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상민의 마지막 승부 “KCC의 우승, 내 농구 인생 마지막 목표”

손대범 2025. 7. 5.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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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손대범 편집인] “어떤 내용인가요?”

이상민 감독이 착석에 앞서 인터뷰 주제를 물었다. 보통 신임 감독이나 저연차 선수들에게는 내용을 공유해 줄 때도 있고, 혹은 소품이나 연출이 필요할 때도 상의하곤 한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30년 넘도록 미디어를 대하며 살아온 이상민 감독에게는 굳이 그런 것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았다. KCC 이지스. 전신 현대 시절을 포함해 ‘농구 선수’로서 가장 많은 것을 이루고 누려왔던 곳. 스스로도 ‘고향’이라 표현하는 이곳에서 코치를 거쳐 감독이 된 직후 요청한 인터뷰이니 그 역시 어떤 질문이 나올지 얼추 짐작했을 터.

사진 촬영과 인터뷰 모두를 민망해하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러면서도 해줄 건 다 해주는 츤데레 성향도 여전했다. 일단 예의상 인터뷰의 취지는 전달해본다.
“감독 복귀 소감이나 앞으로의 계획, 그런 것들인데 편하게 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많이 받아보셨을 질문도 있긴 한데….”

“많이 했던 거면 빼야지(웃음).”

“그런데 또 안 들어가면 섭섭한 것들?” 나도 웃으며 답했다.

“아니, 나 안 섭섭한데(웃음). 그럼 시작해 볼까요?”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오피셜 발표가 났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내심 기다렸던, 그리고 소문도 많이 났던 부분이잖아요.
글쎄요. KCC에 코치로 돌아왔을 때부터 그랬어요. KCC가 불러준다면 한 번쯤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내가 여기서 시작했으니까. 여기서 마무리 짓자는 마음이 있었죠. 만약 다른 구단에서 오퍼가 왔다면 아마 안 했을 거 같아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어찌 됐든 삼성에서 나는 실패했었던 감독이었고 부담감이 있었어요. 선수 때 운동하면서도 우승하는 게 쉽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감독이 되고나서도 그랬어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죠. 선수, 코치, 감독을 포함해서 9번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갔는데 우승은 4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사실 (코치로 올 때도) 단장님께 3번은 거절했어요. 너무 쉬고 싶었고, 너무 힘들었거든요. 나도 쉬는 기간이 필요했는데, 사실은 감독을 내려놓은 뒤 홀로 보내는 시간도 힘들었어요. 그러다 결국에는 KCC로 돌아왔는데, 운 좋게 코치로 우승까지 했으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지난 시즌 내내 농구계에서는 감독님이 차기 감독이 될 거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그런 말이 너무 많이 돌았죠. 부담도 됐고요. 전창진 감독님과는 워낙 친했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막 소문이 여러 가지 나니까 내심 죄송하고 불편했죠. 가급적 그런 이야기가 안 나왔으면 했어요. 시즌 끝나고 나와도 되는 거였는데, 계속 그런 말이 나오니 불편한 상황이 됐죠. 그런데 또 전창진 감독님은 “야, 나중에 네가 꼭 해야지.”라고 말씀해주면서 내가 감독이 됐을 때를 대비해 필요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선수로서의 KCC와 감독, 코치로서의 KCC는 또 다르니까요.

지난 시즌의 부진은 역시 부상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까요?
부상도 부상이지만 외국선수부터 처음부터 꼬였죠. 그것도 따지고 보면 부상이네요. 어찌됐든 거기서부터 삐걱거린 것이 발단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된 거죠.

허훈 선수는 어떤가요?
요즘 계속 나와요. 지금은 운동하러 갔어요. 쉬라고 했는데 본인이 합류해서 오전에 산에도 같이 따라갔어요. 자유계약선수(이하 FA) 시장이 열린 뒤 한 달 동안, 저도 단장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분명 모든 포지션 보강이 필요했지만 확실한 건 가드가 필요했죠.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기사대로 된 거죠. 위에서 OK 떨어지니 일사천리, 그게 현대 스타일입니다. 이규섭 코치가 놀라더라고요. ‘뭐죠 이거?’라고요. 그래서 이게 우리 스타일이라고 그랬죠(웃음).

현역 시절에 현대와 KCC 모두 감독님 포함해 전국구 스타들이 많았죠. 추승균, 조성원 등. 그런데 이렇게 이름값 있는 스타들이 많다는 건 팀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나는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을 해요. 인기 있는 선수들이 여러 팀에 분산되어 있어도 좋겠지만, 한 팀에 다같이 모여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농구가 예전만큼은 인기가 없고, 지금 야구는 어마어마하게 앞서 있잖아요. 인기를 얻으려면 계기나 이슈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도 하나의 이슈라고 생각해요. 형제가 같이 뛴다는 건 이슈잖아요. 또 (허)훈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여기(마북리 KCC 훈련체육관)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와본 곳이니까요. 어릴 때 아빠 따라 여기 와서 공을 갖고 놀던 그런 장소이기도 하니 이런 곳에서 형과 함께 우승을 향해 달리는 것도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감독님께서도 그러면 농구선수가 아닌 ‘어린이’ 훈을 봤을 텐데 어땠나요.
그때는 웅이도, 훈이도 농구를 할 거라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운동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훈이는 아버지 DNA가 있다는 평이었죠. 근육도 딱 아빠고(웃음). 그 아이들이 아빠 따라와서 농구공을 갖고 놀던 곳에서 농구를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죠. 그것도 프로에서 같은 팀에서 몸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KBL에서도 드문 일이죠? (네번째입니다.) 네 번째라고요? 처음이 아니구나. 그런데 이 정도 스타들이 함께 있는 건 처음이니까요(웃음). ※ 형제가 한 팀에서 뛴 건 박성배·박성훈(전 삼성), 박래훈·박래윤(전 LG), 이승준·이동준(전 SK) 이후 처음이다.

KCC 모토는 달리는 농구 ‘팬들 신나게 하고파’
‘선수’ 이상민이 몸담은 현대와 KCC는 속공의 진수를 보여왔다. 빅맨의 베이스라인 패스에 이은 이상민, 추승균 등의 마무리도 일품이었고, 가드이지만 리바운드가 뛰어났던 이상민이 직접 속공을 전개하며 뿌려주는 어시스트도 체육관 데시벨을 끌어올렸다. 세트 상황에서 이뤄지는 2대2 플레이는 초창기 KBL의 최고 히트상품이기도 했다. 이상민은 현역 시절의 색깔을 그대로 이식하고자 한다. 물론 선수 시절처럼 포인트가드가 모든 걸 조립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상민 감독도 시대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스타일은 달라도 ‘빠르고 신명나는 농구’에 대한 가치관만큼은 허훈과 결이 비슷했다. 그에게 레이싱카의 핸들을 맡긴 이유다. 기회가 되면 주저없이 던지는, 빠르고 득점이 많이 나는 농구로 성적과 팬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자 하는 것이다. 이상민 감독은 레이싱카의 ‘자율 주행’을 위한 밑그림부터 차근차근 그려가고 있었다.

선수 시절에도 KCC는 스타 군단이었지만, 지금 KCC 선수들은 스타이면서도 개성이 정말 강한 편에 속해요. 선수들을 대하는 것은 어떤가요?
요즘 친구들은 스스럼이 없죠. 그래서 대화하기도 편하고요. 예전에는 감독과 선수 사이에 벽이 있었다면 이제는 농구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거 같아요. 자기 농구에 대해 의견을 내놓고, 나도 또 내 농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요. 너무 스스럼이 없어서 걱정도 있지만, 요즘 선수들은 표현을 잘 하니까 나쁘진 않은 거 같아요. 대화를 통해 불만이 뭔지 알 수 있고, 제가 그걸 해소해줄 수 있고요. 나도 내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회사에서 오신 분들도 놀라더라고요. 선수들도 그러냐고. 그런데 요즘 세대들이 그런데 운동선수라고 다를까요.

앞서 부상 이야기를 하셨는데, 지금 선수들 몸 상태는 좀 어떤가요?
(최)준용이는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일주일째 새벽 운동을 나오고 있어요. 아직 산을 함께 갈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하며 몸을 올리고 있어요. 옆에서 보는 저조차 ‘쟤가 왜 그러지?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해요. 갑자기 새벽 운동도 하고,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시기의 체중을 찾겠다고 해서 노력 중이죠. 훈이는 한 달 정도 쉬어도 된다고 했는데, 그냥 처음부터 하겠다며 나오고 있어요.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하고 오후에는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송)교창이는 지금 미국 댈러스에 있어요. 생각보다 몸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우려했던 거보다는 좋았어요. 사실 제가 현역 시절에 지겨울 정도로 재활을 했거든요. 정말 지겨워요. 그래서 가끔은 바꿔보라고도 해요. 가끔은 수영도 괜찮다고요. 그런데 본인은 근육 빠진다고 하던 대로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는데 지금 노력의 결과가 시즌에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찬영이도 정말 잘 뛰고 있다고 들었어요.

외국선수가 마지막 퍼즐일 거 같은데요.
그렇죠. 되게 고민이에요. 저는 새로운 얼굴을 좋아했지만, 올 시즌은 경력자도 생각하고 있어요. 선수단이 안정적으로 구성된 만큼 경험있는 선수들을 데려오려고 하고 있어요. 아시아쿼터 선수들도 보고 있습니다. 원래는 지난 1~2달은 가드로 리스트를 정리했는데 훈이가 온 덕분에 폭넓게 보고 있습니다. 만약 교창이와 준용이가 건강히 시즌을 치른다면 너무 완벽할 텐데, 그게 안 될 수 있기 때문에 2~4번까지 계속 보고 있습니다.

이규섭 코치와의 호흡은 어떤가요. 오랜만에 같이 일하시는데요.
달라진 건 없어요. 늘 준비하고 공부하는 코치이니까. 내가 하는 농구를 가장 오래 지켜봤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잘 아시잖아요.

지난 3시즌을 돌아봤습니다. KCC가 3점슛 성공률은 좋았지만 슛 시도와 성공 자체는 적은 편이었는데요. 요즘은 또 3점슛 없이는 농구가 안 되는 시대잖아요. 감독님이 표방하는 농구에는 3점슛도 포함되어 있을까요?
나는 빠른 농구를 할 거예요. 현대 농구 스타일로요. 내가 뛰던 시절과 지금의 가드는 역할이나 스타일이 달라요. 누가 낫다고는 말은 못하겠어요. 제이슨 키드와 타이리스 할리버튼을 비교하는 거잖아요. 스타일 자체가 다르니 그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스타일대로 가야죠. 저도 그런 스타일의 농구를 좋아해서 이견은 없을 거 같아요. 기회가 되면 던지라고 할 거예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세대 시절에도 그런 주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최희암 감독님 철학이 그거예요. 슈터들에게 언제든 슛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요. 그 시절 다른 팀들은 확률 농구성향이 더 강했잖아요. 그런데 최희암 감독님은 ‘야, 무슨 소리야. 슈터들을 데려다 놓고 못하게 하면 안 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는 ‘분업 농구’라고 해서 포지션마다 영입해서 자율적인 역할을 주었어요. 대신 가드에 대한 제한은 확실히 두었습니다. ‘너까지 공격할 필요는 없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뭐, 덕분에 저는 패스에 대한 눈을 뜰 수 있었고요. 어떻게 보면 가드 역할에 제한을 두신 걸 제외하면 그때 최희암 감독님의 농구가 지금의 농구 철학과 맞지 않나 생각이 살짝 들긴 해요.

KCC표 빠른 농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내가 더 열심히 준비해야죠. 감독으로서는 내가 하고 싶은 농구를 잘 구상하고 준비해서 선수들에게 잘 전달하고 이해하게끔 해야겠죠. 허훈이라는 좋은 가드가 왔으니 기존 선수들과 잘 맞는다면 그들 사이에서 또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이고요. 그 선수들을 내세워 빠른 농구를 하고 싶어요. 삼성 때부터 제 철학은 빠른 농구였어요. 그래서 아이재아 힉스 같이 잘 달리는 선수들을 봤었죠.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저는 항상 한 박자 빠른 공격을 선호했어요. 무리하게 슛을 던지느냐 같은 간섭은 안 하려고 해요.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자율적으로 농구할 수 있게끔 할 것입니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농구는 공격적이고 빠른 농구라 생각해요. 2024-2025시즌에 평균 득점이 다들 많이 떨어졌잖아요. 올 시즌에는 조금 더 끌어올리면 팬들도 즐거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프시즌 훈련 계획은 어떻게 세웠나요.
나는 조금 안 서두르려고 해요. 서두르다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코치나 트레이너와 상의도 많이 해서 천천히 가려고 해요. 슬로우 스타트라고 할까요. KCC가 정규리그 때 슬로우 스타터라고 불리긴 하는데 그런 개념의 슬로우 스타트는 아니고요(웃음).

일본 전지훈련 계획도 잡혔다고요.
네, 태백 전지훈련은 선수들이 그렇게 싫다고 해서 빼버렸어요. 나도 선수 때 싫어했으니까(웃음). 그래서 빼버리고…. 다만 여기서만 하면 답답할 거 같아서 워크숍이라든지 간단하게 짧게 1박 2일이나 2박 3일이라도 생각하고 있어요. 6월 28일에 선수들이 모두 합류해요. 그때 되면 선수들과 이야기하고, 구단과도 상의해서 계획을 짜려고 합니다. 9월 초에는 일본전지훈련이 잡혀있는데, 하필 그 시기에 그 지역에서 이벤트 대회가 있어요. 그 일정을 봐야 할 거 같아요. 이번 시즌은 일정이 당겨졌고, 외국선수들도 빨리 들어오니까 거기서 제대로 한번 훈련을 해보고 싶어요.

내 마지막 목표는 우승
현역 시절 이상민은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때때로 그 승부욕을 못 이겨 파울트러블에 걸리는 일이 있었을 정도로 지는 것과 밀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랬던 이상민이기에 ‘실패한 감독’임을 인정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에서 감독으로 보낸 시절,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오늘날 농구팬들에게 삼성은 8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탈락팀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이상민 감독은 그 상당 기간을 함께 했다. ‘괴로운 나날’이라 고백한 그는 그 실패를 인정하고 친정에서만큼은 우승을 거머쥐고 싶다고 했다. ‘11번’의 전설이 시작된 곳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 챔피언십을 차지한 KBL 최초의 인물이 되겠다는 포부였다.

인터뷰에서 실패한 감독이라는 표현을 쓰셨잖아요. 실패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괴로워요.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어찌 됐건 처음에는 잘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벽에 부딪혔죠. 나도 팀을 이끌면서 부족한 걸 많이 느꼈고요. 그런 거죠. 성공한 감독이라 말하긴 어려워요. 8년 동안 기회를 줬는데, 거의 다 최하위였으니까요. 그러면 이유 불문하고 실패한 거라 할 수 있죠.

이제 본격적으로 시즌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선수들에게는 어떤 기대를 하고 있고, 어떤 말을 해주었나요.
선수들에게 농담삼아 ‘야, 명장은 선수들이 만들어 주는 거야’라고 말했어요. 허훈에게도 말했어요. 밖에서야 내가 지휘하고 있지만 안에서는 훈이가 조율해야 해요. 얼마나 컨트롤 해줄지가 중요한데 잘 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 옛날 위계 질서가 엄격할 때도 형들한테 막 소리치고 했거든요. 할 수 있어요. 그동안 우리 팀 약점은 가드 포지션이었어요. 다른 스타급 선수들 틈에서 힘들어 했지만 훈이는 같은 레벨의 선수니까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선수들도 그런 능력을 알기에 훈이를 잡아달라고 한 거 같아요. 훈이도 (허)웅이나 (최)준용이도 같이 끌어줄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어느 정도 부딪치겠죠. 어떻게 그렇게 또 자연스럽게 되겠어요. 내가 봐도 초반에는 쉽지 않을 거고, 그래도 연습하고, 전지훈련을 갖고 시범경기를 치르면 갈수록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이들이 건강하다면 말이죠. 정말로 건강하게 잘 뛰어주고, 훈이가 코트 안에서 조율만 잘한다면 정말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멤버가 정말 좋아요. 그래서 외국선수도 정말 신중하게 보고 있어요. 저 선수 때도 그랬어요. 국내선수들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 외국선수가 한 번 다치면 바로 그냥 미끄러지더군요. 그래서 되게 신중하게 가고 있어요. 여러 스타일 보며 고민하고 있는 거예요.

여태껏 언급된 선수들은 주로 스타 선수들이었어요. 혹시 젊은 선수 중에도 기대하는 선수가 있나요.
FA 명단에서 몇 명을 검토했어요. 스타일이나 부상 이슈 등 여러 면을 검토했는데 최진광 선수가 눈에 들어왔어요. 신장(175.7cm)은 조금 작지만, 앞에서 타이트하게 붙어주는 플레이가 인상적이었어요. 잘해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팀 선수 중에 ‘저 선수 참 재밌네’라는 생각이 드는 선수가 있을까요. 플레이가 재밌고 볼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선수요.
그런 건 잘 생각 안 해봤는데…. ‘재밌다’라…. 이정현(소노) 좋지 않나요. 신인 때보다 2년 차가 좋고, 2년 차보다는 또 3년 차가 좋고. 확실히 느는 게 보이는 거 같아요. 성장세가 가파르죠. 유기상 선수도 그래요. 프로에 와서 자기 역할에만 집중하다 보니 잘 성장한 거 같아요. LG에서 자기한테 딱 맞는 옷을 입은 거 같습니다. LG 양준석 선수도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아직 힘을 더 키워야 하지만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사직체육관 천장에 있는 영구결번 배너 보실 때도 있나요?
그럼요. 보죠. 좋아요. 근데 체육관이 워낙 크다 보니 작게 보여요. 체육관이 너무 크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부산에 처음에 갔을 때는 배너가 안 걸려 있었어요. 저는 신경을 안 썼는데, 회장님이 오셔서 제 배너가 없는 걸 알고 ‘야 왜 배너가 안 보여?’라고 하셔서 바로 설치했더라고요. 11번 배너를 볼 때마다 뿌듯해요. 농구 인생에서 제가 울어본 적이 딱 한번 있어요. 팬들이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은퇴식을 열어줬거든요. 무대에 있는데 잠깐 뒤돌아서라고 하더라고요. 돌아서자마자 보이는 제 유니폼 배너들을 보니까 그때 딱 눈물이 나더라고요. 농구하면서 처음 울어본 거예요. 옛날 생각도 나고 책임감도 느껴져요. 아까도 말했지만 KCC가 아니었다면 안 돌아왔을 겁니다. 내 농구인생의 마지막 도전이고 마지막 목표였어요. KCC에서 감독으로 우승하는 거.

은퇴식도 그렇고 팬분들의 정성이 여전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단 유튜브 영상을 보니 감독님께 커피차도 보내왔던데요. 요즘도 모임이나 연락을 하나요?
연락도 하고 축하도 많이 받았어요. 아무래도 제가 KCC에서 감독을 하게 되어 그런지 유독 더 많이 받은 거 같아요. 상징적인 복귀라고 여겨주시는 거 같아요. 그러니 저도 ‘아, 내가 KCC의 감독이 됐구나. 친정에서 감독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고요.

요즘 젊은 선수들은 소셜 미디어로 소통도 많이 하잖아요. 만약 감독님 선수 시절에 소셜미디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아우, 안 하죠(웃음). 지금도 안 하는데…. 카카오톡도 사용 안 해요. 단장님께서도 왜 안 하냐고 불편하다고 하시는데 없어도 불편하지 않아서요(웃음). 사실 주변에서는 불편해하죠. 단톡방에서 전달하면 한 번에 끝날걸, 나 때문에 문자로 한 번 더 해야 하니까. 그런데 나도 예전에 감독 모임 총무 할 때도 아홉 명한테 일일이 다 문자로 보냈어요.

예전에 선수 시절에 경쟁자였던 분들이 감독이 됐고, 이제 또 새로운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어떤가요.
그런데 감독이 된 뒤로는 라이벌 의식이나 경쟁의식은 없는 거 같아요. 선수 때는 목표가 있었어요. 유재학이라는 포인트가드는 제 모티브가 되었고, 강동희라는 사람의 플레이를 닮고 싶었죠. 다른 수많은 선배들을 보며 닮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경쟁심을 갖고 노력했던 거예요.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누구를 꼭 이기고 싶고, 닮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감독들은 저마다의 성향이 있는 거니까요. 누차 말하지만 저는 리더십은 우승하면 자연스럽게 수식어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명장은 선수가 만들어주는 거예요. 물론 감독도 노력해야하는 부분이 확실히 있죠. 그렇지만 명장론에 대해서는 확고해요. 그건 선수들이 만들어주는 거예요.


마무리는 식상한 질문으로 할까 합니다. 2025-2026시즌 KCC를 기대하는 점프볼 팬들에게 인사와 각오 부탁합니다.
인터뷰할 때 어느 기자님이 그러더군요. ‘감독님 그거 아세요? 한 팀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 우승해본 사람은 없어요’라고요. 몰랐어요. 저는. 그리고 그게 제 진짜 목표이기도 하죠. 농구 인생의 마지막 목표. 팬들도 많이 원할 거고, 예전 현대와 KCC 시절의 저를 기억해주시는 팬들이라면, 제가 감독으로도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꼭 우승하고 싶고요. 응원 많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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