의사의 말을 신뢰하고 잘 들어주신다. 환자들의 그런 태도를 볼 때마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진료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환자들이 보내주는 이런 신뢰와 존중 덕분에 더 열심히 진료할 수 있다.

추상적 표현이지만 ‘인간적 진료’를 추구하는 것 같다

스스로 친근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수도권 병원의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수도권과 지방의 병원 진료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수도권 병원은 일단 환자 수가 많은 만큼 빠르고 명료한 진료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환자도 그걸 원한다. 반면에 지방 병원은 아무래도 노인 환자가 많다 보니 사적 대화도 섞어가며 친절하게 접근해야 한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진료에도 도움이 되나?

그렇다. 환자와 관계가 좋아지면 치료 결과도 대부분 좋더라. 아무리 정확한 진단과 좋은 약도 환자와 관계가 틀어지면 설명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더 나은 치료를 위해서라도 친절하게 접근하려고 한다.

심지훈 병원장이 가운에 달아놓은 배지. 몇 년 전 진료한 어린 환자가 준 것이다. 환자가 준 작은 선물까지 간직하는 모습에서 그의 따뜻한 심성을 엿볼 수 있다. ⓒ Den
기본적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하기 어려운 환자도 종종 만난다.
그럴 땐 스스로에게 과제를 낸다.
‘저런 환자의 마음까지 돌릴 수 있다면 한 단계 성장하는 거다’라고.
환자를 위해 자기 자신에게 미션을 제시하는 것도,
한편으론 의료 생활의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양평병원의 진료 환경 개선을 위해 병원장으로서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병원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숙제다. 양평군은 지역 자체가 넓은 데다 서울에 비하면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그리고 병원은 대개 시내 주요 버스 노선 근처에 밀집해 있지만, 양평병원은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개인 차량이나 보호자의 도움이 없으면 환자가 병원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때문에 마을버스 같은 교통수단을 더 확충하거나, 의료 약자를 위한 이동 지원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현재 양평군과 논의 중이다. 고령 환자들이 더 쉽게 병원을 방문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자 한다.

양평병원이 지역의료에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

양평군 인구는 약 12만 명이다. 그에 비하면 지역 면적은 꽤 넓은 편이다. 서쪽으로는 남양주와 하남, 동쪽으로는 홍천과 인제, 남쪽으로는 여주와 이천에 닿아 있다. 이 지역을 통틀어 응급실이 있고 입원이 가능한 병원은 원주나 서울로 가지 않는 이상 양평병원이 유일하다. 응급의료와 수술, 입원 치료를 제공하며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양평군과 보건소에서도 양평병원을 중요한 거점 의료기관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정형외과, 내과, 신경과, 외과 등의 진료를 제공하지만 소아과, 산부인과, 심장내과, 신경외과 등 진료 과목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종종 듣는다.

물론 양평병원이 정부 기관이 아닌 의료 재단 소속인 만큼 지역의료의 모든 영역을 케어할 수는 없지만, 이런 한계를 극복하며 지역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역 환자 입장에선 대안이 없는 셈이다. 책임감이 클 것 같은데?

지역의료의 필요성과 사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일이 재미있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책임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구인 문제나 코로나19 초기 병동 폐쇄 같은 상황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여타 병원은 의료인 한 명이 그만둔다고 위기에 처하진 않지만, 지방 병원 입장에선 의사 한 명이 그만두면 동료 의사뿐 아니라 환자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내가 그만둔다고 병원이 망하지는 않지만, 내가 떠나면 남은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되새기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 Den
10년간 지역의료 현장에서 일하며 한 번 본 환자는 계속 본다는 걸 느꼈다. 누구의 가족 또는 친척, 친한 형·동생으로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환자지만, 사실상 가족을 돌보는 일인 셈이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족을 돌본다는 마음으로 환자를 맞이한다.

지역의료인으로서 보람을 느끼는지?

보람이라기보다는 지역의료 특유의 친밀감이 감사하다. 양평병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혼자 밥을 먹을 때가 많았다. 밥을 먹으러 몇 번 찾아간 식당의 사장님은 물론 옆 테이블 손님까지 나를 알아보더라. 이후로 마주칠 때마다 한 번씩 말도 걸어주시고, 반찬도 더 주시곤 한다.(웃음) 개인적으로 환자들과의 이런 친밀감을 즐기는 편이다.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또 병원장으로서 어려움은 없나?

정형외과 의사로서 느끼는 아쉬움은 크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기 때문이다. 전문 분야가 아닌 디테일한 치료를 무리하게 시도하는 건 환자와 나 모두에게 좋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전원을 보내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병원장으로서 역할에서는 고충을 느낀다. 특히 응급실에 심혈관계나 뇌혈관계 환자가 왔을 때 즉각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치료는 전문의와 함께 전문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큰 병원에서나 가능하다.

이런 부분은 단순히 병원이 노력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나 지역사회와 협력해 지원 사업을 통해야 가능하다. 2차 병원에서 이런 시설을 갖추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 Den
‘친절한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
물론 진료나 수술을 잘하는 의사로 기억되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환자가 나를 떠올릴 때 ‘그 사람에게 진료받을 땐 참 편하고 좋았다’라고
기억해 준다면 의사로서 더할 나위 없겠다.

2차 병원 최초로 양평병원에서 ‘씽크’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그렇다. 기존에는 간호사들이 수동으로 혈압, 맥박, 호흡수, 산소포화도를 측정했다. 고령 환자는 보통 입원 기간이 길기 때문에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자동화된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면 더 효율적이고 환자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 씽크 시스템을 도입했다.

씽크 시스템은 블루투스를 활용해 가슴과 손가락에 간단한 장치를 부착해 데이터를 수집한다. 환자들에게 주렁주렁 장비를 달 필요가 없이 간편해 만족도가 높다.

진료 환경 개선을 위해 최신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셈이다

씽크 시스템을 도입한 후 생각보다 사용량이 많고 활용도가 높아 나조차 놀랐다. 이를 계기로 진료 환경 개선을 위해 AI기술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다. 일례로, 양평병원은 고령 환자가 많이 찾는 만큼 MRI 검사 빈도가 높은 편인데 MRI 결과 판독 AI프로그램을 도입해 검사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을 논의 중이다.

의료인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오래, 즐겁게 일하고 싶다. 경력이 비슷한 동료들을 보면 점점 지쳐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스스로 하는 일이 힘들다고 느끼면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다. 다행히 나는 아직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기대가 되면서 일요일 저녁이 즐겁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2월호
에디터 정지환 (stop@mcircle.biz)
사진 송승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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