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런 난리 처음" 민가까지 덮친 홍성 산불로 주민 발 동동

강수환 2023. 4. 2.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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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집 전원 끄고 몸만 대피"…화마 덮친 마을에는 연기 가득

(홍성=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다 탔여! 양곡(양곡리)이고 뭐고 집덜도 다 타고…"

삶의 터전이 걱정되는 홍성 산불 인근 주민들 (홍성=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2일 오전 11시께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8시간 넘게 계속되자, 마을 주민들이 걱정하며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산림 당국 등은 산불 3단계를 발령하고 헬기 17대와 장비 67대, 인력 1천757명을 동원해 불을 끄고 있으나 이날 밤을 넘겨야 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3.4.2 swan@yna.co.kr

2일 오전 11시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발생한 산불로 대피한 주민들의 마음은 '당황'과 '착잡' 그 자체였다.

처음 서부면 중리에서 발생한 불이 최대 초속 11m의 강한 돌풍에 순식간에 인근 양곡리, 신리 민가까지 확대됐다.

시뻘건 불길이 산 바로 밑 민가까지 위협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주민들은 연신 근처를 서성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산 바로 밑에 집이 있다고 한 최모(81)씨 휴대전화기는 가족과 지인에게서 걸려 오는 안부 전화에 연신 울려댔다.

"시집와서 스무여섯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디 이런 일이 오디가 있대, 세상에. 저짝에 내 집이 있는디 불에 탈까 봐 무서워."

민가까지 내려온 불길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최씨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최씨와 함께 밖으로 나와서 불을 바라보던 주민들은 "무서워서 여기 나와 보는 거여"라며 자신들의 집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날 오전 11시 40분께 이곳 신리까지 불길이 옮겨붙으며 주민들은 전원을 끄고 가정용 가스통을 따로 빼놓고 몸만 급히 대피했다고 전했다.

민가까지 덮친 홍성 산불 (홍성=연합뉴스) 2일 오전 11시께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민가까지 확산하고 있다. 8시간 넘게 확산하고 있는 산불로 산림 당국 등은 산불 3단계를 발령하고 헬기 17대와 장비 67대, 인력 1천757명을 동원해 불을 끄고 있으나 이날 밤을 넘겨야 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3.4.2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swan@yna.co.kr

대피했다가 불길이 잠잠해지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주민 김모(50)씨는 "서산에 사는데 엄마 집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정오쯤에 불을 목격하고 급하게 대피했었다"면서 "바람이 아까는 말도 못 했다. 불씨가 500m 이상을 넘어 민가까지도 날아들었는데 바람 방향이 시시각각 달라져서 정말 무서웠다"고 화재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근 주민인 최모(54)씨도 "3시 이후에 불길이 세져 대피했는데 불이 집 주변 산을 휘감더라"면서 "코앞에서 빨간 불꽃이 크게 솟구치는 공포는 겪어본 사람 아니면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후 6시께부터는 바람 방향에 따라 서쪽으로 번지던 불길은 잠잠해졌지만, 동풍이 불면서 불길이 다시 거세지고 있는 모양새를 보였다.

일몰이 다가온 시각 서부면 양곡리에서는 마을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이 타버려 마을에는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아직도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있던 임야로부터 불이 옮겨붙은 집은 지붕이 가라앉았고 여전히 불꽃이 보이며 타고 있었다.

이미 대피해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던 인근에는 오직 다 터버려 검게 변한 임야와 밭, 그리고 마을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길고양이만 남아 있었다.

임시 대피소로 운영되는 서부초등학교로 급히 피해 있던 양곡리 주민 조모(77)씨는 "돈지갑도 못 갖고 나왔고 혈압약이랑 다리 아플 때 먹는 약을 먹어야 하는디 불이 너무 심해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혀"라고 걱정했다.

산불에 타버린 홍성 민가 (홍성=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2일 오전 11시께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8시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산림당국 등은 산불 3단계를 발령하고 헬기 17대와 장비 67대, 인력 1천757명을 동원해 불을 끄고 있으나 이날 밤을 넘겨야 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불타고 있는 민가. 2023.4.2 swan@yna.co.kr

조씨의 손녀딸인 박모(25)씨는 할머니가 요청한 짐을 가지러 다시 집에 가려고 했지만 가는 길이 불길 때문에 너무 뜨거워서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박씨는 "할머니 집에 다시 들어가려고 차를 끌고 가는데 차 안에서까지도 열기가 느껴져서 무서워서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대피소로 달려온 주민 김정자(86)씨도 "집이 산 밑이라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라며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방송을 듣고 딸 차를 타고 급히 피했다는 김씨는 "딸내미가 청주 사는디 불났다고 하니까 내가 걱정돼 와봤댜. 아휴 나 진짜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겠네"라며 눈가의 눈물을 닦아냈다.

다른 주민들도 "이런 난리는 처음이지", "남의 동네에서 난 게 이짝까지 넘어온 거니까 얼매나 무서워", "이렇게 불난 건 처음이여, 새빨개져 가지고" 등의 말로 저마다 걱정되고 초조한 마음을 털어놨다.

일몰 시각이 지난 오후 9시에도 서부면 일대에는 여전히 불길이 이어졌다.

오후 6시부터 안전상 진화 헬기 운영이 중단되자 인근 주민들은 자체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민가까지 덮친 홍성 산불 (홍성=연합뉴스) 2일 오전 11시께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민가까지 확산하고 있다. 8시간 넘게 확산하고 있는 산불로 산림 당국 등은 산불 3단계를 발령하고 헬기 17대와 장비 67대, 인력 1천757명을 동원해 불을 끄고 있으나 이날 밤을 넘겨야 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3.4.2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swan@yna.co.kr

서부면 신리에 사는 한 주민은 농약 펌프 기계에 물을 담아 능선 아래쪽으로 물을 뿌리며 민가로 불이 확산하는 것을 막거나, 인근 갈산면에서 수산업을 하는 이들은 수산물 운반 트럭에 물을 담아와 진화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산림 당국은 해가 지면서 진화 헬기는 철수시키고, 산불공중진화대,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등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불을 끄고 있다.

sw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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