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난제 '불균일 확산' 160년 만에 풀렸다
입자의 무작위적 움직임이 만드는 '확산(diffusion)'은 물리·화학·생물과 같은 자연 현상뿐 아니라 주가 변동 등 사회 현상까지 적용되는 현상이다. 국내 연구팀이 기존 이론이 설명하지 못했던 불균일한 환경에서의 확산 현상의 물리적 원인을 160년 만에 규명했다.
KAIST는 김용정 수리과학과 교수와 최명철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불균일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분류 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확산 법칙과 실험적 증명을 제시하는 연구결과를 8월 30일 국제학술지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공개했다고 2일 밝혔다.
물에 잉크 방울을 떨어뜨리면 잉크의 색소 입자들이 퍼져 나가는 것처럼 한 곳의 입자가 무작위로 퍼져 나가는 현상을 확산이라고 한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분자가 '무작위 행보(random walk)'로 움직인다는 개념을 이용해 확산 현상을 설명했다. 무작위 행보는 공간에서 매 순간 무작위(확률적)로 이동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수학적 개념이다. 이후 균일한 환경에서의 확산 이론이 정립됐다.
1856년에는 불균일한 환경에서의 확산으로 입자 밀도가 균일해지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분류(fractionation)' 현상이 발견됐다. 불균일 확산은 서로 다른 금속 물질 사이에서의 확산, 온도 차이로 일어나는 열확산 등이 있다.
분류 현상은 균일한 환경에서 확산하는 입자 움직임만으로는 정확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과학자들은 현상을 먼저 관찰하고 관찰 결과를 모델에 맞춰 적용해왔다. 불균일 확산에서 입자 확산 외에 대류(advection) 현상 등이 추가로 존재해 분류 현상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쟁은 160여 년간 이어져 왔다.
연구팀은 아인슈타인의 '입자적 설명'이 분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확산을 설명하는 기존 방정식에서는 확산 계수가 D 하나였지만 연구팀은 D를 다시 전도도 K와 운동성 M으로 나눈 '2개 요소 확산 법칙'을 만들었다.
새로운 확산 법칙이 분류 현상을 완전히 설명한다면 대류 등 추가 설명 없이 입자의 무작위 운동만으로 분류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연구팀은 새로운 확산 법칙을 검증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했다.
폴리아크릴아마이드 젤(Polyacrylamide Gel)은 빈 공간이 많은 다공성으로 내부에서 확산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시간해상도가 높은 확산 데이터를 얻기 좋은 물질이다. 연구팀은 색소 입자를 젤 내에 넣고 일정 시간 동안 고체와 고체의 경계면을 넘어 확산하는 색소 입자를 관찰하며 분류 현상을 관찰했다.
확산 계수 D만을 사용하는 기존 단일 확산 계수 모델 3개와 연구팀의 K, M 2개 요소 확산 법칙의 수치해석을 적용해 비교한 결과 2개 요소 확산 법칙이 분류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자의 무작위 움직임만으로 분류 현상을 설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2개 요소 확산 법칙은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복잡한 환경에서 입자의 분포와 확산을 정밀하게 예측하면 기존 모델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연구팀이 발견한 확산 모델은 세포 내 물질 이동이나 약물 전달 시스템을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고 환경과학 분야에서는 오염 물질의 확산 경로나 제거 전략을 세우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산업 공정에서의 에너지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용정 교수는 "확산만으로도 입자의 분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중요한 발견으로 기존 확산 법칙이 설명하지 못한 현상을 정확히 해석해 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에서 온도 불균일에 의한 분류 현상과 고체 내 성분 불균일에 의한 분류 현상을 연구할 계획이다. 다양한 분류 현상을 2개 요소 확산 법칙으로 설명하고 그 특성을 규명하는 것이 목표다.
<참고 자료>
- doi.org/10.1021/jacs.4c05902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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