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스바겐 골프
시대를 관통하는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역작이다. 피아트의 욕심쟁이 천재 디자이너는 일찌감치 베르토네와 카로체리아 기아(Ghia)를 거쳐 결국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렸다. 그리고 맡은 초기 디자인 프로젝트가 골프.
아이러니다. 이탈리아인이 디자인한 독일 차가 가장 독일다운 독일 자동차의 아이콘이 되다니. 하지만 사실 브루노 사코가 디자인했던 벤츠(W201). 브루노 사코가 디자인 수장으로 있었던 90년대가 가장 벤츠다웠던 시절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보면, 이탈리안 디자인이 뭔가 특별한 적응력이 있나 싶기도 하다.


비례
골프의 사이드뷰를 보면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는다. 엑스레이 투시도를 보는 것 같다. 엔진룸부터 승객 공간을 거쳐, 트렁크 공간까지 한치의 낭비(?)도 없다. 철저하게 짜맞춘 각 파트의 레이아웃 패키징은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골프의 실루엣은 완벽한 C세그먼트 해치백이다.
선과 면
골프의 캐릭터라인은 정직한 수평 라인 딱 하나다. 헤드램프 가장자리 맨 앞부터 리어램프 가장자리 끝단까지 강하게 그은 단 하나의 직선이 면을 정의한다. 그 어떤 속임수도 없다. 연결된 면들은 깨끗하고, 원초적인 거의 평면에 가까운 볼륨으로 짜맞춰 있다.


프론트는 직사각형 구획이다. 옛 플래시를 끼워 넣은 듯한 헤드램프와 수평 라인만 정직하게 그어놓은 그릴, 직사각형 범퍼는 순수 기하학의 끝판왕이다. 방향지시등과 리어 컴비네이션램프도 필요 광량의 최솟값을 만족하는 크기다. 아웃사이드 도어 핸들, 문짝, 창문의 크기와 모양. 휠 아치, 인테리어의 각종 스위치, 대시보드, 시트 디자인, 콘솔과 기어봉, 핸드 브레이크 형상까지 모든 디테일은 기능을 따르는 더없이 명확한 형태다.




이는 어쩌면 21세기에서 C세그먼트 해치백이 갖는 의미일 수도 있다. 컴팩트한 공간에 구겨져 앉는 모습이 더 이상 즐겁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는 스마트해 보였지만 이제는 비슷한 크기의 SUV와 MPV가 넘쳐나고 있으니, 탄탄한 드라이빙 감각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골프는 뭔가 똥고집 피우는 아저씨 느낌이다. 유틸리티도 부족한 공간이고, 스타일링도 매력적이지 않다. 너무 예쁘고 잘빠진 모델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또 전기차, 자율주행차 시대에 직면하면서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폭스바겐도 비틀을 지운 것처럼, 이제 골프를 보낼지 고민하고 있다. C세그먼트 전기차에 골프라는 이름을 쓸 법도 한데, ID라는 별도의 작명으로 내보내는 것을 보면 이제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의 아이콘을 보내줄 시간이 온 것 같다. 맥아더 장군의 마지막 코멘트가 떠오른다. 골프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
PS : 재미있는 사실 하나. 골프는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난 포니와 형제다. 같은 아버지 주지아로를 둔 이복형제의 운명도 엄청난 아이러니다. 폭스바겐이라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아 세계 대스타로 성장했던 골프는 이제 존재 이유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고, 변방의 이름 없는 현대에서 태어난 포니는 아이오닉 5와 N74를 거쳐 미래 현대차의 유니콘이 되었다는 점!
글쓴이 정연우 상무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하고 GM(쉐보레 크루즈 메인 디자인), 벤틀리(외장 디자인), 현대자동차 디자인센터에서 제네시스를 비롯한 중대형 승용차 외장 디자인을 담당했다. 영국 RCA에서 비클 디자인 석사를 마쳤으며, UNIST의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자타공인 지독한 자동차 마니아다. 현재는 HLB 그룹에서 브랜딩과 디자인 총괄로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