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매체도 놀랐다. "세대를 이어온 물질, 인간 진화의 실마리를 제공하다"

찬 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에도, 해무가 자욱이 낀 날에도, 그들은 바다로 향한다. 수 세기 동안 제주도 해녀들은 생계를 위해, 그리고 생명을 위해 바다에 몸을 던져왔다. 숨을 멈춘 채 맨몸으로 들어가는 동중국해의 차가운 물속. 그들이 건져 올리는 건 전복과 소라 같은 해산물만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이제 해녀의 몸에서 인류 진화의 단서를 찾고 있다.
프랑스 매체 GEO
프랑스 매체 '지오'(GEO)는 셀 리포츠(Cell Reports)에 실린 연구를 주목했다.
미국 유타대학의 유전학자 멜리사 일라르도(Melissa Ilardo)가 수행한 연구는 제주 해녀의 신체 능력과 유전자 구성을 분석했다. 그는 “인간이 극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가”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으며, 2018년에도 동남아시아 바다 유목민 ‘바자우 라우트(Bajau Laut)’의 유전적 특성을 분석한 바 있다. 이번엔 제주 해녀들이 그 목소리를 들려줬다.
제주인의 유전적 특성, 서울과는 다르다
연구는 제주 해녀 30명, 비(非) 해녀 제주 주민 30명, 서울 시민 31명 등 총 91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참가자들의 혈압과 심박수는 휴식 상태와 함께 ‘얼음물 담근 얼굴 테스트’라는 시뮬레이션 상황에서 측정됐다. 이는 실제 잠수를 흉내내기 위한 과학적 방법이다.
결과는 의외였다. 해녀와 일반 제주 주민 사이에는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 반면, 서울 시민들과는 뚜렷한 차이가 확인됐다. 제주 주민들은 서울 시민보다 저혈압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를 네 배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숨을 참는 동안 상승하는 혈압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해녀들처럼 임신 중에도 물질을 이어가는 집단에겐 더욱 필수적인 생리적 조건이다. 연구진은 “임신이 유전적 변화를 이끄는 동력일 수 있다”는 가설도 제시했다.
느려지는 심장, 훈련으로 얻는 생존력
그러나 이번 연구의 핵심은 심장에 있었다. 시뮬레이션 동안 해녀들의 심박수는 제주 일반 여성들보다 눈에 띄게 더 느리게 떨어졌다. 이는 ‘다이빙 반응’이라 불리는 생리적 현상으로, 물속에서 산소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심장박동을 줄이는 반응이다. 연구진은 “해녀들의 느린 심박수는 유전이 아닌 학습과 훈련의 결과”라고 밝혔다.
프랑스 매체는 이 연구를 소개하며, "추위에 대한 높은 내성 역시 해녀들이 바다에서 터득한 생존 기술임을 시사한다. 결국, 그들이 물속에서 얻은 것은 생계 수단만이 아니라 인류의 적응력과 진화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시사점이다"라고 전했다.
해녀의 존재가 던지는 과학적 함의
전통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지만, 해녀들이 몸으로 새겨온 역사와 생존력은 여전히 과학의 관심 대상이다.
해녀의 느려지는 심장박동은 단순한 훈련의 결과이자,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의 살아 있는 증거다. 멜리사 일라르도 박사는 “이러한 연구는 향후 심혈관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바다를 향한 발걸음은 고되지만, 그 발자취는 깊고 넓다. 해녀들은 오늘도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며, 인간 진화의 가능성을 다시 증명하고 있다.
에코저널리스트 쿠 ecopresso23@gmail.com
Copyright © 에코프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