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멈춘 잠실5단지 재건축···법원 “설계공모 1등 우선협상권 있어”

서울 송파구 재건축 ‘대어’ 잠실5단지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사업이 단지 설계를 둘러싼 문제로 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잠실5단지 국제설계공모에서 1등을 차지한 ‘조성룡도시건축’에 우선협상권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조합은 2등을 차지했던 ‘운생동건축사사무소’와 이미 지난해 설계계약을 맺은 상태다. 양측이 또다시 소송전을 벌이게 될 지, 원만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안갯속이다.
지난 17일 서울시 ‘정보몽땅’에 올라와있는 잠실5단지 재건축 조감도는 서울시가 2017년 12월 공모한 ‘잠실주공5단지재건축주거복합시설 국제설계공모’에서 2등을 차지한 건축사무소의 설계조감도다. 1등 당선작인 ‘조성룡도시건축(UBAC)’의 조감도는 찾아볼 수 없다. 공모 당시 당선작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부여되고, 조합은 심사결과 발표일로부터 60일 이내에 계약을 맺을 의무가 있다고 명시됐었다.
잠실5단지는 박원순 시장 재임시절 서울시 심의를 통과한 최초의 초고층(50층) 재건축 아파트다. 오세훈 서울시장 재선 이후 ‘35층 룰’은 사라졌지만 2018년 당시만 해도 ‘2030 서울플랜’에 따라 주거지역에 아파트를 지을 경우 최고층수는 35층으로 제한됐다. 다만 ‘광역중심지’에 해당하는 잠실5단지는 주상복합건물의 경우 50층까지 짓는 게 허용됐다.
서울시는 50층 아파트 건설에 제동을 걸지 않고, 각종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대신 조합은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지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단지 대로변은 최고 50층(용적률 399.8%) 주상복합이, 내부는 35층(용적률 299.93%)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게 됐다.
■국제설계공모, 서울시와 조합의 ‘약속’
서울시는 2017년 12월 ‘잠실주공5단지재건축 주거복합시설 국제설계공고’를 내고 공모절차에 들어갔다.
서울시가 2018년 4월 23일 공개한 당선작 1등은 국내 원로 건축가 조성룡(ubac/조성룡도시건축)의 설계 ‘잠실대첩’이었다. 설계는 잠실 5단지가 접한 잠실대교 남단 송파대로와 올림픽로의 공공성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도시 중심가에서 단지가 섬처럼 따로 존재하지 않고, 도시와 긴밀한 관계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조성룡 건축가의 건축철학도 담겼다.

2등과 3등은 각각 장은규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운생동건축사사무소 대표)와 맹필수 건축가(엠엠케이프러스건축사사무소)가 선정됐다.
국제설계공모만 마무리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던 서울시의 잠실5단지 재건축 관련 각종 인허가 절차는 쉽게 나아가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여러차례 집회를 열고 “서울시는 약속한대로 재건축 절차를 조속히 이행하라”고 외쳤다. 당시 조합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가 교육환경영향평가 등을 이유로 심의를 부당하게 지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절차가 지연되자 조합의 입장도 바뀌기 시작했다. 조합은 그해 7월 여러 조건을 걸며 설계 계약체결을 미뤘다. 수권소위원회의 재건축정비계획 변경신청 심의가 완료돼야 설계계약 관련 협의를 진행할 수 있고, 협의가 완료돼도 대의원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당초 계약조건에 없던 수권소위원회가 등장한 것이다. 수권소위원회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상정된 정비계획안을 검토, 결정하는 기구다.
조성룡 도시건축은 서울시와 조합 사이에서 ‘피해자’로 남았다. 설계안은 조합원 정기총회에서 찬성률 73.8%로 통과됐지만 거기까지였다. 건축사무소는 조합이 요구하는대로 배치도, 조감도, 투시도, 이미지컷 등 조합총회 책자에 수록할 자료들을 만들어 제출하는 등 우선협상대상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했다.
그 사이 잠실5단지 국제설계공모를 주도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21년 6월, 조성룡도시건축은 조합측과의 전화통화에서 “2018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조합은 국제설계공모 결과가 그대로 반영되지 않거나 원천무효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도 전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건축가가 우선협상대상자로서의 지위에 현실적인 위협을 느낄 만한 언동이었다”고 인정했다.
결국 조성룡도시건축은 2021년 7월 19일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공모 당선으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자 조합은 “조성룡도시건축이 민사소송을 걸었으니 더 이상 우리와 일을 안 하겠다는 뜻”이라며 지난해 5월 2등 당선작을 내놓은 운생동건축사사무소와 설계계약을 맺었다.
조성룡도시건축 관계자는 “운생동측에 ‘소송 중이지만 협상이 결렬된 것이 아니다. 지금 조합과 계약을 하면 법적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내용의 내용증명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재판 끝에 법원은 조성룡도시건축사무소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3부는 지난 1일 원고 일부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조성룡도시건축사무소에 잠실5단지 주택재건축 정비사업 주거복합시설 및 기반시설 설계계약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합과 운생동건축사사무소 간의 계약 역시 현재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 법원 “우선협상대상자 배제한 조합 계약 잘못”
잠실5단지는 재건축사업 추진 이후에도 부지 내 초등학교 이전 문제를 놓고 교육청과 갈등을 빚다 지난해 사업이 한차례 좌초될 뻔 했었다. 현재도 재건축 상가분양 문제 등을 놓고 조합 내부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나오고 있다.

조성룡도시건축은 1심에서 이겼지만 여전히 입맛이 씁쓸하다. 지난 6년간 조성룡 건축가가 입은 마음의 상처도 크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인정받았다고 해서 그들이 다시 잠실5단지 설계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건축사무소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언론)취재에 응하면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 겁이 난다”면서 “(조합은) 일정 금액을 주고 물러나라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합은 현재 항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룡 건축가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애시당초 그는 왜 잠실5단지 국제설계공모에 참여했던 것일까. 그는 2018년 6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앞으로 재건축이 많이 이뤄질 텐데, 근본적으로 도시에서의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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