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포부터 해제까지 6시간…역대 비상계엄은?
10·26 이후 45년만… 최장은 5·16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계엄이 선포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상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뉘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비상계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열두번째이자 민주화 이후 처음 벌어진 일이다.
■ 최초 비상계엄은 여순사건…이후 4·3사건으로
우리나라의 첫번째 계엄령은 1948년 10월25일 시작됐다. 이승만 정부 수립 2개월 만이다.
당시 전라남도 여수시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군인 2천여명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일으킨 ‘여순사건’(麗順事件)으로 인해 여수·순천 일대에 발효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라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지만 사실상 비상계엄이 맞다. 국내 첫번째 계엄령은 1949년 2월5일 해제됐다.
여순사건 관련 계엄이 진행되던 사이, 제주 4·3사건을 두고도 제주지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1948년 11월17일부터 12월31일까지 46일간이다.
두 차례의 (비상)계엄이 지나고 1949년 11월24일 우리나라에 '계엄법'이 생겼다.
■ 전국단위 처음은 6·25전쟁…비상계엄↔경비계엄 '790일'
반 년 정도 흐른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이 침공하며 6·25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초기 남한군이 경상도 지역까지 후퇴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7월8일부로 대구광역시에서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내 세 번째 (비상)계엄이면서, 전국 단위로는 첫 계엄이다.
이 무렵에는 1950년 11월10일 경비계엄, 12월7일 비상계엄, 1951년 3월23일 경비계엄, 12월1일 비상계엄 등이 번갈아가며 선포됐다.
6·25전쟁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총 790일의 '계엄' 상태를 맞아야만 했다.

■ 부산정치파동 및 4·19민주화운동 때도 선포
다음도 이승만 시절이다.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부결시키자 1952년 5월25일 부산·경남 등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2개 대대 병력을 투입할 것을 육군본부에 명령했을 때다. 일명 '부산정치파동'에 따른 비상계엄으로, 7월28일까지 두달여간 이어졌다.
얼마 뒤인 1960년 4월19일에도 다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이승만이 4·19민주화운동을 막기 위해 '오후 3시 서울'에 한해 비상계엄을 발표한 것이다. 계엄군을 보내 학생 시위를 막겠다는 발상이었지만 오후 1시30분 경찰의 발포가 시작되고 사망자가 쏟아지면서 시간이 '오후 1시'로 소급됐다. 이후 '오후 5시' 기준 부산, 광주, 대전, 대구, 전주 등으로 계엄령이 확대됐다.
■ '국가 안보와 질서 유지' 때문이라던 박정희 정권
이승만의 시대가 갔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는 여전히 순탄치 않았다.
1961년 5·16군사정변(5월16일), 1964년 6·3항쟁(6월 3일), 1972년 10월 유신(10월17일)에도 각각 비상계엄이 발령됐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해제되기까지 가장 긴 기간을 보낸 건 5·16군사정변 시절이다. 장도영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12일의 비상계엄과 558일의 경비계엄이 존재했다.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6·3항쟁과 10월 유신에서도 각각 58일, 69일의 계엄 시대를 보냈다. 모든 '명분'은 국가 안보와 질서 유지였다. '한일회담에 반대해 대학생과 시민이 시위를 벌이자 이를 진압하고 한일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헌법 개정·국회 해산·언론 및 집회 통제를 하기 위해서' 등 이유는 감춰졌다.
■ 유신 붕괴 이후에도 계엄 가능성 논의…40년간 조용
1979년 10월18일,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다. 부마민주항쟁이다. 정권은 사태 진압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같은 해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며 유신 체제가 붕괴했다. 박정희를 피격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체포된 후 신현확 부총리는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주도한 군사 반란 12·12사태(1979년 12월12일) 때, 이듬해 5·18민주화운동(1980년 5월18일) 때 비상계엄은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광주 지역에 계엄군이 투입되면서 수천명의 시민이 희생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 뒤에도 1987년 6월 민주항쟁 과정에서 정권은 계엄 발동 가능성을 논의했다. 하지만 국민적 저항과 국제 여론에 따라 실행하지 못해 계엄이 선포되진 않았다.
이때 헌법이 현행과 같이 개정되면서 계엄 발동 요건이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계엄 해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국회 사후 통제가 강화됐다. 그렇게 지금까지 40년 넘게 계엄령이 발동된 적이 없었다.

■ 헌정 사상 17번째 계엄령, ‘비상계엄’은 9번째
비상계엄을 '전국 단위'로 헤아릴 경우, ‘지역 단위’로 선포해 전국으로 확대된 경우를 헤아릴 경우 등에 따라 역대 비상계엄에 대한 수치는 달라진다. 국가기관 등도 “명확한 수치는 파악하는 곳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큰 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비상계엄이 열두번째로 볼 수 있다. 계엄령 선포 자체만 보면 헌정 사상 열일곱번째다.
지난 3일 오후 10시23분부터 4일 오전 4시27분까지 약 6시간 동안 진행된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선포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전 마지막 비상계엄(1979년) 이후 45년 만이자,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윤 정부는 종북 세력 척결과 자유 헌정질서 수호를 이유로 내세웠다.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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