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마흔, 불혹이 아니라 혹이 생기는 나이
“마흔이 되면 뭔가 이룰 줄 알았는데, 별거 없다, 야.”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가 말했다. 그 말에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 모두가 공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도 있고, 오랜 꿈을 이루고 아나운서가 된 친구도 있지만 마흔이 되어 보니 다 그게 그거 같다고 고개들을 주억거렸다. 나이 서른에 직장을 관두고 나서 프리랜서로 살아온 나에게도 마흔은 그냥 되고 싶지 않은 나이일 뿐이었다. 불혹이라고 부르지만, 몸에는 혹만 생겨서 정기적으로 검진이나 다녀야 하는 그런 나이. 나이 마흔은 내게는 혹과 주름살과 흰머리와 아픈 무릎 관절 외에 그다지 준 것이 없어 보였다.
마흔이 넘어서 생긴 중요한 변화가 또 하나 있다. 자꾸 깜박깜박한다는 것이다. 휴대폰은 하루에 오십 번도 넘게 찾는 것 같고, 한 말을 서로 기억하지 못하니 남편과의 대화는 꼭 카카오톡에 남겨서 증거로 삼는다. 아는 단어가 생각지 않아 ‘그게 뭐지’만 연발하다가 그 단어를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먹어 버리고, 심지어 사랑하는 아이와의 약속도 종종 잊어서 아이를 슬프게 만들기도 한다. 이 나이는 무언가 생산하기보다 소비하고, 쌓기보다 쌓은 것을 누려야 할 나이 같기도 하다. 그런 나이에 나는 참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배움’이다. 이미 배운 것도 다 잊어버리는 통에 배움이라니. 이럴 거면 학창시절에 더 열심히 하든지.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생각은, 이 시기의 배움이 ‘진짜 배움’ 같다는 것이다. 시키니까 학교에 가서 시키니까 교과서를 펴고 시키니까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안 시키는데 스스로 하는 것, 그것이 진짜가 아니겠나. 누가 시키지 않고 평가하지 않으니 재미있기도 하다. 물론 어제 배운 것을 오늘 까먹는 것이 일상이지만 말이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어린이집에 다닐 때보다 빨라진 귀가 시간과 늘어난 방학에 나날이 놀라워하고 있던 어느 날. 정말로 내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1학년 겨울방학 때 학교가 석면 공사를 해서 겨울방학에 아무 수업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름방학에는 그래도 하루 두 시간이나마 늘봄 수업이 있어서 학교에 보냈는데 그것마저도 없다니.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집에서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해졌다. 저 놀기 좋아하는 어린이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다행히 남편의 휴가가 1월에 집중되어 있기에, 1월에 3주 정도의 가족 휴가가 가능해졌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말레이시아에 가서 3주 살기를 하면서 아이를 영어 학교에 보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우리 가족과 시댁 형님과 형님의 아이 둘이 함께 가기로 계획했다. 가이드와 함께 가는 여행이 아니기에, 3주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영어를 배워야 했다. 그래야 호텔에서의 불편 사항도 해결할 수 있고 음식을 사 먹고 관광을 하는 등의 생활도 잘 해낼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여행 6개월 전에 앱을 구입하여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남편은 얼마 있지 않아 포기하고 나가 떨어졌고, 나는 마늘만 먹고 여자가 된 곰처럼 매일매일 야금야금 영어 공부를 했다.
출국 전까지 나는 여행 관련 문장과 일상 회화에서 쓸 수 있는 문장들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공부했다. 같은 내용을 세 번을 반복하니 웬만한 문장은 다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내 머릿 속에는 형님과 남편이 나를 우러르면서 “영어의 신이 우리 집안에 임재하셨다!”고 외치는 광경이 번쩍거렸다. 아이가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해?”라면서 쌍엄지를 추켜세우는 모습 역시 상상되었다. 나는 자신만만한 기분으로 출국했다.
출국, 그리고 좌절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말레이시아에 간 결과는? 놀랍게도 매우 처참했다. 말레이시아는 영국 영어에 동남아 특유의 억양이나 발음이 섞인 영어를 썼다. 그런데 나는 미국 영어만 줄창 공부했으니 간단한 말이라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단번에 알아듣고 나서 내가 배운 문장을 줄줄 말해야 하는데 “Parden?”만 해대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영어를 분명 못 한다고 했던 형님은 나보다 듣기 능력이 뛰어났고, 영어를 실제로 나보다 못 하는 남편은 일단 들이대고 보는 성격으로 아무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남편이 일단 말을 걸고 상대가 말을 하면 형님이 번역을 해서 들려주고, 남편이 다시 말을 하면 서로 소통이 가능했다. 나는 영어 공부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이러다가는 배운 것을 제대로 활용도 못 해 보고 귀국을 하겠구나 싶었던 어느 날, 라이브 카페에 간 나는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가수를 보면서 문득 하나의 문장이 생각났다. “당신의 노래는 내가 이제껏 들었던 것 중에 가장 뛰어나다.” 배우면서도 이상하게 잘 외워진 문장이라서 기억하고 있었지만 써먹을 곳은 없었다. 그걸 여기서 쓸 수 있겠구나 싶어서 나는 잔뜩 기대하고 머릿속으로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인사를 하면서도 나는 차마 입을 열어 그 문장을 뱉을 수가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줍어서였다. 그냥 쌍엄지만 치켜 들고 만 나는 ‘영어를 공부하면 뭘 해, 숫기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히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그 후에 또 한 번, 그 라이브 카페에 가게 되었다. 출국 전날이라서 더는 기회가 없었다. 저번과 같은 가수가 노래를 했다. 다시 그 가수와 인사할 기회가 생겼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나는 용기를 쥐어 짜서 저번에 준비했던 문장을 말했다. “당신의 노래는 이제껏 내가 들었던 것 중에 가장 뛰어나다!” 그 말을 함과 동시에 가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눈물까지 글썽였던 것도 같다. 그는 한국어로 “대박!”고 소리치면서 몇 번이고 내게 감사하다고 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어리둥절한 것을 보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 주었다. 남편은 그 말을 듣고는 용기백배하여 소리쳤다. “나도 써 볼 거야!” 나는 왜 신이 남편에게는 용기만 주고 내게는 끈기만 주었는지 궁금했다. 차라리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다음 날, 공항에서 햄버거를 먹는데 남편이 어제 썼던 그 말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남편을 은근히 만류하며 말했다. “그 말을 꼭 맥도날드에서 써야겠어?” 남편은 개의치 않고 다 먹은 햄버거 포장지를 들고 씩씩하게 점원에게 갔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 햄버거는 내가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맛있다!” 점원이 매우 좋아하자 이번에는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말해 볼래!” 마침 아이는 햄버거를 다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서 점원 앞에서 떠듬떠듬 말했다. “이 아이스크림은 내가 이제껏 먹었던 것 중에 가장 맛있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 점원들이 둘러서서 물개 박수를 했다.
그 후
귀국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출국 전에 구입한 앱으로도 공부하고, 미국 드라마도 매일 보고 있다. 화상 영어도 신청해서 일주일에 세 번씩 영어로 대화도 한다. 이제는 여행이라는 목표도 사라졌는데 왜 나는 아직도 영어 공부를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늘 따로따로인 우리 가족이 그렇게 한 마음이 되었을 때도 없었다. 내게 배운 문장을 남편이 쓰고 나서 좋아하고, 또 그것을 본 아이가 따라 했던 그 장면이 내게는 영어가 주는 큰 선물인 것처럼 여겨졌다. 영어가 외국인과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끼리의 소통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어쩌면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외국인과 아주 능숙하게 대화를 해서 ‘영어의 신’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아주 단순한 소통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배운 영어를 쓰기 위해서 한 말이지만, 필리핀에서 왔다는 그 라이브 카페의 가수는 한 한국인이 수줍게 고백한 말을 오래도록 기억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디서 뭘 먹고 살았길래 맥도날드 햄버거가 먹어본 것중에 가장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동양인의 고백은 맥도날드 점원에게도 즐거움을 주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더듬거리던 아이 역시 그곳 점원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었겠다. 간단한 단어로도 충분히 말은 통하지만 배움을 거친 언어는 상대에게 더 의미 있게 닿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글쓴이 - 김지영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다가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프리랜서로 살아갑니다. 학창시절에는 늘 시키는 것만 잘했는데, 이제는 안 시키는 것도 찾아 보고 해 보면서 삶이 이런 온도였는지를 새삼 매일 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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