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회계사 상당수, 최저임금 수준 보수 받고 있다”
“합격 인원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시장 전체에 덤핑 경쟁 심화”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신입 회계사 상당수가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고 있다." 황병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이 5월13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전한 청년 회계사들의 현실이다. 밤낮없이 일해도 야근이나 주말 수당조차 챙기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황 회장은 "자격증을 요구하는 전문직 가운데 이 정도 처우를 받는 직역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힘겹게 시험 문턱을 넘고도 수습처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청년 회계사가 수두룩하다. 합격증을 쥐고도 3년 넘게 겉돌다 다른 길을 찾거나, 편의점 알바나 물류센터 일용직으로 생계를 잇는 씁쓸한 사례도 쌓이고 있다. 황 회장은 "2~4년의 긴 수험 기간을 거쳐 어렵게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자기 전문성과 무관한 일로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라고 짚었다.
황 회장은 이 기형적 구조의 진원지로 합격자 과잉 배출을 들었다. 그는 "합격 인원이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시장 전체에 덤핑 경쟁이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회계법인들이 인원 늘리기에만 급급하면서 시장 내 회계사의 입지 자체가 곤두박질쳤다는 분석이다. 불어난 고정비를 감당하려고 제 살 깎아먹기식 수주 경쟁에 내몰리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황 회장은 "이런 구조에서는 임원급도 자리 유지가 쉽지 않고, 중급 회계사는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며, 신입은 진입 통로 자체가 좁아진다"며 "세대를 가리지 않고 업계 전체의 회계 투명성을 악화시킨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AI 확산이 신입 회계사 진입 통로 좁혀"
여기에 AI(인공지능)의 확산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황 회장은 "현장에서 체감하는 AI의 영향은 이미 뚜렷하다"며 "회계법인들도 실제로 AI를 도입해 쓰고 있고, 단순 반복 업무는 사람 손을 점점 덜 타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AI가 걸러낸 뒤 사람 몫으로 남는 업무가 갈수록 고도의 판단력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결국 핵심 업무는 중급 회계사들의 허리를 휘게 하고, 신입들이 실무를 익힐 징검다리 일거리는 씨가 마르고 있다. 그는 "AI가 직접적으로 일자리를 빼앗는다기보다, 신입이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좁히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짚었다.
정부의 수습처 확대 및 강제 배정 방안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단서를 달았다. "어디까지나 단기 처방이다. 매년 배출되는 합격자 수가 시장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한 같은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가 제시한 근본 처방은 결국 합격 인원 자체의 구조조정이다. "업계가 실질적으로 교육하고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은 연 700~800명"이라며 "수습처를 아무리 늘려도 그 자리를 채울 교육 역량과 업무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형식적 수습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회장의 쓴소리는 비단 청년 회계사들의 처우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요즘은 작은 동호회를 운영하더라도 구성원들이 내부 자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고 요구하는 시대"라며 "최근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제 시장에서 회계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모래 위에 쌓은 성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회계 투명성을 높일 방안으로는 표준감사시간 제도의 안착과 내부회계관리 제도의 적용 범위 확대를 주문했다. 황 회장은 "국가 경제의 신뢰 기반을 세우기 위해 본래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걷겠냐는 우문에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 회장은 "회계 투명성과 신뢰의 토대를 만드는 직업이라는 점에 큰 보람을 느낀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이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그 답에 단서가 붙었다. "그 보람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국가 회계 투명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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