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기 사망" 덜덜 떨었는데…'역대급 유행' 백일해, 절반 가짜?

박정렬 기자 2024. 10. 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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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의 신의료인]
직전 대유행보다 24배 많은 '역대급' 환자 발생
7월 전문가 회의 후 '근연종' 구분 검사 요청
검사기관 4곳 "백일해균 '양성'은 40~60%"
의료 현장 "대책 전파 미흡…실시간 공유 필요"
2024년 백일해 월별 발생 통계 및 양성 비율/그래픽=김현정

올해 역대급 유행을 기록한 백일해 환자의 절반 이상은 '가짜 백일해'일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유전자 분석 결과 방역 당국의 발표의 두 배에 육박하는 '가짜 백일해균'이 검출되고 있다. 정부가 설익은 방역 대책으로 특히 아이를 둔 부모에게 과도한 불안과 공포를 유발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7일 경상남도의사회 감염병 대책위원회(감염병대책위)가 지난달 국내 주요 검체검사 수탁기관 4곳에 발송한 'PCR 검사를 통한 백일해 진단' 공문 회신 내용에 따르면 현재 백일해 환자 중 실제 백일해균에 감염되지 않은 '가짜 백일해'는 최소 40%에서 최대 60%로 집계됐다.
PCR로는 근연종도 '백일해' 진단
백일해는 보르데텔라 백일해균(B.pertussis)이라는 세균에 의한 호흡기 감염병이다. 코로나19(COVID-19)가 등급 하향되기 전과 같은 2급 감염병으로, 2명 이상 발생하면 유행으로 분류될 만큼 전염성이 강하다. 백신 미접종 시 1명이 12~17명을 감염시킬 정도다.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무호흡, 청색증, 폐렴 등으로 자칫 사망에 이를 수 있는데 특히 1세 미만 영아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백일해는 배양 검사가 어려워 코로나19처럼 코와 목에서 검체를 채취한 뒤 PCR 검사를 통해 확진한다. 백일해균에 발현하는 'IS481'이란 유전자를 찾는 검사다. 2급 감염병은 환자 발생 시 24시간 이내 방역 당국에 신고, 격리 조치를 해야 해 의심 환자는 전수조사한다.

PCR검사 모습./사진=뉴스1


문제는 백일해균이 아닌데 유전적으로 유사한 근연종에도 'IS481'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뿌리는 같지만 백일해균보다 위험도가 낮고 전수조사할 근거가 빈약한 '홈자이균'이란 세균도 PCR 검사를 하면 백일해로 진단된다. 검사에서 양성 진단을 받아도 모두 백일해가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4월부터 백일해가 유행해 7월 초까지 직전 대유행 시기인 2018년보다 환자 수가 24배 많은 정도로 폭증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질병관리청은 7월 대한감염학회·대한진단검사의학회 등과 전문가 회의를 열어 의견을 구했고, 근연종의 존재를 파악해 같은 달 15일 보도자료로 이 사실을 알렸다. 검체검사 수탁기관에는 백일해균에만 발현하는 독소 유전자(Ptx) 등 추가 검사를 진행해 '진짜 백일해'를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질병청이 지난 6월 5~25일 백일해균 '양성'으로 신고한 검체 234건을 분석하니 백일해균이 68%(159건), 홈자이균이 24.7%(60건)에 달할 정도로 적지 않았던 탓이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사진=[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짜 백일해' 규모는 질병청 추정치보다 훨씬 큰 것으로 파악된다. 감염병대책위에 따르면 질병청이 추가 유전자 검사를 권고한 7월 이후 독소 유전자 등이 검출된 백일해 양성 비율은 A기관 50%, ,B기관 60%, C기관 40%, D기관 58%로 집계됐다. 최대 60%가 '가짜 백일해'일 수 있다는 뜻이다. 백일해 환자 수는 7월 1만561명에서 8월 3812명, 9월 3285명, 10월 149명(5일 현재)으로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질병청은 "유행이 둔해졌다"고 해석하지만 한 검사기관은 감염병대책위에 "질병청 고시 후 특히 유전자를 검사해 백일해균만 보고한다"고 환자 축소의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 '방역 소통' 강화해야
질병청에 따르면 2012년 이후 12년간 백일해로 인한 사망자는 단 한 명이다. 종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백일해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병원성이 약해졌거나, 97.3%(2022년 기준)에 달하는 높은 백신(DTaP) 접종률 덕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홈자이균과 같은 근연종마저 백일해로 과잉 진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이 이제서야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백일해는 전수조사와 격리 등에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영유아에게 위협적이라 지역사회에 과도한 불안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경상남도는 백일해가 유행할 때마다 유독 환자가 많이 발생해 학부모들의 경계심과 공포감이 큰데, 이런 이유로 진작부터 '가짜 백일해'를 판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역 의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됐었다. 환자는 많아도 외국보다 치명적이지 않고 증상도 경미했기 때문이다.

마상혁 경남 감염병대책위원장은 "진료 경험이 쌓인 1차, 2차 병원에서는 오래전부터 '가짜 백일해'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방역 당국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전문가 회의를 했다고 하지만 어떤 내용인지 일선 현장에 제대로 전파되지 않는다"며 "코로나19 유행을 경험했어도 정부의 '방역 불통'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단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 검사기관에 대한 책임과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이제라도 과잉·과소 진단과 치료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가 학계 등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며 "백일해의 적절한 관리 기준과 백신 정책을 시급히 마련하고 실시간으로 질병 정보를 의사들이 접할 수 있는 플랫폼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백일해균은 'IS481' 유전자는 50~200 카피(copy)를 가지고 있는 반면, 독소 유전자(ptx)는 오직 1 카피(copy)만 가져 검체 내 백일해균이 있더라도 IS481만 검출될 수 있다"며 "진단 누락을 막게 위해 해외에서도 백일해 검사에는 민감도가 높은 'IS481' 유전자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검진 방법에 한계가 따르는 것은 맞지만 독소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은 검체 중 실제 백일해균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배양 검사 등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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