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20년 답사'로 완성한 한국문학 지리지…<여행지에서 만난 한국문학>
[EBS 뉴스]
세상을 연결하는 뉴스, 뉴스브릿지입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죠. 좋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작품의 배경이 된 공간과 역사를 이해한다면 그 이야기가 더 풍성하게 다가올 겁니다.
지난 20년 동안 작가들의 근거지 23곳을 직접 찾아가 새롭게 작품을 읽고 해석한, 문학 여행기가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문학'의 저자이자 문학 평론가, 강진호 작가를 만나봅니다.
어서 오세요.
강진호 작가 / 문학평론가
예, 반갑습니다.
서현아 앵커
문학의 대가들이 머물렀던 지역 23곳을 하나하나 직접 가서, 작품들을 다시 해석해본 건데요.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문학>은 어떤 작품입니까?
강진호 작가 / 문학평론가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문학』은 <문학 기행문>입니다.
전국 각지의 주요 문인들의 생가와 성장 환경, 문학관과 문학비 등을 둘러보고, 작가와 작품을 고찰하고 감상한 글을 모은 책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연구자이자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문학을 이론과 논리로 파악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과연 이게 문학을 제대로 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를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문학을 논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들의 생가와 성장지를 찾아다니면서 문학을 몸으로 체험하고 인식하는 기회를 갖고자 했고, 그래서 작가를 한 명씩 정해서 답사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김유정, 이효석, 이상화, 이육사 등 23명의 작가들이 정리되었습니다.
이 23명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자주 만났거나 읽었던 주요 작가들입니다.
이들을 지역별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서현아 앵커
논리를 넘어서 문학을 몸으로 체험해 보고자 했던 시도, 이렇게 수십 년째 문학 답사 여행을 다니고 계시는데요.
이번 작 지난 20년간의 발품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도전에 나서게 되신 이유도 궁금한데요.
강진호 작가 / 문학평론가
우리가 어떤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작품을 낳은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낳는 것은 작가이고, 작가를 낳는 것은 그의 성장 환경입니다.
따라서 창작의 현장을 엿보는 것은 작가의 체험과 환경이 어떻게 작품 속에 수용되고,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간접 체험함으로써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단서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종잇장 위에 활자로 책을 읽는 것과 시인이 그리워하던 흙과 바다와 고향의 뒷산을 직접 가보는 것은 그 감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문학이란 무릇 사람이 낳는 것이고, 작품을 논리화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을 낳은 사람을 들여다보는 눈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답사를 다니는 것은 작가를 들여다보고 작품을 체험적으로 감상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수록된 글에는 문학을 체험으로 알려준 계기와 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작가 23명의 근거지가 담겨 있으니까 정말 전국 각지의 여러 지역을 망라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여행지와 또 역사적 일화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강진호 작가 / 문학평론가
모든 여행지는 각기 개성적이고 인상적이지만 특히 흥미로웠던 곳은 고창의 '미당 시문학관',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한 두 개의 전시동과 세미나실, 옥외 광장을 갖춘 문학관은 마치 설치 미술 작품처럼 이채롭게 서 있습니다.
문학관 옥상 난간에는 미당의 시구가 새겨져 미당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소녀여, 비가 개인 날은 하늘이 왜 이리도 푸른가. 어데서 쉬는 숨소리기에 이리도 똑똑히 들리이는가.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미당은 시인이기 이전에 가난과 파란의 역사를 등짐으로 지고 허덕이며 살아온 섬약한 인간이었고, '살고 싶다'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래서인지 동백꽃보다도 더 애절한 울림을 줍니다.
그런 사실은 미당의 친일 행적들이 전시된 제2전시동에서 더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기념관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 죽는 것은 일본 천왕이 반도인에게 부여한 크나큰 영광'이라고 썼던 서정주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미당 시문학관을 둘러보는 것은, 서정주의 문학적 재능과 함께 그 이면에 도사린 가난한 삶과 인간적 허약함을 동시에 음미하는 씁쓸한 경험이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이런 공간에서라면 작가도 또 그 작품도 굉장히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특히 추천하시는 여행지도 있을까요?
강진호 작가 / 문학평론가
이 책에서는 23명의 작가를 탐방했지만, 딱히 어느 곳을 추천하기보다는 접근하기 쉬운 곳 어디든 가 보기를 권합니다.
인천에 사는 분이라면 책에서 소개한 대로 한국근대문학관이라든가 자유공원과 월미도 등지에서 문학적 자취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서울에서는 성북동의 심우장과 수연산방, 경기도에서는 양수리와 강원도의 춘천 등 주변에 있는 아무 곳이나 찾아서 작가들의 삶을 엿보고 시 한편이라도 음미하는 경험을 해보기를 권합니다.
서현아 앵커
네, 그런데 사실 요즘 독자들이 대부분의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직접 두 발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안방에서 스마트폰을 통해서 어디든 가볼 수 있는 세상인데, 이런 시대 속에서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전하고자 하시는지요?
강진호 작가 / 문학평론가
이 질문은 책 서문에서 제가 GPT와의 대화에서 이미 암시를 해놓았는데요.
제가 이제 그 질문을 했습니다.
AI 시대에 문학이란 무엇인가요? 라고 하니 챗GPT가 "AI 시대에도 문학은 인간의 창의성, 감성, 인간성 등과 관련된 예술적 표현의 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AI 기술은 문학과 글쓰기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활용될 수 있지만, 문학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적인 요소와 가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문학은 감성, 인간의 내면세계, 윤리적 고민, 사회 문제, 인간성 등을 탐구하는 예술 형식입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인간의 경험과 철학적 고민과 관련이 있으며, AI는 이러한 본질적인 인간적 요소를 이해하고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GPT가 답을 했습니다.
결국은 인간의 복잡한 내면에 대한 탐구가 문학의 존재 이유라면, 그것은 AI라든가 스마트폰이 대신할 수 없는 체험이자 가치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책에서 그것을 엿보고자 했고, 독자들이 그것을 조금이나마 느낀다면 이 책은 그 소명을 다했다고 하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그런데 굉장히 문학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이지만,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곳들도 많이 있을 것 같거든요.
독자들이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강진호 작가 / 문학평론가
숨어 있는 대상을 자신의 시야에 넣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과 보이는 풍경 속에서 안 보이는 그 무엇을 들여다보려는 세심한 눈이 필요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또 느낀 만큼 알며, 또한 아는 만큼 느낀다는 말은 모순된 듯하나 실상은 맞는 말입니다.
가령, 서울 서촌의 옥인동길에는 '윤동주 하숙집터'가 있고, 그 초입인 통인동 대로변의 뒷골목에는 이상이 살던 '이상 가옥'이 있으며, 거기서 인왕산 쪽으로 쭉 올라가면 '윤동주 문학관'이 있습니다.
이런 곳을 찾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저러한 자료를 통해서 그 위치를 알고 찾아야 그것이 의미 있게 다가오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풍경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런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서촌이며 통인동이며 인왕산까지 복잡한 섬 한가운데에도 이렇게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 숨어 있었네요.
아는 만큼 보인다 기억하겠습니다.
작가님께서 앞으로 또 계획하고 계신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궁금해지네요.
강진호 작가 / 문학평론가
사실 여기 수록한 글에는 많은 품이 들어갑니다.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어야 하고, 생애를 깊이 알아야 하고, 해당 지역의 특성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 사전 학습을 바탕으로 한편의 글이 쓰여졌습니다.
여기 미처 수록하지 못한 작가들은 아직 작품 전체를 읽거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작가들입니다.
염상섭, 황순원, 김동리, 김수영 등이 그렇습니다.
앞으로 이들 작가의 작품을 완독하고 이해한 뒤, 그것을 근거로 문학 답사를 떠나볼 계획입니다.
서현아 앵커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봉평이나 춘천, 통영 같은 여행지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여기서 탄생한 문학작품과 어우러지면 그 정취가 더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은데요.
책 읽고 여행하기 좋은 가을에, 많은 분들이 이 같은 재미를 함께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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