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한 방씩 터트려주세요” [찾아가는 독자위원회]
‘바베트의 만찬’은 대전 갈마동에 있는 독립 서점이다. 서로를 ‘별지기’와 ‘철지기’라고 부르는 부부가 운영한다. 코로나19 유행이 매섭던 2021년 12월 문을 열어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한 달에 독서모임이 10개 이상 열릴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시사IN〉 읽기 모임인 ‘일상학교-뉴스카페’는 올해 3월 시작했다. 이 모임의 호스트인 슈가(한혜지씨)가 물꼬를 텄다. 울산에서 살다 대전으로 이직한 그는 울산에서도 〈시사IN〉 읽기 모임을 했다. “올 초에 바베트의 만찬에서 〈페다고지〉 독서 모임을 진행했는데 신뢰가 바탕이 된 질문으로 하는 대화가 진짜 가능한가, 서로서로 배우는 교육이 가능한가,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제가 울산에서 겪어본 일상학교(〈시사IN〉 읽기 모임)의 대화가 바로 그런 배움이 있는 대화였어요. 그래서 대전에서도 뉴스카페를 열어보자 하게 된 거죠.”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뉴스카페에서는 〈시사IN〉 커버스토리 하나를 꼽아 집중적으로 얘기를 나눈다. 7월 뉴스카페의 기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다룬 ‘미국 대선 겨냥한 북·러의 동반 질주(제876호)’였다. 〈시사IN〉 지면 기준 9쪽에 달하는 방대한 기사였다. 슈가와 철지기는 “그 기사를 읽고 나니 (북한의 도발이 전략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알게 돼) 전쟁은 나지 않겠구나 안도가 되었다(웃음)”라고 말했다.
8월 뉴스카페가 선정한 커버스토리는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문제를 심층 취재한 ‘강제노동 인정 않는 행간의 의도가 읽힌다(제883호)’였다. 이 기사를 쓴 정치팀 전혜원 기자와 더불어 사진팀 박미소 기자, 편집소통팀 김연희 기자가 9월6일 세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로 바베트의 만찬을 방문했다. 이날 모임에는 호스트 슈가와 책방지기 철지기를 비롯해 개구리(닉네임), 박유미, 서하늘, 이찬영, 정윤아씨 그리고 반려견 허리와 몽이가 참석했다. 8월 발행된 제881~884호에 대한 얘기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슈가: 우선은 제883호 커버스토리였던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부터 얘기를 나눠보자.
이찬영: 일본 시민들의 인터뷰가 많이 실렸는데 그 부분이 무척 좋았다. 저는 이 사안이 단순히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와 탈근대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 근대화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는 일본 시민들이 있고, 그들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기사가 쓰여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가장 훌륭한 문화유산은 평화헌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국가를 지키는 방법으로서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고 정의와 질서를 기초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바라고 추구한다’라고 쓰여 있다.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은 그쪽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하늘: MBC 〈뉴스데스크〉에서 이 이슈를 처음 접했다. 방송기자가 직접 박물관(사도광산 조선 노동자 기록이 전시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갔는데 2층에 있나 그랬고, 굉장히 조그맣게 보였다. 조선 노동자의 역사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며칠 전에 〈PD수첩〉도 봤는데 사도광산 전시를 보고 온 일본인들에게 ‘여기에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냐’고 물어보니 못 본 것 같다고 답하더라. 전시가 부족한 것도 맞지만 방송에선 전시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접하기 어려웠다. 〈시사IN〉 기사에서 주요 패널 내용을 번역해줘 다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철지기: 지금까지 흘러온 행태를 보면 (한·일 역사 문제가)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기가 어렵다. 이 피로감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국제적 관심을 받기 어려워서 사도광산이 (2015년도 군함도 등재보다) 더 대응하기 어려운 사례였다는 주장이 기사에서 하나의 시각으로 등장하는데, 그 부분은 동의하기 힘들었다.
정윤아: 사도광산 이야기를 〈시사IN〉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왜 나에게 그런 이슈가 전해지지 않았나 싶었다. 저는 매일 아침 경제지를 읽는데 그 매체는 이 이슈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던 것 같다. 역사 문제가 피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기사 마지막에 나오는 “역사란 그리 깨끗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를 기억하고 제대로 그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조선인 강제노동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이다”라는 문구를 읽고 달리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하나 다른 시각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 전혜원 기자의 실업급여 기사(제882호 커버스토리 ‘실업급여도 배달처럼 빠르게 받을 수 있나요?’)다. 경제지에서는 실업급여를 ‘너무 많이 받아가서 문제다’ 이런 부분에 초점을 두었다면 〈시사IN〉은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초점을 맞췄더라. 하나의 사안을 완전히 달리 다루는 걸 보면서 다양하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혜원: 그 기사를 잘 읽어주셨다니 사실 눈물이 날 것 같다. 거기 나오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원래 나와 있던 수치가 아니라 의원실과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을 통해 기초자료를 모아서 직접 통계를 낸 것이다. 그 과정이 정말 힘들었는데 기사가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해마다 (기초자료를) 요청해서 공개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에서도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수급률이 이렇게 낮은지 몰랐다며 놀랐다고 하더라.
박유미: 저는 공무원이라서 제881호 커버스토리(‘대법원이 인정했다, 우리는 남이 아니라고’)를 동성 커플 두 분보다도 피부양자 등록 취소 연락을 한 건강보험공단 직원 입장에서 읽게 되었다. 그 직원은 말단에 있는 사람이고 취소처분을 하는 데에 재량이 없을 텐데, 기사에 나쁜 역할로만 등장하는 것 같다. 비단 이 기사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공무원을 다루는 방식이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슈가: 얼마 전 〈시사IN〉 독자와의 대화에 ‘평소라면 읽지 않고 튕겨 나갔을 것 같은 기사도 주간지에 실려 있으면 읽게 된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기독교도인이지만 〈시사IN〉을 꾸준히 읽다 보니 생활동반자법이라든가 마음을 닫을 수 있는 부분도 오픈해서 볼 수 있게 되더라. 제 관점으로는 이 기사가 좀 찡했다. (소성욱·김용민 부부가) 얼굴이 공개되고, 생활공간도 드러나고. 박미소 기자님이 찍은 사진이던데, 두 분 표정이 너무 밝더라.
박미소: 우선 두 분이 되게 친절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었다. 저희는 사진 찍을 때 시간을 상당히 주는 편이다. 사진기자들 대부분은 초반에만 찍고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시사IN〉 사진기자는 펜 기자가 취재할 때 옆에서 같이 그 내용을 듣는다. 대화를 많이 한 뒤에 사진을 찍는 것과 처음 대면했을 때 바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자연스러움이 정말로 다르다.
철지기: 날카로운 지적도 해야 하지 않을까(웃음).
개구리: 사실 준비는 해왔는데(웃음). 제가 요즘에 유시민 작가의 신간(〈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읽는데 언론 얘기가 나온다. 정치가 기득권 집단으로 완전히 넘어가고 모든 저널리즘 규범을 파괴하는 상황에서 혼자 중립과 균형을 지키는 게 옳은 언론이냐는 내용이 있다. 저는 〈시사IN〉의 기사들이 객관적이어서 좋았는데, 지금 상황에선 진보 언론이 좀 더 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경제 기사가 너무 어렵다. 경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잘 읽으시겠지만 용어부터 생소해서, 하나하나 다 찾아보며 읽고 있다.
철지기: 〈시사IN〉 기사의 온도가 낮은 점은 좋은데 가끔은 한 방씩 터트려줘야 한다. 시대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을 정확히 때려준다고 해야 하나. 설명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심리적인 터치가 언론에 요구될 때도 있다.
※네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는 10월11일 경북 경주 ‘너른벽(인스타 계정 @neoreunbyeok_bookshop)’에서 열립니다. 11월에는 강원 속초 ‘완벽한 날들(@perfectdays_sokcho 0507-1405-2319)’, 12월에는 경기 안성 ‘다즐링 북스(@darjeeling_books 0502-1932-8732)’에서 모임을 열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독자께서는 개별 서점에 문의 바랍니다. 〈시사IN〉 독자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은 동네서점의 신청도 환영합니다(문의: ilhostyle@sisain.co.kr).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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