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타고 오르는 증기기관차에 영화 세트장 같은 올드타운까지, 미국 화이트 마운틴 여행
미국에 사는 사람 대부분은 10시간 이상 운전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KTX나 고속버스를 선택한다. 안전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주 안에서도 몇 시간씩 이동해야 하는 거대한 면적, 경계선에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다른 주로 넘어가려면 5~6시간 정도는 운전을 해야 한다. 그러니 며칠을 달리고 달리다가 고속도로 선상의 아무 호텔에서 자고, 씻고 일어나 다음 여정을 이어가는 것이 일상적인 여행이다.
최근 다녀온 여행지인 화이트 마운틴은 뉴저지주를 출발해 뉴욕주, 코네티컷주, 매사추세츠주를 거쳐 도착했다. 이곳은 미국의 북동부인 뉴햄프셔(New Hampshire)주의 대표 관광지로 이 지역을 대표하는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s)에 접해 있다. 애팔래치아는 이 부근에서 가장 험난한 산맥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산은 1,917m의 워싱턴산(Mount Washington)으로 미국 북동쪽에서는 가장 높다.
높은 산이야 전 세계에 많지만, 이곳만의 독보적인 존재는 바로 ‘기차’이다. 과거의 증기기관차를 그대로 운영하고 있어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미국 현지인들이 이곳에 가보라고 한 이유 역시, 이 기차였다.
뉴햄프셔주로 진입하기 전부터 눈앞의 풍경에 설렜다. 가로로 늘어선 산맥이 마치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졌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뉴욕, 뉴저지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미국은 항상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운전대를 잡고 흥분을 누를 수 없었다.
화이트 마운틴은 두 가지 방법으로 올라갈 수 있다. 차 혹은 증기기관차. 기차는 클래식한 운치를 느낄 수 있고, 차로는 스릴 넘치는 난간 길을 지그재그로 달리는 재미가 있다. 고민 끝에 후자를 택했다. 차량으로 입장 시 차 한 대당 45불, 그리고 운전사 외의 인원수대로 1인당 20불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산으로 오르는 길로 이어진다.
오르다 보니 굽이굽이 산등성이들이 보이고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난간 하나 없이 도로만 쭉쭉 이어지는데 잠깐 실수했다간 어마어마한 낭떠러지로 바로 떨어질 형국이었다. 하와이 마우이섬의 할레아칼라가 떠올랐다. 그곳보다 조금 더 코스가 길고 더 험난하다는 차이가 있지만. 난간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벼랑은 미국 서부 애리조나(Arizona)주의 그랜드 캐니언 같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꼬부랑 산길을 아슬아슬 넘는데 차창 밖으로는 또 기가 막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운전하랴 풍경 보랴, 스케일에 압도당해 절로 감탄사를 내뱉으랴. 이것도 직업병이라고, 그 와중에 화이트 마운틴을 미국 동부에서 놓치면 안 될 여행지로 누구에게나 추천해 주고 싶다는 의지도 불타올랐다.
정상에 올라 증기기관차를 구경하고 풍경을 보며 긴장을 풀었다. 이런 경치를 과연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미국이란 땅덩어리엔 대체 없는 게 뭘까? 그건 그렇고 그 옛날 이런 험난한 산 정상까지 어떻게 아스팔트를 깔았을까? 크고 작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산한 다음 날에는 호텔이 있던 노스 콘웨이(North Conway) 지역을 즐겼다. 그런데 그냥 한적한 산골 마을일 줄 알았던 노스 콘웨이는 화이트 마운틴을 오가는 수많은 관광객이 머무는 이 지역 중심가였다. 다양한 레스토랑과 숍, 호텔, 카페 등이 즐비한 다운타운을 걸으며 모처럼 미국의 오래된 마을을 즐기는 재미를 누렸다.
화이트 마운틴에서 내려오면 주변의 호수나 공원으로 트레킹을 갈 계획이었는데, 노스 콘웨이의 매력에 빠져 이곳에서만 이틀을 즐겼다. 별다른 여행 계획이 없었기에 현지인과 관광객들 틈에서 팬케이크로 아침을 먹고, 동네 카페에서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고, 플리 마켓에서 쇼핑을 즐기고, 오래된 기차역에 들어가 이 동네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둘러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은 채 온전히 내 발길 닿는 대로 난생처음 방문한 동네를 즐기는 그 기분. 앞으로 이런 식의 여행이 더 좋아질 것 같다.
화이트 마운틴이야 기대만큼 좋았다지만, 노스 콘웨이에서는 머무는 내내 이런 상상까지 했다. 여기에 살면 어떨까? 흔치 않은 아시아인으로서 한 자리 차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왕 꾸는 꿈, 저 화운트 마운틴처럼 드높아야 마땅할 테니.
현실로 돌아온 지금도 나는 떠올린다. 햇살 좋던 날,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를 지나 빵집과 카페에서 먹을거리를 사 들고 골목길을 걸어 다니며 웃어젖혔던 그날. 그런 날이 다시 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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