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으면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아픈 현실 [노동의 표정]

문종필 평론가 2024. 10. 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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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텍스트 속 노동의 표정
5편 김민지 시인의 에세이 집
두권의 에세이에 담긴 노동 흔적
우리 미래 쥐고 흔드는 ‘돈’의 힘
더 나은 삶 추구하는 평범한 노동

"원고료가 두둑하면 글이 좋아질 수밖에 없지…." 옛날에 어떤 선배가 웃으면서 했던 말이다. 누군가는 '돈'의 부정적인 면을 꼬집지만, 돈이 가진 순기능을 외면할 순 없다. 돈이 없으면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는 건 정말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하기 위해' 일하고 돈을 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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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 다녀왔다. 20년 전에 송곳니에 씌운 아말감이 충치로 인해 깨진 탓이다. 아말감과 오랜 시간 함께하는 동안 있는지도 없는지도 인식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텅 비고 나니 왠지 모르게 허전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치료를 위해 씌운 아말감이 뭐라고…. 누군가를 갑자기 떠나보낸다면 너무나 가슴 아플 테니, 사람이든 대상이든 곁에 있을 때 조금은 더 애정을 쏟아야 할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치과에서 의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잇몸 상태가 또래보다 많이 늙었다는 말에 주눅이 들기도 해서, 내 몸은 왜 이리도 고장이 많은지 허무해하며 우울을 삼켰다.

1시간 30분이 흘렀다.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계산대 앞에 섰다. 안내하는 선생님께서 가격이 25만원이라고 해서 당황했지만, '할부로 할까 일시금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할부로 하면 빚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시금으로 계산하고 신포동(인천) 빽다방으로 향했다. 카페로 걸어가는 동안 9월 세금을 하루 만에 다 썼다는 생각과 함께, 돈 버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프지 않은 거라고 중얼거렸다.

무엇보다도 오늘 나에게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돈'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만약에 내가 '돈'이 없었다면 치료비용을 지불하지 못했을 거라는 몽상도 했다. 일반 서민에게 25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니까.

이런 맥락에서 김민지 시인의 두권의 에세이집 「시끄러운 건 인간들뿐(2024년·㈜알에이치코리아)」과 「마음 단어 수집(2023년·사람in)」에 담긴 '노동'의 흔적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두 텍스트 모두 전면적으로 '노동'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노동'의 흔적을 일상의 차원에 체득하고 있어서 다뤄도 무방할 것 같다. 전자의 텍스트는 김치, 라면, 문턱, 편지 등 다양한 주제를 두고 익살스러운 배우(?)와 만물박사인 화자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재미있는 책이다.

[사진=뉴시스]

여러 주제 중 '돈'에 얽힌 이야기에 집중해보면 '보험과 적금의 우선순위'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이 주제에서 시인은 "그나마 돈이 생기면 어느 정도는 미래에 보내는 게 좋다"는 이야기와 함께 "돈이 없으면 선택할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오늘 치과에서 25만원을 지불한 나도 '선택'을 망설였다. 시인의 말처럼 돈이 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좇으며 간절하게 '돈'에 매달리는지 모른다. 더 많은 선택과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이 선택이라는 것이 특정한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의해 강요된 면이 없지 않지만, 이 사회에 속한 구성원이라면 요구된 요소들을 일정 부분 받아들여야 한다. 시인은 배우들을 통해 보험과 적금의 관계도 말한다. "안 받으면 다행이고, 받으면 불행 중 다행인 돈"이 보험이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해야 하는 돈"이 적금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돈'이 있어야 보험을 들고, '돈'이 있어야 적금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일 테다. 누군가는 적금과 보험을 들며 '미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어떤 방식이든 '돈'과 관련된 '미래'는 우리를 쥐고 흔든다.

전자의 텍스트에서는 직접 '노동'하는 시인의 모습도 확인된다. "고된 노동을 할 때 노래는 큰 힘이 된다(「꿀」)"며 음악 듣기로 지친 몸을 달래기도 하고, "매일 길면 하루 여덟시간 이상을 머물러야 하는 직장(「동화」)"에서 잘 지낼 수 있는 방법도 이야기한다. 회사원의 경우, 정해진 공간에 여러 명의 직장 동료와 어울려야 하니 관계가 쉽지 않다. 어딘들 쉽기야 하겠냐마는 작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배려와 규칙이 필요하다.

간혹 특정 직장 동료와 원수가 되거나, 미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면 그 공간은 숨막히는 장소가 되기도 하겠다. 그래서 시인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마음을 나누는 일"이 회사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무적인 공간에서도 서로 기척이나 잔정을 주고받아야 활기를 잃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장점을 매개로 동화되고자 노력"해야 하고 "인사만큼 자주, 사과를 주고받을 준비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팀으로서 서로를 응원해 줘야 한다는 말일 테다.

시인이 이렇게 고된 노동을 하는 이유는 살아가기 위해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살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일하지 않을 때보다 높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선택'을 위해서라도 하루하루 성실하게 우리는 일한다.

그리고 김민지 시인의 삶 자체가 직장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많은 사람의 처지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노동의 모습이야말로 보편적인 노동의 한 형태일 것 같다.

[책=알에이치코리아]

시인은 돈과 관련해 "어떤 사람은 취미를 통해 돈을 번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아주 작은 것 하나 돈과 무관하게 누리지 못하는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인지 되짚어 봐야 한다"고 반문한다.

새겨들을 말이다. '돈'은 잠자는 고래도 춤추게 한다. 예전에 원고료가 두둑하면 글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어느 선배가 웃으며 말했던 기억이 있다. '돈'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필요는 없지만, 돈이 가진 순기능을 외면할 순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에세이집에 담긴 '손'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손을 거치다. 손을 쓰다. 손에서 자란다. 손을 내밀다. 손에 익다'와 같은 관용구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손' 구석구석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방식이든지 '노동'하는 존재들에게 귀 기울이며 각기 다른 노동의 흔적과 소통할 것 같다는 믿음이 간다. 인간의 '손'은 얼굴처럼 무수히 많은 시간을 버틴 또 다른 주름이자 표정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잘 늙을 필요가 있다. 당신의 손도 그렇다.

문종필 평론가 | 더스쿠프
ansanssun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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