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의대생, 의사 수급 위해 '동원'된 인력 아니다
교육부가 지난 6일 '의대 학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을 내놓았다. 휴일인 일요일 오후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발표할 정도로 긴급하고 절박한 사안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떠한 절차도 없이 교육부가 주말에 졸속으로 허겁지겁 마련한 비상대책의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거칠고 조악하다.
교육부의 비상대책은 공정·정의·상식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맞지 않는다. 의대생에게 공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우리 사회의 일반 상식에도 어긋난다는 뜻이다. 의료 행정을 전담하는 보건복지부와 최소한의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
폭압적인 의료 개혁에 절망해서 학업 계속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젊은 학생들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이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폭력적이기도 하다.
과연 교육부의 졸속 비상대책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의대의 정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인지가 확실치 않다. 오히려 어설픈 비상대책이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의대생들을 자극해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버릴 수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교육부
교육부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교육부 장관이 법과 제도를 통째로 무시하고 보건복지부의 업무 영역을 함부로 넘보고 전국의 모든 대학 총장을 일방적으로 지휘·감독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제왕적 통치권'을 부여받은 것은 절대 아니다.
대학정책실을 폐지하고 대학의 규제 업무를 지자체에 이관하는 '대학규제 제로화'를 핵심으로 하는 고강도 '교육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보건복지부의 폭압적인 의료 개혁에 어설프게 들러리를 섰다가 막다른 골목에 갇혀버린 교육부가 혹시라도 마지막 이성의 끊을 놓아버린 것이 아닌지 몹시 걱정스럽다.
무엇보다도 의대 학생들에 대한 교육부의 인식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의대 학생은 '의사 수급'을 위해서 동원된 인력이 절대 아니다. 정부가 의대생의 학비를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대학생과 차별화된 특혜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의대 학생이 정부의 의사 수급 정책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의대생이 무조건 정부 정책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대생이 개인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저항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단순히 의사 수급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의대생에게 임의적·자의적인 '의무'를 강요해서도 안 된다. 모든 의대가 학생의 '개인적 사유'의 휴학과 자퇴를 학칙으로 보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교육부가 서울대 의대의 휴학 승인에 '격노'해서 서울대에 고강도 감사를 시작한 것은 아무도 용납할 수 없는 횡포다. 휴학 승인은 처음부터 교육부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더욱이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의사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서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의대생의 '집단 동맹휴학'을 허용할 수 없다는 교육부의 '원칙'은 권위주의 시대에나 어울리는 시대착오적인 억지다.
더욱이 '집단 동맹휴학'이 무엇인지가 법률적으로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의대생이 휴학 신청서에 '동맹휴학'을 사유로 적은 것도 아니다. 단순히 '정부 정책에 반발한다'는 자의적인 괘씸죄가 휴학 불허의 제도적 근거가 될 수도 없다. 교육부 장관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학생의 자유를 함부로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명백하게 법치주의에 맞지 않는 반(反)민주적 행태다.
2025학년도 시작에 맞추어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조건부 제한적 휴학'도 어떠한 법률이나 학칙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교육부의 자의적인 요구다. 현실적으로 '복귀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학생의 휴학 신청을 승인해 줄 것인지의 결정은 온전하게 대학의 자율적 판단에 맡길 일이다. 교육부 장관이 섣부르게 개입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교육부가 내년 3월 복귀를 강조하는 것도 어색하다. 실제로 교육부가 의대생들의 내년 3월 복귀 여부를 걱정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의대 정상화를 위한 '최대한 설득'의 가능성을 당당하게 강조하던 교육부 장관이 사실 속으로는 내년 3월 복귀까지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교육부가 내년 3월까지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고집을 부리겠다는 고약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 억지 춘향에 불과한 '탄력 운영'
교육부의 '비상대책'에는 교육부가 대학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제 내년 3월 의예과 1학년 학생이 수강해야 하는 강의·실험·실습이 콩나물 시루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3000명을 교육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시설과 교수 인력으로 수용 한계의 2.5배에 해당하는 7500명을 교육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2024학번의 학생을 행정적으로 어떻게 분류하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행정적인 휴학 여부에 상관없이 내년 3월부터 전국 의대의 교육은 파행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이라는 뜻이다.
의대의 교육과정을 의사 수급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한다고 사정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강의·실험·실습의 양을 그대로 두고 단순히 교육의 강도만 강화한다고 의대의 교육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6년 동안에 이수해야 할 교육과정을 5년에 이수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확실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의학 교육에 대한 국제적 규범은 물론 다른 분야 교육과의 형평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교육부 장관의 말 한마디로 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반복적인 주장은 공허한 희망 고문일 뿐이다. 콩나물 시루로 변해버리는 의대에서 정상적인 교육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소가 들어도 웃을 수밖에 없는 억지다.
'정원을 초과해서 최대한 교육할 수 있는 학생 수를 학칙에 반영하라'는 교육부의 비상대책은 황당한 오류다. 내년 3월에는 모든 의대가 정원의 2배나 되는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 입학정원이 대폭 늘어난 지역 의대의 경우에는 학생 수가 최대 4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학생들에게 '기출문제·학습지원자료(족보)'를 공유·지원해 주는 (가칭)의대교육지원센터를 운영한다고 달라지는 일이 아니다. 기출문제와 족보는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교육의 질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의대 교육의 질은 강의실·실험실·실습실에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물거품이 돼버린 '대학규제 제로화'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정부가 작년 초부터 '사교육 카르텔' 퇴치를 앞세워 작년 1월부터 강력하게 추진해 왔던 '교육 개혁'이 확실하게 좌초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주호 장관이 대학정책실까지 폐지하면서 요란하게 밀어붙였던 '대학규제 제로화'가 물거품이 되고 있다.
교육부가 정상적인 예산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라이즈 사업'(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사업)을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추진했던 것도 대학규제 제로화를 위한 것이었다. 교육부의 대학규제를 지자체로 이양하고 궁극적으로 교육부를 해체하겠다는 구상도 있었다. 화려하게 복귀한 이주호 장관이 앞장서서 외쳤던 내용이다.
그런데 의료 대(大)붕괴로 이어지고 있는 의료 개혁이 교육부의 규제를 철폐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교육부 장관은 전국의 모든 대학의 총장 위에 군림하는 '제왕'이다. 대학은 교육부 장관의 말 한마디에 획일적으로 학칙을 개정해야 한다.
이미 현실화된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로 지난 여름에는 전국의 40개 의대가 교육부가 정해준 입학정원을 반영하기 위해 온갖 편법을 써서 학칙을 개정했다. 대학이 임용하는 교수의 자격 기준도 교육부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교육과 연구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의도 의료 개혁을 위해 기꺼이 임용해야 한다.
이제 교육부 장관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까지 정해주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유보 통합과 초중고등학교의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DT) 사업도 산으로 치닫고 있다. 법과 제도는 물론 여론까지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정치적 상황에 따라 깃털처럼 가볍게 말이 달라지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교육개혁'은 처음부터 전혀 믿을 것이 아니었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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