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진이 망하는 걸 보고 쾌감 느낀 우리 모두에게 남은 숙제('더 글로리')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마침내 마무리됐다. 마침내,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뜨거운 반응을 이끈 파트1 8부 공개 후 몇 달이 지나 파트2 8부를 공개하는 방식을 택해 시청자들은 궁금증으로 현기증이 나던 상황이 이제야 해결됐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는 파트2 공개 후 넷플릭스 콘텐츠들의 글로벌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 패트롤 1위에 오르는 등 파트1 못지않은 반응과 파급력으로 이슈에 중심에 우뚝 서 있다.
김은숙 작가의 필력과, 송혜교를 필두로 이도현, 염혜란, 정성일, 임지연, 박성훈, 김히어라, 차주영, 김건우 등 주조연들의 좋은 연기가 빛을 발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안길호 감독 자신의 학폭 논란과 사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드라마 이슈의 불을 더 확산시켰지만 전반적인 연출의 완성도도 <더 글로리>의 영광에 한몫한 것은 분명하다.
작품의 탄탄한 전개를 위한 떡밥 배치와 해결 과정에 있어서도 김은숙 작가가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고 이는 작품의 재미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종화에서 송혜교와 주여정 모친의 만남처럼 전후 맥락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명 생략의 경우는 간간이 있지만 전반적인 작품의 구성은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룬 사회물이다. 로맨스로 대가를 이룬 후 역사, 평행 이론 등 영역 확장에 나선 김은숙 작가에게 사회물은 새로운 시도다. 과거 <시티홀>도 사회물로 분류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어둡고 무겁고 심각한 주제와 분위기는 아니었다.
특히 <더 글로리>가 주목받는 이유는 학폭을 개인의 일탈 문제로 다루지 않고 빈부격차라는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법 시스템이 폭행 피해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학교가 불우한 학생을 보호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제도적 허술함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더 글로리>의 이런 접근은 학폭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를 끌어올리고 학폭에 대한 경계와 관심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드라마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더 글로리>는 학폭을 다루는 에피소드에서는 드라마보다 마치 언론처럼 사회의 문제를 꼼꼼히 연구하고 분석해 보여준다.
드라마적인 접근은 피해자 회복 단계인 복수의 과정에 들어서 본격화된다. 한국 드라마의 본질적 특징인 판타지가 개입된다. 로맨스 드라마에서의 판타지는 가난한 부하직원을 사랑하는 부자 재벌2세 실장님의 등장이라면 사회물인 <더 글로리>의 판타지는 성인이 되면 그 영향력의 차이가 더 벌어질 빈부격차하에서도 빌런들과 대결하고 이겨나간다는 점이다.
돈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권력도 갖춘 빌런들이 교사 생활과 아르바이트로 복수의 종잣돈을 마련하는 송혜교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은 판타지로 봐야 맞을 듯하다. 물론 김은숙 작가는 이런 상황에서 송혜교와 빌런들이 힘대힘으로 맞붙기보다 송혜교의 계략에 빌런들이 서로간의 갈등으로 또는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고 있기는 하다.
이런 구성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구축하기는 하지만 극 중 송혜교처럼 약자인 개인은 학생 시절보다 더 처참하게 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약한 피해자가 강한 가해자를 사적 제재로 이겨내고 복수에 성공하는 내용은 허점이 적지 않은 한국의 사법 시스템으로 인해 최근 <모범택시> 등 사회물 드라마들에 의해 인기리에 자주 소환되는 판타지다.
<더 글로리>는 여기에 부수적인 판타지도 더한다. 서로 교감할 만한 각자의 사연이 이면에 있기는 하지만 이도현처럼 잘 생기고 어리고 부자인 남자가 사랑하고 도와주는 스토리라인은 로맨스 판타지적인 요소임이 분명하다. 수많은 주변 인물들이 송혜교가 착했기 때문에 도와주는 에피소드들도 권선징악의 판타지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
과거 판타지라는 용어는 한국 드라마를 평가절하할 때 자주 사용됐다. 팍팍한 사회 현실을 외면하고 허황된 환상에 취해 현실을 도피하게 만든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드라마가 발전을 거듭하는 과정에 질적으로 완성도 높게 현실 반영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드라마의 현실 도피 조장 우려가 크게 줄어들면서 판타지를 드라마의 한 긍정적인 요소로 받아들이게 됐다.
나아가 판타지는 K-드라마의 재미를 만드는 결정적 장치로 인정받고 있다. 판타지가 흔히 등장하는 멜로나 영웅물만이 아니라 착한 드라마라 불리면서 현실성이 강한 작품들에서도 가족 화해 같은 판타지적 요소들이 존재하니 판타지는 한국 드라마의 본질적 일면이라 봐야 할 듯하다.
<더 글로리>는 학폭 문제를 환기하는 사회적 파급효과와, 드라마로서의 판타지적 재미를 동시에 확보한 판타지 사회물 드라마다. 학폭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방안은 <더 글로리>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사법 행정 등의 허술한 사회 정의 구현 시스템의 개선과 빈부격차 해소 방안 마련 같은 그런 일들은 드라마를 본 사회 구성원들에게 남겨진 과제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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