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우리 팀에서 함께할 것이라고 믿으며 떨리는 마음으로 마킹한 유니폼은 기다림의 끝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하지만, 이내 마킹 제거를 당하거나 직관용 가방으로 재활용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우리 곁에서 영원할 줄 알았던 선수들은 새로운 팀에서 안색을 펴기도 하고, 이적한 후 소식이 끊겨 버리기도 한다. KBO리그 정규시즌이 개막한 지도 어언 한 달 남짓. 요즘은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무언가를 구매하고 나서 ‘한 달 사용 후기’를 남기던데… 개막일로부터 비슷한 시간이 흐른 지금, 둥지를 옮긴 선수들은 현재 각 팀에서 어떤 모습일까? (4월 27일 작성)
에디터 손하현 사진 두산 베어스, SSG 랜더스, KIA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현질의 가치
무료한 비시즌에 팬들의 이목을 끄는 가장 큰 즐거움은 단연 이적시장이다. 내부 FA(Free Agent, 자유 계약 선수) 대상자를 어떤 조건으로 지켜야 할지, 나아가 다른 팀의 어떤 선수를 노려서 포지션 보강을 해낼지가 팬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물가 시대에 걸맞게 선수들의 몸값도 쉽게 몇십억을 호가하는 와중, 내 돈도 아닌데 영입 기사 헤드라인을 볼 땐 왜 이리도 손이 떨리는지. 그렇게 사 온 선수들은 과연 ‘돈값’을 하고 있을까?

박찬호 (KIA 타이거즈→두산 베어스)
지난 FA 시장 최대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던 박찬호. KIA 타이거즈의 주전 유격수로서 2024시즌엔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같은 해 KBO 골든글러브 트로피까지 들어 올리며 개인적으로도, 팀으로서도 모두 성공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 이후 25시즌을 마친 박찬호는 두산 베어스와 4년 총액 최대 80억 원(계약금 50억, 연봉 총액 28억, 인센티브 2억)에 계약했다.
내야 자원을 여럿 뒀음에도 포지션을 고정하지 못해 다양한 키스톤 조합으로 한 시즌을 보내야 했던 두산은 박찬호 영입으로 내야의 중심점을 잡고자 했다. 실제로 작성일 기준 박찬호는 25경기에 출전해 0.298의 타율과 2홈런 9도루를 기록하고, 상대적으로 실책이 많은 포지션에서도 안정적인 수비를 선보이는 등 공·수·주 모든 부문에서 선전하는 중. ‘허슬두’의 명성에 걸맞은 플레이로 두산의 명실상부 내야 사령관으로 자리매김할 그의 활약을 지켜보자.
강백호 (KT 위즈→한화 이글스)
KT의 중심타선에서 활약하며 가을야구에서의 마법을 함께했던 강백호는 한화 이글스와 FA 계약을 체결해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강백호는 4년 총액 100억 원(계약금 50억, 연봉 총액 30억, 옵션 20억)에 계약하며 기존에 언급되던 메이저리그행 대신 리그 잔류를 택했다. 이로써 그는 이전 해 FA로 팀을 옮겼던 엄상백, 심우준과도 한화에서 다시 조우하게 됐다.
중심타선을 함께 이끌어 가야 할 노시환의 부진으로 운영에 적신호가 켜진 팀 상황. 그 속에서 강백호는 3할에 준하는 타율을 유지하며 1인분만큼은 확실히 소화하고 있지만, 계약 액수를 생각하면 그 폭발력이 아직은 기대를 완벽히 충족하진 못했다. 팬들은 시즌 초반 침체된 타선에 더해질 강백호의 강력한 파괴력을 계속 기다리는 중.
김현수 (LG 트윈스→KT 위즈)
김현수의 KT 위즈 이적은 LG 잔류를 점쳤던 대다수 야구팬의 예상과는 반대되는 행보였다. KT는 3년 총액 50억 원(계약금 30억, 연봉 총액 20억)에 김현수와 계약하며 지난해 두산으로부터 허경민을 영입한 데 이어 한 명의 베테랑을 더 얻었다.
올해로 데뷔 21년 차를 맞은 김현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출장하며 3할을 웃도는 타격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득점권 타율 역시 이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중요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타점을 만들어 내는 것 역시 베테랑다운 면모다. 특히 팀의 핵심 타자였던 강백호가 이탈한 공백을 함께 영입된 최원준과 톡톡히 메우며, 시즌 전 팀 타선을 향했던 팬들의 우려를 불식하고 있다.

최형우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
또 하나의 베테랑 이적 소식이 시장을 흔들었다. 생각보다 장기화된 계약 진행으로 KIA 잔류와 삼성 복귀로 예측이 갈리던 중 최형우는 결국 2년 총액 26억 원 규모의 계약으로 삼성행을 택했다. 2016시즌을 마치고 팀을 떠난 지 꼭 10년 만이었다.
최형우는 에이징 커브 따윈 모르는 꾸준함을 여전히 과시하는 중이다. 특히 4홈런, 도합 17타점을 기록하며 구자욱과 이재현, 김영웅 등의 이탈로 시즌 초 예상 외의 난항을 겪는 삼성에 큰 보탬이 되기도 했다. 명실상부 현역 최고령인 그의 발자취가, 돌아온 친정팀에서 어느 곳까지 닿을지 기대를 모은다.
김재환 (두산 베어스(보류 선수 제외)→SSG 랜더스)
B등급으로 분류되던 김재환은 두 번째 FA 권리를 포기하며 기존 소속팀 두산 베어스와 동행을 이어 가는 듯했다. 그러나 옵션을 발동해 스스로 보류 선수 명단 제외를 택하며 자유 계약 신분이 됐다. 두산으로서는 보상 선수나 보상금도 받을 수 없게 된 셈. 전례 없는 방식으로 이적을 택한 김재환은 이적 시장 막바지에 SSG 랜더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2년 최대 22억 원(계약금 6억, 연봉 총액 10억, 인센티브 최대 6억).
김재환과 손을 잡은 SSG는 타자 친화적 홈구장을 사용하는 팀으로, 좌타 거포의 영입으로 팀 장타력 보충을 꾀했다. 그러나 김재환은 100여 타석을 소화하는 동안 1할을 겨우 넘기는 처참한 타율을 기록하며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특히 김재환을 지명타자로 기용하게 된 만큼, 팀 내 다른 야수들에게도 휴식을 주지 못한다는 약점도 부각됐다. 결국 4월 27일, 이숭용 감독은 그를 1군에서 말소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팀이 기대한 바가 명확했던 영입인 만큼, 재정비 후에는 분명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눈 떠 보니 새 팀이더라
상위 등급의 FA 선수를 다른 팀에 내주고 나면, 원소속팀에도 그에 따른 보상 금액 또는 보상 선수를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 원하는 포지션의 새 선수를 마음대로 들여오기가 쉽지 않은 만큼, 주전급 선수를 내준 공백을 적절하게 메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상대 구단의 보호 선수 엔트리에 미처 묶이지 못한 선수 중 우리 팀에서 재능을 꽃피울 원석을 찾는 것, 그렇게 ‘보상 선수 신화’가 만들어진다.
또한, KBO리그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시즌을 마치고 신인드래프트가 아닌 기존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2차 드래프트’도 치러진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서 구단들은 주전 선수들에게 가려져 있던 즉시전력감을 탐색하고, 출전 기회가 부족해 성장이 침체돼 있던 원석을 발굴해 내곤 한다.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FA와 다르게, 2차 드래프트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어느 정도 검증된 전력을 영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홍민규 (두산 베어스→KIA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는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불펜진을 보강하기 위해 박찬호의 보상 선수로 우완투수 홍민규를 지명했다. 2025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직후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시즌 초 빠르게 데뷔했고 대체 선발로도 이닝을 소화한 경험이 있다. 시즌을 마치고는 2025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해 한일전 선발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적 후엔 KIA 불펜진의 한 축을 맡아 10차례 등판했으나, 높은 피안타율과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야 데뷔 2년 차를 맞은 영건인 만큼 팬들도 그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는 중.
추재현 (두산 베어스→키움 히어로즈)
키움 히어로즈는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취약한 포지션을 대거 보강했다. 4명을 영입하며 최다 지명팀이 되었는데, 실전 경험이 있는 즉시전력감 선수들을 통해서 경제적 실리를 살리고자 한 것이다. 그중 추재현은 직전 해 롯데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선수로, 타격 측면에서 어느 정도 강점이 있었으나 외야 주전 경쟁에서 두각을 드러내진 못한 상황이었다. 과거 넥센 히어로즈에서 프로 지명을 받았던 그는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먼 길을 돌아 다시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게 됐다.
시즌 초 말소된 뒤 4월 19일 다시 콜업된 추재현은 당일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더니 시즌 첫 홈런을 때려 내며 순조로운 출발을 예고하는 듯했다. 더욱이 팀에도 부상자가 대거 발생하며 주축 선수들이 모두 이탈한 터라 추재현의 활약이 절실했던 상황. 그러나 안타깝게도 1군 등록 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사구를 맞아 유구골 미세 골절 판정을 받으며 회복 기간에 돌입했다.
배동현 (한화 이글스→키움 히어로즈)
2차 드래프트의 성공 사례로 2026시즌 가장 주목받고 있는 화제의 인물이다. 2021년 한일장신대를 졸업하고 한화 이글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배동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구속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보호 명단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2차 드래프트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배동현은 키움에서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는 기회를 얻었다.
선발 경쟁을 펼치던 김윤하가 부상으로 조기 낙마한 데 이어, 정현우 역시 부상으로 선발진 정상화가 어려워진 키움 히어로즈. 이런 상황 속에서 고무적이게도 배동현은 그 속에서 자신을 향한 기대를 뛰어넘는 호투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4월 중순 안우진의 부상 복귀 과정에서는 안우진의 뒤를 이어받아 마운드를 지키며 실전 피칭을 돕기도 했다. 개인 성적 측면에서도 4월까지 총 4승을 챙긴 데다가 평균자책점도 2점 중반대로 매우 준수한 편. 팀이 10승을 기록하는 동안 혼자서만 4승을 달성하며 2차 드래프트 성공 계보를 써 내려가고 있다. 배동현이 얼마나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에서 호투하는지에 따라 키움의 성적도 좌지우지할 것으로 예상하는 바다.
#마지막 퍼즐
시장에서는 영입 가능한 포지션과 대상이 한정돼 있기에, 구단은 트레이드로 마지막 퍼즐을 완성한다. 팀의 미래를 위해 현재의 자원을 내주거나, 유망주를 포기하고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다. 매 시즌 팬들을 긴장하게, 혹은 기대하게 만드는 트레이드. 지난 1년간 트레이드를 통해선 과연 누가 웃었을까?

박세혁 (NC 다이노스→삼성 라이온즈)
삼성은 2027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을 포수 박세혁과 맞바꿨다. NC 다이노스는 김형준이 주전으로 자리 잡고 국가대표에 승선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동시에 안중열까지 보유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액 연봉자인 박세혁의 쓰임새를 찾는 데 난항을 겪고 있었다.
반면 삼성은 강민호 이후로 마땅한 백업 포수를 찾지 못하며 포수 포지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2차 드래프트로 두산에서 장승현을 영입한 직후임에도 추가로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박세혁은 올 시즌 아직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며, WAR 역시 음수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이 포수진의 대대적 보강을 노린 만큼, 그의 페이스가 빠르게 회복돼야 아쉽지 않은 트레이드로 기록될 듯.


정현창 (NC 다이노스→KIA 타이거즈)
지난해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치른 3대3 트레이드를 통해서 이적했다. NC는 정현창과 함께 투수인 김시훈, 한재승을 내줬으며, KIA는 외야수 최원준, 이우성과 내야수 홍종표를 내놨다. KIA는 트레이드를 통해서 불펜을 보강함과 동시에 유망주인 정현창을 데려오며 젊은 내야수를 수혈했다.
정현창은 올 시즌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특히 시범경기 기간 타율 0.333의 호성적과 홈런까지 선보였다. 다만 시즌에 돌입한 후로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는 중. 그럼에도 주전 유격수였던 박찬호의 이탈로 생긴 내야진의 공백을 메우는 수비 백업 자원으로서 팀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데 의의를 두는 상황이다.
천성호 (KT 위즈→LG 트윈스)
지난해 6월, 수원에서 열린 LG와 KT의 3연전 시리즈 도중 트레이드 소식을 접하게 된 천성호. 좌완 불펜을 원하던 KT가 임준형을 받고, 포수 김준태와 멀티 포지션 야수인 천성호를 LG에 내준 것이다. KT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그는 이적 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뽐냈다. 특히 내외야 멀티 포지션과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며 부상으로 이탈했던 홍창기의 공백을 메우는 데도 백방 기여했다.
그의 활약은 올해 더욱 빛을 발하는 중이다. 시즌 초부터 3할 중반이라는 고타율로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했고, 한때는 홍창기를 대신해 리드오프로도 기용될 정도로 주전 선수들의 부진과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은 LG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팀이 시즌 초반부터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천성호의 꾸준한 활약이 팀의 순위 유지에도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6년 182호 (6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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