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맛에도 계급이?…대가들이 선사하는 천연 MSG [스프]
2024. 10. 3. 09:03
[주즐레]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최근 10년간 방송가를 휩쓴 '쿡방'(요리 방송) 열풍은 실로 대단했다. 미슐랭 셰프와 전국 각지의 명인, 재야의 고수까지 난다긴다하는 요리의 달인들을 끌어들인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욕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대중의 '식욕'을 자극하며 시청률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반복과 범람은 지겨움을 낳았고, 어느 순간 레드오션이 되고야 말았다.
트렌드의 끝물에서 또 하나의 대박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다.
추석 연휴 공개된 '흑백요리사'는 지난달 22일까지 3,80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TV 비영어 부문 1위(넷플릭스 TOP 10 웹사이트 통계)를 달성했다. 또 다른 OTT 순위 전문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25일 기준 미국에서도 6위에 오르면서 주목받았다.
닳고 닳은 아이템이건만 도대체 뭐가 달랐을까. 능력자들의 총망라, 심사위원의 스타성, 역대급 스케일, 룰의 파격 등 그야말로 요리 서바이벌의 '끝판왕'을 보여준 기획이자 재미다.
흑백요리사는 100명의 요리사가 우승 상금 3억 원을 획득하기 위해 맛 대결을 펼치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바둑 경기처럼 팀을 나누기 위해 도전자들을 흑과 백으로 나눈 것이 아니다. 이 네이밍에는 흙수저(=흑수저)와 금수저(=백수저)의 함의가 담겨 있다.
백수저에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수석 주방장부터 세계 요리대회 우승자, 한국과 미국의 각종 요리 서바이벌 대회 우승자, 백악관 만찬 요리사, 대한민국 요리 명장 등 화려한 이력의 셰프들이 포진돼 있다.
흑수저는 미슐랭 스타와 같은 훈장보다는 독특한 이력으로 눈길을 끈다. 요리를 만화로 배웠다는 요리사, 중국집 배달부 출신의 중식 셰프, 140만 구독자를 보유한 요리 유튜버, 을지로와 신당동, 남영동, 연희동 등에서 MZ들의 폭발적 인기를 기반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신진 요리사 등이 포진돼 있다.
제작진은 셰프의 인기만큼이나 경력이나 명예의 정도에 따라 흑과 백을 나눈 것처럼 보인다. 물론 미슐랭 별이 140만 유튜버보다 유명하다거나 영향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흑백의 비율과 적용되는 룰도 조금 달랐다. 제작진이 선택한 20명의 백수저들은 부전승으로 2라운드 진출권을 확보해 1라운드를 관전만 했다. 80명의 흑수저들은 20명만이 살아남는 1라운드를 통과해야 비로소 백수저들과 맞대결을 펼칠 수 있다.
제작진들은 "이 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리를 떠나도 좋다"고 말한다. 당연하게도 흑수저들은 불평등한 시작에 불만을 드러내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백수저들을) 밟아버리겠다"라고 전의를 불태우고, "맛으로 이기면 되는 거 아냐"라며 패기를 보여준다.
백수저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만만찮은 저력의 흑수저들을 보며 '지면 쪽팔린다'고 되뇐다. '흑백요리사'는 요리 흙수저가 금수저에 맛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금수저는 흙수저에게 연륜과 내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른바 패기와 자존심의 대결로 점철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차고 넘쳤던 쿡방 프로그램과 비교해 '흑백요리사'만의 특별함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스케일이 역대급이다. 대인원의 셰프가 요리할 수 있는 대형 세트장을 찾아 상하수 수도관, 가스관을 설치하는 기반 공사를 했다. 프로 프로덕션에만 180일을 소요했다.
총 100명의 셰프들이 출전한 이 경쟁에서는 총 254개의 요리가 탄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라이팬과 냄비, 접시 등 조리도구만 1,000개 이상 사용됐다.
요리가 탄생하는 생생한 과정을 담기 위해 촬영마다 300대가 넘는 카메라가 거치됐다. 카메라는 셰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것은 물론이고 80명 셰프들의 요리 현장을 부감으로 한 화면에 담아내는 장관을 연출했다.
뭐니 뭐니 해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결국 '사람'과 '이야기'가 핵심이다. 도전자들의 다양한 이력은 '흑백요리사'의 최고 재미 포인트다. 여타 프로그램과 비교하자면, 개개인의 사연을 비중 있게 강조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고수들의 이력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흑수저들의 이색 백그라운드는 화려한 경력으로 무장한 백수저들과의 대결에서 극대화된다.
30년 중식 대가 vs 배달부 출신의 요리사, 이탈리아 미슐랭 레스토랑 출신 셰프 vs 최고의 리조또를 만든다는 한국 요리사가 맞붙는 식이다.
계급장을 떼고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흑수저와 백수저는 오로지 맛으로만 승부를 펼친다. 음식의 맛만 있다면 꼬리 칸도 머리 칸으로 이동할 수 있고, 머리 칸도 꼬리 칸으로 떨어지는 당락의 롤러코스터, 그것이 이 서바이벌의 묘미다.
그렇다면 이 고수들을 누가 심사할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맛을 평가할 것인가. 제작진은 백종원과 안성재라는 양극단의 인물을 심사위원으로 선택했다.
백종원은 요식업계의 '미다스의 손'이고, 안성재는 대한민국 유일의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의 셰프다. 대중이 좋아하는 표준적인 맛을 제시하는 사업가와 '파인 다이닝'이라 불리는 최고급 코스 요리의 장인이 '맛의 우열'을 가린다.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두 사람이 맛의 우위를 공정하게 가릴 수 있을까. 맛의 객관과 주관을 어떤 기준으로 정립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흑수저 도전자들의 이력과 장기가 소개된 1라운드가 재미를 위한 빌드업이었다면, 흑수저와 백수저가 본격적으로 맞붙는 2라운드부터는 재미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졌다.
개인전과 팀전, 패자부활전 등 요리 서바이벌에서 즐겨 썼던 경쟁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약간의 변형도 가미했다.
특히 흥미로웠던 건 2라운드에 펼쳐진 블라인드 심사다. 제작진이 심사의 공정함을 위해 채택했던 이 룰은 '맛' 외의 요소가 평가에 관여되는 것을 배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두 심사위원은 흑과 백의 음식을 맛본 뒤 한쪽에 투표하고, 동률이 나오는 경우 상의를 통해 최종 심사를 내린다. 이때 서로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상대를 설득한다.
안성재는 요리에 창의의 개념을 넣어 손님에게 고가의 체험을 선사한 셰프라면, 백종원은 음식의 계량화를 통해 표준적인 맛을 대중에게 제시한 인물이다.
'한 끼에 30만 원짜리 요리를 제공하는 셰프가 단가 6,000원짜리 식판 밥에 좋은 점수를 줄까', '7,000원짜리 짬뽕을 팔고, 1,500원짜리 커피를 파는 사업가가 파인 다이닝 요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일말의 우려는 이들의 심사를 보며 선입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안성재 셰프는 급식 대가의 식판 밥을 맛본 뒤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는 맛"이라며 극찬했고, 백종원은 트리플 스타의 음식을 맛본 뒤 "작은 음식에서 여러 가지 맛이 난다"며 단번에 합격을 외쳤다.
이들의 날카로운 심사를 통해 맛에는 계급과 등급이 없으며 고급진 맛과 저급한 맛도 없다는 것, 그저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만 있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최근 10년간 방송가를 휩쓴 '쿡방'(요리 방송) 열풍은 실로 대단했다. 미슐랭 셰프와 전국 각지의 명인, 재야의 고수까지 난다긴다하는 요리의 달인들을 끌어들인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욕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대중의 '식욕'을 자극하며 시청률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반복과 범람은 지겨움을 낳았고, 어느 순간 레드오션이 되고야 말았다.
트렌드의 끝물에서 또 하나의 대박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다.
추석 연휴 공개된 '흑백요리사'는 지난달 22일까지 3,80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TV 비영어 부문 1위(넷플릭스 TOP 10 웹사이트 통계)를 달성했다. 또 다른 OTT 순위 전문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25일 기준 미국에서도 6위에 오르면서 주목받았다.
닳고 닳은 아이템이건만 도대체 뭐가 달랐을까. 능력자들의 총망라, 심사위원의 스타성, 역대급 스케일, 룰의 파격 등 그야말로 요리 서바이벌의 '끝판왕'을 보여준 기획이자 재미다.
흑수저 vs 백수저, 요리에 계급이라니
백수저에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수석 주방장부터 세계 요리대회 우승자, 한국과 미국의 각종 요리 서바이벌 대회 우승자, 백악관 만찬 요리사, 대한민국 요리 명장 등 화려한 이력의 셰프들이 포진돼 있다.
흑수저는 미슐랭 스타와 같은 훈장보다는 독특한 이력으로 눈길을 끈다. 요리를 만화로 배웠다는 요리사, 중국집 배달부 출신의 중식 셰프, 140만 구독자를 보유한 요리 유튜버, 을지로와 신당동, 남영동, 연희동 등에서 MZ들의 폭발적 인기를 기반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신진 요리사 등이 포진돼 있다.
제작진은 셰프의 인기만큼이나 경력이나 명예의 정도에 따라 흑과 백을 나눈 것처럼 보인다. 물론 미슐랭 별이 140만 유튜버보다 유명하다거나 영향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흑백의 비율과 적용되는 룰도 조금 달랐다. 제작진이 선택한 20명의 백수저들은 부전승으로 2라운드 진출권을 확보해 1라운드를 관전만 했다. 80명의 흑수저들은 20명만이 살아남는 1라운드를 통과해야 비로소 백수저들과 맞대결을 펼칠 수 있다.
제작진들은 "이 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리를 떠나도 좋다"고 말한다. 당연하게도 흑수저들은 불평등한 시작에 불만을 드러내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백수저들을) 밟아버리겠다"라고 전의를 불태우고, "맛으로 이기면 되는 거 아냐"라며 패기를 보여준다.
백수저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만만찮은 저력의 흑수저들을 보며 '지면 쪽팔린다'고 되뇐다. '흑백요리사'는 요리 흙수저가 금수저에 맛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금수저는 흙수저에게 연륜과 내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른바 패기와 자존심의 대결로 점철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차고 넘쳤던 쿡방 프로그램과 비교해 '흑백요리사'만의 특별함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스케일이 역대급이다. 대인원의 셰프가 요리할 수 있는 대형 세트장을 찾아 상하수 수도관, 가스관을 설치하는 기반 공사를 했다. 프로 프로덕션에만 180일을 소요했다.
총 100명의 셰프들이 출전한 이 경쟁에서는 총 254개의 요리가 탄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라이팬과 냄비, 접시 등 조리도구만 1,000개 이상 사용됐다.
요리가 탄생하는 생생한 과정을 담기 위해 촬영마다 300대가 넘는 카메라가 거치됐다. 카메라는 셰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것은 물론이고 80명 셰프들의 요리 현장을 부감으로 한 화면에 담아내는 장관을 연출했다.
뭐니 뭐니 해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결국 '사람'과 '이야기'가 핵심이다. 도전자들의 다양한 이력은 '흑백요리사'의 최고 재미 포인트다. 여타 프로그램과 비교하자면, 개개인의 사연을 비중 있게 강조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고수들의 이력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흑수저들의 이색 백그라운드는 화려한 경력으로 무장한 백수저들과의 대결에서 극대화된다.
30년 중식 대가 vs 배달부 출신의 요리사, 이탈리아 미슐랭 레스토랑 출신 셰프 vs 최고의 리조또를 만든다는 한국 요리사가 맞붙는 식이다.
계급장을 떼고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흑수저와 백수저는 오로지 맛으로만 승부를 펼친다. 음식의 맛만 있다면 꼬리 칸도 머리 칸으로 이동할 수 있고, 머리 칸도 꼬리 칸으로 떨어지는 당락의 롤러코스터, 그것이 이 서바이벌의 묘미다.
백종원-안성재, 요식업계의 왕과 파인 다이닝 대가의 입맛
백종원은 요식업계의 '미다스의 손'이고, 안성재는 대한민국 유일의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의 셰프다. 대중이 좋아하는 표준적인 맛을 제시하는 사업가와 '파인 다이닝'이라 불리는 최고급 코스 요리의 장인이 '맛의 우열'을 가린다.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두 사람이 맛의 우위를 공정하게 가릴 수 있을까. 맛의 객관과 주관을 어떤 기준으로 정립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흑수저 도전자들의 이력과 장기가 소개된 1라운드가 재미를 위한 빌드업이었다면, 흑수저와 백수저가 본격적으로 맞붙는 2라운드부터는 재미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졌다.
개인전과 팀전, 패자부활전 등 요리 서바이벌에서 즐겨 썼던 경쟁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약간의 변형도 가미했다.
특히 흥미로웠던 건 2라운드에 펼쳐진 블라인드 심사다. 제작진이 심사의 공정함을 위해 채택했던 이 룰은 '맛' 외의 요소가 평가에 관여되는 것을 배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두 심사위원은 흑과 백의 음식을 맛본 뒤 한쪽에 투표하고, 동률이 나오는 경우 상의를 통해 최종 심사를 내린다. 이때 서로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상대를 설득한다.
안성재는 요리에 창의의 개념을 넣어 손님에게 고가의 체험을 선사한 셰프라면, 백종원은 음식의 계량화를 통해 표준적인 맛을 대중에게 제시한 인물이다.
'한 끼에 30만 원짜리 요리를 제공하는 셰프가 단가 6,000원짜리 식판 밥에 좋은 점수를 줄까', '7,000원짜리 짬뽕을 팔고, 1,500원짜리 커피를 파는 사업가가 파인 다이닝 요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일말의 우려는 이들의 심사를 보며 선입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안성재 셰프는 급식 대가의 식판 밥을 맛본 뒤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는 맛"이라며 극찬했고, 백종원은 트리플 스타의 음식을 맛본 뒤 "작은 음식에서 여러 가지 맛이 난다"며 단번에 합격을 외쳤다.
이들의 날카로운 심사를 통해 맛에는 계급과 등급이 없으며 고급진 맛과 저급한 맛도 없다는 것, 그저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만 있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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