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폐기물에 고통 받는 경남 주민들

폐기물처리시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어제오늘 사이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기업과 지자체가 이윤을 고집해 사업 강행을 멈추지 않는다는 지적 역시 한두 번 나온 게 아니다. 경남에서도 마찬가지다. 양산과 함안, 사천에서는 시설 증설과 신설 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미 운영 중인 시설을 증설하거나, 또 신설하는 계획에 반대 목소리가 일어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기세다.

참다 못한 주민들은 피해 사실을 알리고자 29일 오후 2시 창원대 사회과학관 104호 강의실에서 열린 '산업폐기물 공적처리방안을 위한 경남주민피해증언대회 제도개선 토론회'에 나왔다. 정혜경(진보당·비례) 국회의원과 경남환경운동연합이 공동 주관한 자리다. 어렵게 자리에 선 사람 중에는 건강이 좋지 않은 이도 있었지만, 꾹 참고 마이크를 잡고 청중 앞에 섰다. 이들은 지금도 누군가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악취로 잠 못 이루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함께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문제를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산업폐기물 피해 주민들이 29일 오후 창원대 사회과학대 강의실에서 열린 '신업폐기물 공적처리방안을 위한 경남주민피해증언대회 및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악취에 잠 못 드는 밤 = 양산산막일반산업단지와 불과 50m 거리에 사는 ㄱ(49·양산 북정동) 씨는 목 통증과 두통을 달고 산다. 산단 공장과 더불어 폐기물 소각장에서 내뿜는 악취에 건강이 나빠졌다. 집안 공기가 답답해도 좀처럼 창문을 열지 못한다. 화학약품 냄새가 문을 닫더라도 들어온다.

"1998년 11월쯤 15층 아파트 7000만 원 정도를 주고 14층에 입주했어요. 자기들은 악취를 개선하겠다고 말하지만, 달라지는 게 없어요. 쇠를 절단할 때 나는 절삭유 냄새도 심해서 속이 메스꺼워요. 목도 계속 아프고요. 가래도 많이 생겨요. 아침에 상쾌하게 문 열고 싶어도 못 열어요. 집에 있으면 위아래로 냄새가 다를 때도 있어요. 자고 있을 때도 냄새가 들어오니 너무 힘들어요."

ㄱ 씨는 큰 아이가 4살이 되던 2002년쯤 자신이 사는 집 앞 야산을 깎은 자리에 공장이 추가로 들어선 뒤로 건강에 문제가 있기 시작했다. 나머지 가족 건강에도 점차 이상 반응을 나타냈다. 첫째 자녀는 아토피, 둘째는 잦은 물집으로 고생 중이다.

ㄱ 씨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배경은 NC양산(주)이 추진 중인 폐기물 소각장 증설이다. 앞서 NC양산은 산막공단 터(3068㎡)에 있는 60t 처리용량 소각시설을 현대화하고 140t 규모 소각시설을 추가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ㄱ 씨는 언젠가는 주민 반대에도 증설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지금도 불편을 겪고 있는데 증설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이사하고 싶어도 제값을 받기도 어렵고요. 형편이 되지 않아 떠나지도 못하고 있어요. 양산시에서 대기질을 검사하는 차량을 보낼 때면 그때는 희한하게 냄새가 싹 사라져요. 또 시는 기준치를 넘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요. 우리는 고통받고 힘든데 누구 하나 죽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하승수 변호사가 제도 개선 토론 발제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함안과 사천 주민들도 건강 악화 우려 = 양산과 달리 함안과 사천에는 현재 폐기물 처리 시설이 들어서 있진 않다. 신설이 계획돼 있다. 반발이 나오지만, 사업 추진 주체는 계속 추진 중이다. 주민 뜻과 정반대다.

NC함안㈜은 함안 칠서면 공단안9길 66-95 일원에 매립장과 소각시설 1기 설치를 추진 중이다. 매립시설 면적은 6만 6716㎡(일반 5만 551㎡, 지정 1만 6165㎡)다. 여기에 일반폐기물은 70.1년, 지정폐기물은 7.7년간 묻힌다. 소각시설은 사업장 일반폐기물과 지정폐기물을 하루 94.8t 처리한다. 칠서면을 비롯해 이곳과 가까운 창녕군 남지읍 주민 사이에서 반발이 거세다.

"이미 공단에서 내뿜는 악취가 심해요. 항상 매캐한 냄새가 나요. 칠서산단 인근 칠서면 대치마을 주민 42명 중 7명이 암으로 사망했고, 마을 이장을 포함해 현재 5명이 투병 중입니다. 그런데다 100만 창원시민의 식수 정수장이 철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요. 대기오염 물질의 정수시설 낙하로 인한 수돗물 오염 위험도 커요. 그런데 폐기물처리장까지 들이려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아요."(김미정 함안남지폐기물반대대책위원장)

사천에서는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가 대진일반산업단지 자리인 곤양면 대진리에서 '사천 이차전지 리사이클링복합단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폐기물처리장이다. 기존 산업단지를 통째로 폐기물처리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시민들이 산업폐기물 공적 처리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폐기물처리시설이 들어서기로 확정되거나 실제 들어서게 되면 필연적으로 환경오염과 주민피해 우려가 잇따른다.

업체들은 안전하게 운영하겠다고 주장하지만, 환경오염·주민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 피해도 잦다. 일례로 2012년 충북 제천에서 에어돔 붕괴사고가 일어나면서 산업폐기물매립장에서 침출수 등이 유출됐다. 충북 제천 왕암동 매립장 인근 지하수에서는 페놀·염소 등 기준치의 최대 수백 배가 검출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폐기물 처리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민간 업체들에 산업폐기물 처리를 맡기면 불법 폐기물이 대량 발생하는 문제는 늘 골칫거리지만, 산업폐기물 매립과 소각을 공공이 맡으면 개선할 수 있다. 공공이 직접 책임지도록 법을 바꾸거나, 폐기물 이동 제한, 주민감시 강화 등도 방법이다. 공공이 책임지고 산업폐기물 처리 전 과정을 관리한다면 많은 양의 불법 폐기물 발생을 막는 것도 가능하다.

하승수(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변호사는 "시민사회에서는 주민대책위와 지역 환경·시민단체 등 상시적인 소통과 연대가 필요하다"며 "이미 난개발이나 환경오염시설로 주민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가 그에 대해 실태조사를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의 생명, 안전, 건강을 지키는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고 덧붙였다.

/최석환 기자

알려왔습니다 = 이 기사(지면 30일 자 3면 보도) 관련해 사천환경운동연합은 "SK에코플랜드가 대진일반산단에 추진하는 '사천 이차전지 리사이클링복합단지 사업'에 대해 반대대책위원회뿐만 아니라 사천시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다"고 알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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