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호주가 외면했던 줄리안 어산지… '시간이 만들어준 순교자'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가 지난 26일(현지시간) 14년 만에 고국인 호주 땅을 밟았다. 그는 감격에 겨운 듯 아내와 포옹하며, 승리의 주먹을 쥐어 들어 올렸다.
현장에 모인 소수의 지지자들은 공군기지를 빠져나가는 어산지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물론 대규모 환영 인원도, 샴페인 축배도 없었다. 대대적인 영웅의 귀환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주 정부가 그의 석방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카메라 화면 밖에서 어산지를 따라 비행기에서 내린 건 현재 주미 호주 대사를 맡고 있는 케빈 러드 전 총리와 러드 총리 시절 영국 주재 호주 고등판무관을 지낸 스티븐 스미스였다.
아울러 어산지가 귀국한 지 몇 분 뒤, 앤서니 앨버니지 현 총리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너무 들뜨지 않은 환영 인사를 전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이 이야기가 끝나게 돼서 매우 기쁘다. 조금 전에 어산지와 통화해 귀국을 환영했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는 어산지가 처음 곤경에 처했던 지난 2010년 당시와는 꽤 다른 분위기다.
당시 어산지는 미군 헬기가 민간인에게 발포하는 장면 등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미 당국의 문서 수천 건을 편집 없이 그대로 공개하며 미국을 당혹스럽게 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정보원과 요원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러한 폭로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웨덴 당국은 어산지가 여성 2명을 성폭행했다며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대해 어산지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혐의라며 부인했다.
한편 고국인 호주에선 어산지를 향한 동정심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총리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어산지의 발언도 유명하다.
줄리아 길라드 당시 호주 총리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 미화하지 말자 … 만약 불법적인 행위가 없었다면 정보가 위키리크스에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행동의 총체적인 무책임성에 대한 상식을 시험받는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아울러 당시 길라드 내각은 그를 옹호하기는커녕 미 당국을 위해 “모든 지원”을 제공했으며, 이에 더해 자국 법을 어긴 부분은 없는지 수사를 진행했다.
이후 다소 어조를 누그러뜨리긴 했지만, 길라드 전 총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호주 당국의 이러한 태도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10년간 거의 변한 게 없다.
어산지는 자신을 미국으로 송환하려는 계략이라 주장한 스웨덴의 국제 체포 영장에 항의하다 실패 후,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도피해 거의 7년간 머물러야만 했다.
2019년엔 미국으로의 송환을 막고자 싸우는 동안 대사관 건물에서 강제로 쫓겨나 영국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렇게 사건이 커지고 어산지의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서 호주 정치권에서도 그의 석방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호주 최고위층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산지에 관한 발언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유일한 총리는 스콧 모리슨으로, 드라마 ‘베이워치: SOS 해상 구조대’로도 유명한 여배우 패멀라 앤더슨이 어산지를 대신해 전국을 돌며 구명 운동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모리슨 총리는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주변에 패멜라 앤더슨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할 특사로 뽑아주면 안 되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다”는 농담을 던졌다. 이에 대해 앤더슨 측은 “지저분”하고 “불필요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기회의 창’
그러던 2022년, 모리슨 총리가 물러나고 노동당의 앨버니지 현 총리가 집권하게 됐고, 어산지 측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변화를 바란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우선 스웨덴 검찰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증거 효력이 약하다며 성폭행 의혹 수사를 중단했다.
아울러 그가 얼마나 수감 생활 중 몸이 약해졌고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는지 다룰 뿐만 아니라 어산지를 진실을 추구하는 용감한 운동가로 부르며 칭송하는 복수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그리고 그가 에콰도르 대사관에서의 도피 시절 태어난 두 남자아이를 둔 아버지이며, 아이들의 엄마가 홀로 키우고 있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그렇게 어산지를 향한 호주 여론의 적대감 혹은 양면성은 서서히 동정심으로 바뀌었다. 이달 초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무려 71%의 호주인들이 미국과 영국을 압박해 어산지 사건을 종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앨버니지 현 총리는 그와 협력해 줄 인물로 여겨졌다. 총리는 오랫동안 어산지의 행동 중 많은 부분을 지지하지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해온 인물이다.
취임 후에도 앨버니지 총리는 자신의 이러한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도, “큰 목소리가 모든 외교 문제에서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정치학자 사이먼 잭맨은 어산지의 지지자들은 호주에 노동당 내각이 들어서고, 미국에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이 시점을 기회의 창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시드니대학에서 미국학을 가르치는 잭맨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하지만 미국에선 곧 대선이 다가오면서 (어산지의 석방을) 이뤄낼 기회의 창이 닫히기 시작했다”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에너지가 모인 것 같습니다 … 호주 측엔(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자극제가 된 거죠.”
실제로 지난해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 앨버니지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어산지의 문제를 직접 언급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지난 2월, 총리의 지지 아래 호주 의회는 압도적인 표결로 어산지의 호주 귀환을 미국과 영국에 요구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미 법무부와 역대 행정부는 이 사건을 오랫동안 “골칫거리”로 여겼다는 게 미 중앙정보국(CIA) 비서실장은 지낸 래리 파이퍼의 설명이다.
호주 정부의 압력, 오랜 기간 이어진 소송을 향한 영국 내 불만과 더불어 길어지는 시간, 또 다른 항소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미 당국은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파이퍼 전 비서실장은 “법무부 내에서도 ‘자 봐라. 어산지가 자초한 일인 건 맞지만 그래도 꽤 받을 만큼 벌을 받지 않았냐’는 사람이 나타났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이 형량 협상의 성사는 호주의 공이라는 게 파이퍼 전 비서실장의 주장이다.
“조용히 이뤄지는 외교의 효력을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미 당국과의 형량 합의를 이뤘다는 보도 이후 몇 시간 뒤, 아내 스텔라는 사람들이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언급했다.
“대중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제 모두가 남편이 피해자임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주에서 여전히 그는 매우 의견이 엇갈리는 인물이다.
호주 외교부 장관 출신이자 2014년~2018년 영국 주재 호주 고등판무관을 지낸 알렉산더 다우너는 오랫동안 호주 당국이 어산지 사건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 온 인물이다.
다우너 전 장관은 BBC ‘라디오 4’와의 인터뷰에서 “어산지가 한 짓은 범죄다. 도덕적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호주인이라고 해서 좋은 사람이라는 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녹색당 소속 피터 위시-윌슨 연방상원의원은 어산지가 “전쟁 범죄에 대한 끔찍하고 불편한 진실을 말했기에” 박해받은 것이라 주장했다.
위시-윌슨 의원은 “어산지가 겪은 박해는 무고한 이가 석방되기 위해선 유죄를 인정해야만 하는 망가진 사법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한편 회색 지대에 서 있는 이들도 있다.
바너비 조이스 의원은 어산지에 대한 처우가 끔찍하며, 이 사건의 치외법권적인 측면이 우려된다는 주장과 함께 오랫동안 어산지의 석방을 요구해 온 호주 하원의원 중 하나다.
그러나 조이스 의원은 어산지가 한 행동이 옳다고 보진 않는다는 점을 언제나 강조했다.
조이스 의원은 B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 출신 군인이다 … 그의 인격을 보증하겠다는 게 아니”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선 어산지의 석방을 지지하면서도 영웅 및 저널리스트로 추앙되는 것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아울러 선거 개입 주장에 대해 우려하는 이들도, 미국 관리들이 위키리크스를 “비국가적 적대적 정보기관”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앨버니지 총리 또한 지난 26일 의회에서 “어산지의 행동에 대한 여러분들의 견해는 다양하겠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어산지 사건은 너무 오랫동안 끌었다”며 미묘하게 선을 그었다.
이제 다시 호주 땅을 밟은 어산지는 다음 주로 다가온 53번째 생일 등 마침내 아내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14년 만에 가족들과 처음으로 축하하는 생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