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제 5차 중동전쟁? 이스라엘 폭주 막을 수가...

[이근윤의 사우디, 중동 이야기]
2006년 패배한 이스라엘의 보복전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궤멸시킨다?
'경제난' 이란, 참전도 방관도 못해
'힘의 논리' 이스라엘 어디까지 가나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

중동 가자지구에 이어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의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된 가자 전쟁 이후, 레바논 소재 무슬림 시아파 계열 무장세력 헤즈볼라는 '가자 지구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 북부와 점령지인 골란고원을 겨냥해 매일같이 로켓을 발사해왔다.

이에 레바논 접경지에 살고 있던 6만명의 이스라엘 주민 대부분은 이미 남쪽으로 이주를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4만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내며 남쪽의 가자 전쟁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자, 이제 이스라엘은 북쪽의 헤즈볼라를 정조준했다.

지난 9월 17일 오후 1시 45분경, 베이루트 등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무선호출기(삐삐)가 폭발하면서 최소 9명이 사망하고, 4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는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이 중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얼굴과 손, 옆구리 등에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또 손가락 절단 등의 신체적 손상이 보고되고, 사망자 중에는 헤즈볼라 대원들의 가족 등 민간인도 포함되어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오랜기간 공급망을 통해 정교하게 계획된 이스라엘의 공격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휴대전화를 이용할 경우 위치추적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무선호출기 사용을 권장해 온 헤즈볼라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오랜기간에 걸친 놀라운 공작이었다.

1일(현지시각) 이란이 180여발의 미사일을 쏘자 이스라엘이 아이언돔 방공 미사일 체계를 가동,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년만에 무너지는 헤즈볼라

그리고 이스라엘은 마침내 9월 27일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나스랄라는 1992년 이후 지난 30년간 헤즈볼라를 이끌며 조직을 중동의 가장 강력한 무장 세력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30m 깊이의 지하 방공호에서 이뤄지던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회의에 대한 첩보를 듣고 감행한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일거수 일투족을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헤즈볼라 입장에서는 소름돋는 일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가 더 걱정되는 상황이다.이미 이브라힘 알 후자이리, 파달 샤라라 등 다수의 핵심 지도자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잃은데다가, 무선호출기 테러로 허를 찔려 핵심 전투원의 상당수가 피해를 입은 상태다. 여기에 30년간 헤즈볼라를 이끌어 온 나스랄라까지 사망한 상황. 헤즈볼라에게는 악몽과 같은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뭔가 이스라엘이 오랜 시간 칼을 갈고 있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현 상황의 배경에는 양측의 오랜 악연이 자리하고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제거를 목적으로 레바논을 침공했는데, 이 일로 레바논 내부의 복잡한 종파 갈등이 격화됐다. 여기서 시아파 무장 단체인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저항의 주요세력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헤즈볼라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주요 적으로 규정하며, "이스라엘이 무슬림 땅을 불법 점령하고 있다"는 명분 아래 무장투쟁을 이어왔다.

헤즈볼라가 이 지역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 사건은 2006년에 일어났다. 당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군을 공격해 8명을 사망하게 하고 2명을 납치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전면적으로 침공, 34일간의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으로 레바논 측에서는 11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지만, 이스라엘 역시 100명 이상의 군인을 잃었다. 사실상 이스라엘의 패배였다. 전쟁은 결국 휴전으로 이어졌으나, 나스랄라는 이를 아랍 세계에 "이스라엘에 대한 최초의 승리"로 선전했다. 이는 나스랄라의 지도력과 헤즈볼라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강화하며 '저항의 상징'으로 추앙받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하산 나스랄라 체제의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에서 단순한 무장 단체 이상의 역할을 했다. 이란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 덕분에 헤즈볼라는 독자적인 장거리 미사일과 로켓을 보유하게 되었고, 레바논 정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강력한 정치적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헤즈볼라의 병력은 3만 명에서 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20만 발의 미사일과 로켓, 다수의 최신식 드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군사적 역량은 헤즈볼라를 레바논 정규군을 넘어서는 실질적 군사 세력으로 만들었다.

미국도, 이란도 속수무책

여기서 헤즈볼라의 실수가 시작됐는지 모른다. 이전의 성공이 독이 되었는지, 아니면 비교불가에 가깝게 압도적인 규모로 급성장한 조직의 비대함에서 오는 약점 때문이었는지, 헤즈볼라는 자신을 공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만을 갖기 시작했다. 하마스와도 예멘의 후티반군과도 대립해야하고, 그 배후에 이란이 있는데 자신들에게 대대적으로 공격을 감행할 것으로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오랜기간 독을 품고 준비해 온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헤즈볼라를 보면, 이미 궤멸적인 파괴를 당한 하마스에 이어 존재의 기반이 흔들릴지도 모를 풍전등화의 위기에 서 있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이미 기선을 제압한 이스라엘은 공세를 늦출 기미조차 없다. 이미 가자 전쟁으로 불안하던 국내 정치적 입지를 단단히 다진 네탄냐후 총리 입장에서는 이 기회에 눈엣가시와 같던 헤즈볼라까지 손볼 기세다. 가자 전쟁에 대해 양분되어 있던 국내 여론과 달리, 헤즈볼라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여론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유일하게 이스라엘을 말릴 수 있는 미국마저 해리스, 트럼프 양측 누구도 현재 대선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미국내 유대인들을 의식해 자극을 피하려는 상황이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을지 몰라도, 대선을 마칠 때까지는 이스라엘의 폭주를 그냥 지켜볼 공산이 크다.

이 와중에 이란은 전면전을 각오한 듯 끝내 미사일 1백여발을 쐈다. 지금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오랫동안 공들여 온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한꺼번에 날아갈 판이라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했지만, 헤즈볼라의 나스랄라 사망 앞에선 자제력을 잃는 모습이다. 이란은 특히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이던 때에 이스라엘이 나스랄라를 공격한데 대해 격노했다.

혹자는 과거 미국이 북한에 대해 사용했던 ‘전략적 인내’라는 단어를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입장에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이란도 과거에 비해 매우 큰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었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란의 페제쉬키안 대통령은 벌써 사퇴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인데, 이스라엘, 미국 등과 협상 중인 와중에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이 발발하면서 물러설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레바논 접경지에서 수색 중인 이스라엘 군인들. 사진=연합뉴스

사실상 시작된 제 5차 중동전쟁

반면 이미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교까지 맺은 UAE, 바레인은 물론, 수교 직전까지 갔던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인근 국가들도, 수니파 하마스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시아파인 헤즈볼라에 대해서는 조용히 지켜 보고만 있다.

당분간은 이스라엘의 파상공세를 헤즈볼라 자체 전력만으로 막아내야할 가능성이 높다. 이란도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일회성으로 감행했을 뿐이다. 다만 과거 레바논, 시리아 등을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가 국제사회의 유일한 중재자로 나서고 있다. 1949년 이스라엘 건국의 중요한 시초가 되었던 드레퓌스 사건의 무대였던 프랑스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는 중동에 평화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미 4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자 전쟁에 이어 레바논으로 불씨가 옮겨 가고 있는 현재 상황을 이미 5차 중동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1949년부터 1973년까지 5~10년 간격으로 숨가쁘게 진행되었던 1~4차 중동 전쟁 이후 50년만에 다시 전면전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레바논으로 파견한다면 헤즈볼라 외에도 수많은 레바논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을 공산이 크다. 최근에만 12만명의 이재민이 공습을 피해 이동했으며, 2023년 10월 이후 2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중동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1년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전혀 짐작하지 못한 방식과 규모로 이뤄진 참담한 사건이 그냥 조용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아 넣을 줄은 몰랐다. 사우디가 네옴 프로젝트 규모를 축소하게 된 배경에도 인근의 안보 불안은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분간 이스라엘의 폭주를 막을 방법이 딱히 보이진 않지만, 이란이 네탄냐후의 도발에 충동적으로 보복을 하기보다 인내를 발휘해 외교를 통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답답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이란이 이스라엘에 외교적 우위에 설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동에 실낱같은 평화의 희망이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필자인 이근윤은 서울대에서 환경과학을 전공했다. 한국렌탈 중동총괄 이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켄렌탈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에서 5자매를 홈스쿨링하며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이메일 주소는 musc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