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결과 나왔다"…'김희선 뷰티기기'로 대박 터트린 비결 [그래서 투자했다]
조재호 신한벤처투자 상무
"다들 힘든데 나홀로 성장"
K-뷰티테크 에이피알, 글로벌 성공 비결
한경 긱스(Geeks)의 [그래서 투자했다]는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심사역이 발굴한 스타트업과 투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조재호 신한벤처투자 상무가 국내 화장품 기업 '톱3'로 부상한 K-뷰티테크 유니콘 에이피알(APR)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비결을 전합니다.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보편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 높은 투자 수익, 창업자와의 좋은 관계, 투명성 같은 것들이다. 반면 투자자들마다 경험과 관점,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투자하는 방법과 기준의 우선순위가 차이 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필자의 경우는 경험과 지식의 우위를 통해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동시에 2~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를 찾고, 그와 같은 분야가 서로 중첩되는 시장을 발굴하는 것을 투자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생각한다. 중첩된다는 의미를 예를 들면 (1) K-POP, (2) 인공지능 두 개의 분야의 성장이 기대되는 상황이라면, 인공지능을 활용한 K-POP 서비스를 특정하여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상이 되는 업체나 제품/서비스가 너무 많거나 시장이 파편화되고 있는 과정이라면 해당 분야는 투자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타이밍일 가능성이 있어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 모두가 보편적으로 고성장을 기대하고 있는 분야는 투자 기업가치가 향후 성장성을 지나치게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내가 보고 있는 관점의 우위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쉽지 않은 숙제가 있다.
필자는 삼성벤처투자에서 오랜 기간 '디지털미디어' 사업부 투자를 담당하며 다수의 글로벌 소프트웨어/서비스, 미디어/콘텐츠, 애드테크(Ad-Tech) 벤처에 대한 투자를 검토, 집행했다. 이를 통해 온라인에서 미디어/비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혁신되는 변곡점을 인지하였으며 마케팅에서의 영상 미디어 활용이 크게 확대되는 시점이 단기간 내 도래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모바일 커머스 트래픽의 증가에 맞춰 , (1) 영상 미디어 (2) 애드테크 (3) 라이프스타일 (4) 온라인 커머스 사업이 중첩되는 시장을 적극적으로 찾았다. 그렇게 2016년 에이피알(APR)의 공동창업자(김병훈 대표·이주광 전 대표)와 신재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만나며 첫 투자자로서의 인연을 맺게 됐다.
초기 D2C 사업 모델을 선도
2014년 설립한 에이피알의 초창기 사업은 기존 뷰티 업체들과 다른 점이 많이 있었지만, 창업자들도 아직 신규 사업모델을 정의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장에서도 마케팅 잘하고 화장비누로 소위 '대박'을 낸 신생 화장품 회사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피알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단순한 커머스 회사나 화장품 회사라고 보기에는 명확한 차이와 경쟁력이 있었다.
우선 제품을 개발/기획하는 순서가 기존 회사들과 정반대로 달랐다.
전통 회사들의 경우, 연구/개발→생산 환경 구축→제품 양산 진행→유통 채널 확보→마케팅 기획의 순서로 사업을 진행하였다면, 에이피알은 가장 먼저 자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유통채널(자사 몰) 구축→ 확보된 채널 및 고객에게 최적화된 마케팅 컨셉을 기획→ 해당 컨셉에 가장 잘 맞는 제품을 소싱/생산하는 정반대의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었다.
제품을 먼저 만들고 누구에게 어떻게 팔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먼저 정의하고 확보한 후 적합한 마케팅 컨셉을 정할 수 있어야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로 고객을 획득하는 접근 방식이 혁신적이었다. SNS 채널을 이용해 고도로 타겟팅된 니즈로 기획된 제품을 기반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영상과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제품의 매력을 단기간에 각인시켜 '클릭'과 '자사 몰 구매'로 즉시 연결하는 방식은 고객 확보, 브랜드 홍보, 유통, 가격 비교 관련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며 경쟁력을 부가하는 차세대 커머스 사업모델로 보여졌다.
당시 필자는 '패스트 뷰티(Fast Beauty)'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사업 모델을 차별화하자고 제안했지만, 향후 유사 사업이 퍼지며 '미디어 커머스' 'D2C(소비자 직접판매)'와 같은 용어로 불리게 됐다. 에이피알은 시장 환경 변화에 앞서 사업모델을 진화시키기 시작했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위기에 대응하는 혜안
곧 에이피알과 유사한 사업 모델이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경쟁 업체가 나타났다. 그중 한 업체는 다수의 기획자를 양성하며 보다 비용 효율적으로 브랜드를 확장해 나아가는 동시에 단기 높은 수익을 달성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필자가 처음 찾고자 했던 사업모델에 더 가까워 보였고 타 업체들은 하나 이상 만들기도 어려워했던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성공 사례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반면, 그 당시 에이피알은 소셜 채널에서 퍼진 사실과 다른 소문으로 인해 브랜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새로운 브랜드를 통한 영역 확장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고, 유재석 등의 톱스타 모델을 기용한 탓에 광고비 급증으로 수익성은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사 업체들은 앞으로 더 많이 나타나며 광고 단가는 높아질 것이고, 마케팅 방식에 대한 고객의 피로도는 커질 수 있다.
더 큰 성장과 글로벌 진출을 위해, 비용이 잠시 커지더라도 브랜드를 키워야 하는 시점이다
큰 우려가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창업자들이 제시했던 위와 같은 시장에 대한 뚜렷한 관점과 그에 따른 비전 제시가 매우 인상 깊게 남았다. 김병훈 대표는 시장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미리 대응하는 뛰어난 CEO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로도 투자 검토기업의 CEO 모델의 중요한 레퍼런스로 삼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홀로 성장가속
시장 환경은 회사가 예상했던 대로 수익성과 성장성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앞서 나가는 듯했던 경쟁사들은 글로벌 진출에 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피알은 탄탄히 다져놓은 브랜드를 기반으로 홀로 성장에 속도를 더하기 시작했다. 메디큐브(Medicube), 널디(Nerdy) 등의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 진입에 성공하며 해외 매출 비중 40%를 돌파했고, 일본, 홍콩, 북미를 포함한 주요 시장에서 자사 온라인몰 유통구조를 안착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 (올해 3분기 기준 해외 매출 비중은 46%로, 해외 전체 연간 성장률은 53%, 북미 지역은 146%에 이른다.)
이때 에이피알은 화장품 브랜드 회사에서 뷰티테크로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기존 가정용 미용기기 시장은 유수의 대기업 및 다수 중소기업이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지만, 디바이스 가격이 높았지만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고 기능 유지를 위해 고가의 소모품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에이피알은 뷰티 브랜드 메디큐브에 '에이지알(AGE-R)'이라는 뷰티 디바이스 라인을 추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2022년 출시한 에이지알은 배우 김희선 씨가 광고하면서 ‘김희선 디바이스’라고 불리는 기기다.
회사는 (1)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기존 타사 기기 대비 제품력을 크게 높인 디바이스를 대규모 R&D 조직 운영을 통해 자체 개발하고, (2) 자사몰을 통한 낮은 유통비용의 강점과 화장품을 통한 수익 연결 가능성을 활용 디바이스 가격을 크게 낮춰 보급을 확대하며, (3) AGE-R 디바이스를 소유하게 된 다수의 고객을 메디큐브 구독자로 자연 유입시켜 지속적인 화장품 매출로 연결하는 선순환을 이뤘다.
그 결과 지난해 3977억원 매출에 392억원의 영업이익을 실현했으며, 올해는 6000억원 상당의 매출과 1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핵심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결국 성장 시장에 진입하고, 변화에 대응하며,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빠르게 실행하는 것 모두 대표이사와 핵심 경영자의 역할이고, 이 모두를 에이피알은 너무나도 훌륭하게 해왔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경영자를 정말 찾고 싶었다. 마케팅을 잘했지만, 제품력과 품질 확보는 더 잘해야 함을 알고 있었으며, 국내에서 성공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도 더 큰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성장을 함께 한 시간이 앞으로의 투자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2017년부터 에이피알에 네 차례 투자를 집행하며 지지와 응원을 보낼 기회를 갖고, 기관 투자자를 대표하는 사외이사로 활동할 수 있어서 창업자들과 CFO에 감사한 마음이다.
조재호 신한벤처투자 벤처투자본부 상무 ㅣ 한양대학교에서 정밀기계공학을 전공하며 머신비전 관련 졸업논문을 기반으로 기아자동차 자율주행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6년여간 제어/최적화 코딩 및 온라인 물류 솔루션 사내벤처 경험을 쌓은 후 KAIST MBA를 거쳐 삼성벤처투자에서 VC 경력을 시작하였다. 신한벤처투자(옛 네오플럭스)에서 10여년간 소프트웨어/서비스, 디지털미디어/콘텐츠, 자동화/로봇, 라이프스타일 분야 투자를 담당해오고 있으며, 성장 시장 창출과 사업모델 혁신을 주도하는 창업자들에 대한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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