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아파트' 신드롬의 교훈, 대중은 팬덤을 이긴다!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K-콘텐츠가 또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가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지난 18일 발표한 노래 '아파트(APT.)'다. 그 의미도 모르는 세계인이 발음도 되지 않는 "아퐈트" "아프티"를 읊조리며 이 열기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2017년 그룹 방탄소년단 성공 이후 K-팝 열풍은 젊은 아이돌 가수들이 진두지휘했다. 방탄소년단 외에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등이 미국 빌보드 차트를 제 집 드나들 듯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양새가 조금 다르다. '제2의 방탄소년단'이 아니라 '제2의 강남스타일'을 논하고 있다. 왜일까? 이는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의 주류 집단과 이를 즐기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K-팝 시장의 행보를 고려할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결국 '대중'이 '팬덤'을 이긴다!
한국 가수가 처음 제대로 빌보드 차트를 두드린 건 지난 2012년 가수 싸이다. 그는 빌보드 차트 공략을 의식한 적도 없다. 그런데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서 공개된 뮤직비디오를 중심으로 글로벌 유저들의 주목을 받으며 하루 아침에 글로벌 스타로 거듭났다. 이 노래는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 2위까지 올랐다.
여기서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100'과 '빌보드200'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전자는 '노래 한 곡' 단위고, 후자는 '앨범' 단위다. 대다수 K-팝 그룹들은 후자를 공략한다. 왜일까? 팬덤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다. 똑똑해진 팬들도 지지하는 그룹의 성적을 올리는 방법을 잘 안다. 앨범 발매 시기에 맞춰서 엄청난 주문을 넣는다. 당연히 순식간에 빌보드200 순위가 급등한다. 그런데 문제는 뭘까? 불과 1, 2주가 지나고 나면 차트에서 밀려난다. 팬덤의 화력이 끝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반 대중에게 묻자. 유명 K-팝 그룹의 노래 중 제목을 알거나 가사를 알아서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얼마나 있나?
그럼 '강남스타일'을 보자. 남녀노소 누구나 이 노래의 멜로디에 익숙하다. "오빤 강남스타일"이라는 가사에 이은 말춤에 어깨를 들썩일 수 있다. 외국인들도 '강남'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이를 따라 했다. 핫100에 오르기 위해서는 미주 지역 라디오 방송을 비롯해 현지 곳곳에서 실제 이 노래가 흘러나와야 한다. 한국어 가사로 이뤄진 이 노래를 선곡할 방송사는 많지 않다. 하지만 과거 한국에서 '마카레나'를 부른 가수와 내용도 모른 채 그 노래와 춤이 유행했듯, '강남스타일'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그러니 핫100 2위 등극이 가능했다.
팬덤이 아닌 일반 대중이 모이는 유튜브를 봐도 알 수 있다. K-팝 시장을 통틀어 역대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노래는 단연 '강남스타일'이다. 현재까지 53억 뷰를 기록 중이다. K-팝 그룹 중에서는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가 18억 뷰로 1위다. '다이너마이트'의 경우 팬데믹 시절, 전 세계를 위로하는 노래로 주목을 받았다. 그만큼 범 대중을 포용할 역량을 갖춘 곡이라는 의미다.
지금 '아파트'가 주목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블랙핑크의 팬이 아니라도, 로제를 모르더라도 이 노래는 듣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노래는 공개된 지 닷새 만에 누적 조회수 1억 뷰를 돌파했다. 올해 공개된 모든 노래를 통틀어 가장 좋은 성적이다. 그런데 이 화제성은 이제 시작이다. 팬덤이 아니라 대중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2의 강남스타일'이 될 수 있을까?
현재까지 반응은 긍정적이다. '아파트'는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글로벌·미국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 한국 여성 솔로 가수가 이 차트 1위에 오른 것도 최초다. 물론 피처링으로 참여한 브루노 마스의 팬덤과 블랙핑크의 팬덤이 결집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 대한 정확한 반응을 알기 위해서는 이 콘텐츠를 갖고 대중이 만들어가는 놀이 문화에 집중해야 한다.
'아파트'는 로제가 한국 술먹기 게임에 착안해 직접 만든 곡이다. 세계를 돌며 여러 지인들에게 이를 전파했고, 노래까지 만들었다. 당초 발표하지 않으려고도 했으나 이미 많은 이들이 이 노래에 중독됐다는 것을 깨닫고 다듬은 후 공개했다. 이후 글로벌 인구는 '아파트'의 정확한 뜻도 모른 채 '콩글리시(한국에서만 쓰는 영어식 표현)'로 "아퐈트"를 외치고 있다. 이는 앞서 '강남'을 모른 채 "강남스타일"을 외치던 양상과 퍽 유사하다.
미국과 독일의 클럽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자 일제히 "아퐈트"를 외치며 군무를 추는 영상도 공개됐다. 한 네테즌이 로제의 SNS에 "아파트는 아파트먼트(apartment)?"라고 묻자 로제가 "아니요, 아파트(apatue)!'라는 답하기도 했다. 한국의 고유한 문화로서 '아파트'가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일종의 서브컬처(Sub-culture)다. 주류 문화가 아닌 하위 문화를 뜻하는데, B급 정서와 새로운 놀이 문화를 추구하는 글로벌 MZ세대의 취향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물론 '아파트'가 '제2의 강남스타일'이 될 것이라 단언할 순 없다. 하지만 '강남스타일' 이후 오랜만에 팬덤이 아닌 대중이 함께 즐길 수 있는 K-콘텐츠가 탄생한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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