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그거"만 반복한다면 … 뇌 노화 아닌 편협한 사용 때문

이병문 매경헬스 기자(leemoon@mk.co.kr) 2023. 8. 2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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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기억 관련 뇌세포 먼저 발달 청소년 시절땐 암기에 강해
30세 전후 고도의 어른 뇌로 발전
감정·운동·시각·청각·언어 등
다양한 뇌영역 활용해 기억 저장
외국어 공부 도전하는 4050
10대처럼 달달 외우기 어렵지만
맥락 파악하는 이해력은 강해
日 명의 가토 도시노리 박사
"건망증은 뇌의 노화 탓 아냐
스무 살부터 뇌세포는 줄어들지만
다양한 자극 노출땐 계속 성장"

나이가 들면서 특정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어, 그거' 또는 '거시기'라는 표현이 많아진다. 또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도전해 보지만 젊었을 때처럼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외워도 쉽게 잊어버린다.

누구나 40·50대 이후가 되면 뇌 기능 저하를 실감하게 된다. 종종 친구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갑자기 잊어버리곤 한다. 간단한 한자를 쓰는 법도 까먹게 된다. 정년 이후를 대비해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외국어 단어를 달달 외우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한 경험이 적지 않다. 뇌가 노화돼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면서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일본경제신문은 뇌 명의인 가토 도시노리 박사의 말을 인용해 "중장년 세대의 건망증이나 기억력 저하는 대부분 노화에 따른 퇴행이라기보다 뇌의 편협한 사용, 즉 뇌의 매너리즘이 원인이 돼 일어난 것"이라며 "뇌의 노화 여부는 사용하기 나름이며 몇 살이 돼도 뇌의 세포들을 잇는 네트워크는 나뭇가지처럼 성장해간다"고 보도했다.

가토 박사에 따르면 우리 뇌는 환경과 직업, 인생 경험, 평소 뇌 이용에 따라 형성된다. 각각의 뇌는 주인을 닮은 생김새나 개성이 있어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뇌의 영역은 신경세포끼리 연결된 네트워크가 발달해 백질(white matter·신경섬유로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이 굵어진 반면, 잘 사용하지 않는 영역의 백질은 가늘어진다. 그는 "뇌의 특정 영역만 사용하고 다른 영역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의 미발달된 뇌 영역에 새로운 자극을 계속 주고 이르면 2주, 늦어도 3개월 뒤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해 보면 백색질이 굵게 성장해 있을 정도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어 저하된 기억력과 인지기능은 어른이 돼 수십 년간 직업에 따른 편향된 뇌 사용 때문이라는 게 가토 박사 분석이다.

뇌세포는 어른이 되면 하루 2만~10만개가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지만 뇌를 계속 쓰면 뇌기능이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뇌세포 감소 자체가 뇌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기억력과 인지기능 저하는 뇌세포끼리 연결돼 있는 네트워크를 발달시키면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가토 박사는 일본 최고 뇌 전문가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그는 30년 넘게 0세 어린이부터 100세 초고령자까지 1만명 이상의 뇌를 MRI로 진단하고 치료해왔다. 가토 플래티넘 클리닉을 운영하는 가토 박사는 현재 세계 700개 시설에서 사용되는 뇌 활동 계측 fNIRS(에프닐스)법을 발견했으며 1995~2001년 미국 미네소타대 방사선과에서 알츠하이머병이나 MRI 뇌영상을 연구한 바 있다. 그는 '평생 머리가 좋아진다 대단한 뇌 사용법'(선마크 출판) '인생이 편해지는 뇌 연습'(닛케이 비즈니스인 문고) 등을 발간하기도 했다.

뇌는 우리 몸의 혈관 및 신경세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어느 한 곳이 작동을 멈추게 되면 각종 질환이 발생한다. 뇌는 용량이 1.5ℓ밖에 안 되지만 소우주라고 불릴 만큼 신비스럽다. 뇌의 80%는 수분이며 나머지 20%는 물리적·화학적 구조로 이뤄져 있다. 뇌의 무게는 70㎏인 사람의 경우 전체 몸무게 중 2%에 불과하다. 신생아의 뇌 무게는 400g 정도이지만 태어나서 3세, 4~7세, 10세 전후의 3단계를 거쳐 발달하며 20세 정도에서 완성된다. 다 자란 어른의 뇌 무게는 남자가 평균 1400g, 여자가 1250g쯤 된다. 뇌는 몸이 사용하는 산소와 당분의 25%를 영양분으로 소비한다. 뇌는 산소 부족에 매우 민감해 성인의 경우 4~5분 동안 뇌에 산소 공급이 안 되면 신경세포가 죽게 된다. 뇌에 흐르는 혈액량은 전체 혈액의 15%에 이르며 뇌 신경세포는 산소와 포도당을 사용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뇌는 신경계라는 운하에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떠다니고 있으며 그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모두 사용하고 있다. 뇌 신경세포 1000억개는 우리 인간이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하루 약 274만개꼴이다. 뉴런이라고도 하는 신경세포는 신경아교세포와 함께 뇌세포를 구성하는 주요 유형이다.

신경세포는 시냅스에서 방출되는 신경전달물질을 사용해 다른 신경세포와 통신하며 억제 또는 흥분시킬 수 있다. 신경아교세포는 뉴런, 즉 신경세포를 지지하는 세포다.

뇌세포는 20세 전후부터 감소한다. 그러나 뇌세포들이 서로 연결돼 기능하는 네트워크 완성은 30세 전후다. 가토 박사는 "뇌세포 네트워크가 완성되는 '뇌 성인식 나이'는 30세로 파악하고 있다"며 "그 이후에도 뇌를 사용할수록 뇌 네트워크는 성장한다"고 밝혔다. 뇌의 네트워크를 활발하게 작동시키지 않는 게 뇌 기능 저하를 부르는 주범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30세 전후를 기점으로 암기를 잘하는 '학생 뇌'에서 다양한 자극 및 경험을 축적해 고도의 기능을 갖춘 '어른 뇌'로 전환한다고 설명한다. 학생 뇌는 새로운 정보를 머리에 통째로 넣고 싶을 때, 자료를 첫 페이지부터 읽고 통째로 암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른 뇌는 학생 뇌와 달리 사고, 기억, 감정, 운동, 시각, 청각을 관장하는 뇌의 다양한 영역을 골고루 자극하면서 활성화되고 변화·성장해 간다. 이 때문에 40·50대 이후에 통째로 암기하는 10대 접근 방식으로 포스트잇을 붙이고 줄을 긋고 외워도 잘 까먹는다며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졌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뇌세포 네트워크는 경험과 자극, 뇌 속으로 유입되는 정보에 의해 형성된다. 많은 사람이 학생 때처럼 기억을 못하게 된 것을 뇌 노화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경험과 함께 뇌의 구조가 학창 시절과 다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기억의 방식도 바뀌고 있다.

학생 뇌는 청각을 담당하는 영역과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의 연결이 강해 전혀 모르는 말(단어)이라도 그대로 기억하고, 나중에 그 의미를 알고 이해하는 순서로 뇌를 작동시킨다. 그러나 어른 뇌는 '청각-기억'뿐 아니라 '이해-기억'을 중심으로 뇌의 여러 영역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기억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경험이나 정보라는 자극을 받아 이해나 사고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발달하는 가운데,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뇌의 경로(루트)가 차례차례 개통되어간다. 따라서 중장년층 이후에는 의미 없는 기억을 통째로 암기하는 것보다 의미를 이해한 뒤 기억해야 뇌가 더욱더 쉽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어른 뇌를 효율적으로 성장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뇌 영역을 넓고 균형 있게 사용해야 한다. 가토 박사는 "뇌는 섬세하고 복잡한 조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단순한 측면도 갖고 있다"며 "뇌의 특성을 올바르게 알고 그 특성에 맞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뇌 성장을 효율적으로 촉진한다"고 강조한다.

뇌 영역은 기능에 따라 크게 8개로 나뉘며 각 영역은 서로 연계해 작동하고 있다. 뇌의 8개 영역은 △사고계(사고, 판단, 의욕과 관련) △감정계(희로애락 등 감정이나 감성, 사회성과 관련) △전달계(말하는 것, 의사소통과 관련) △이해계(사물이나 언어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 △운동계(몸을 움직이는 것과 관련) △청각계(귀로 듣는 것과 관련) △시각계(눈으로 보는 것과 관련) △기억계(느낌, 맛, 생각나는 것과 관련) 등이다.

뇌는 사람마다 자주 쓰는 영역과 잘 쓰지 않는 영역이 다르고, 그중에서도 하루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업무 내용과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영업직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전달계', 연구직은 정보를 이해하는 '이해계', 교사는 '전달계'나 학생을 관찰할 필요가 있으므로 눈으로 본 정보를 뇌에 집적시키는 '시각계', 간호직은 '시각계'를 작동시키는 경우가 많아진다. 전화를 받는 일이 많으면 귀로 들은 말이나 소리를 뇌로 전달하는 '청각계'가 가장 강하게 사용된다. 일에 열심인 나머지 다른 분야에 흥미가 생기지 않아 공휴일에 멍하니 있다는 사람은 편향된 뇌 영역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로 업무에서 벗어나면 뇌의 다른 영역을 자극해줘야 한다. 뇌에도 자주 사용하는 '고속도로'와 '일반도로'가 있는데, 한쪽에 치우쳐 사용하면 뇌 기능이 모두 녹슬게 된다. 일반적으로 일의 직종이나 생활 스타일에 따라 흔히 쓰는 뇌 영역과 잘 사용하지 않는 뇌 영역은 개인차가 크다.

직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뇌 영역 신경세포 간 네트워크는 '고속도로 운전'과 같이 처리 속도가 빠르고 익숙하다. 그러나 일반도로에 해당하는 뇌 영역은 점점 황폐해지고 덜컹거리는 길이 된다. 뇌는 고속도로에 적응하게 되면 매일 고속도로화된 뇌 영역을 사용하려고 하고 걸쭉하게 달리는 일반도로 사용을 기피한다. 게다가 고속도로도 과도하게 사용하면 매너리즘에 빠져 무기력하게 되고 업무 이외의 새로운 것(일반도로에 해당하는 뇌 네트워크)이 머리에 들어오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뇌는 질리기 쉬워 뇌가 일하기를 원한다면 뇌가 좋아할 환경을 조성하거나 보상을 준비한다. 뇌는 매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래서 가급적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중요하지 않은 것에 뇌를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보상이 준비돼 있으면 금세 동기부여가 돼 일을 잘하게 된다. 항상 같은 산책로를 다니거나 같은 일을 반복하면 안심은 되지만 뇌는 질리고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뇌가 하기 싫은 일이 끝나고 나서 이것을 먹겠다며 좋아하는 디저트를 냉장고에 저장해 둔다면 평소 이상의 퍼포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가토 박사는 "어른 뇌는 우거진 가지와 같은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더 넓혀가기 위해 많은 영양을 필요로 한다"며 "뇌를 역동적으로 사용해야 노화와 함께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치매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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