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전자에 속타는데…삼성 '침묵'에 뿔난 주주들 [돈앤톡]
5만전자에 주주들 속타는데
삼성 "밸류업 방안과 공시 신중히 검토 중"
전문가들, 여력 부족·금산분리 등 분석
재계 1순위 삼성그룹이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공시'에 나서질 않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주요 계열사들이 줄줄이 밸류업 공시를 발표하고 있는 현대차·LG·롯데 등과 대조적입니다. 삼성의 밸류업 불참 이유를 두고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24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한국거래소의 '상장기업 밸류업 준비현황' 설문 조사 결과 10대 그룹 중 삼성·한화그룹(상장계열사 포함)만이 "연내 밸류업 공시를 낼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밸류업 공시는 상장사가 기업가치를 높여 주주들의 이익을 보장할 계획을 자발적으로 마련해 약속하는 제도입니다. 기업들의 공시 참여율이 저조한 가운데 거래소는 지난 8월 10대 그룹을 불러모아 "최근 국내외 증시 변동성이 커진 만큼 든든한 버팀목인 10대 그룹부터 밸류업 프로그램에 선도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전날까지 현대차와 롯데렌탈, 롯데쇼핑, 롯데칠성, 롯데웰푸드, LG전자 등이 기업 경영·주주환원 세부 방향을 적은 '본공시'를 내놨습니다. 거래소의 참여 독려에 재계가 하나둘 응답하는 모양새이지만, 1등 기업 삼성은 다른 노선을 취한 겁니다.
'5만전자'에 주주들 속 타들어가는데…밸류업엔 침묵
국내 증시 시가총액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지난달 24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밸류업 지수 100종목에 포함됐습니다. 시총과 2개년 실적, 주주환원책,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지수 편입 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시총 2위인 SK하이닉스가 '2년 합산 흑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도 지수에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삼성전자는 요건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지수에 편입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시총만 350조원 규모의 초대형주이기 때문인데요. 추후 리밸런싱(지수 조정) 시 이 종목을 넣고 빼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지수를 처음 만들 때부터 포함시키는 것이죠.
하지만 정작 삼성전자는 '밸류업 공시'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일단 연말까지는 공시를 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으니까요.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은 지난 22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제55회 한국전자전' 부스 투어 후 취재진과의 자리에서 "(부진한) 주가와 관련 밸류업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가' 묻는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3분기 실적 부진으로 이례적으로 경영진이 사과문까지 냈던 만큼 그는 굳은 분위기 속에서 부스를 둘러봤다고 합니다.
소액주주 수가 425만명에 달하는 '국민주'인 만큼 회사의 적극적인 주가 대응을 원했던 주주들로선 아쉬운 대목입니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8일 3분기 잠정실적 발표가 나온 다음날 '6만전자'가 붕괴된 채 장을 마쳤고 현재는 '5만전자'까지 내려온 상태입니다. 종목토론방에선 '밸류업 계획은 왜 발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주가 흐름이 부진한데 밸류업은 언제 하나' 등 토로 글이 적지 않습니다.
"삼성, 일단 실적부터 챙겨야…금산분리도 걸림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밸류업 공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단 비금융사로서 굳이 금융당국의 '밸류업' 제도를 활용할 유인이 없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삼성전자는 3년마다 배당 등 주주환원책을 수립해 왔습니다. 삼성전자는 연초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2024~2026년 주주환원책을 내놨는데요. 직전 3개년과 동일하게 3년간 발생하는 잉여현금흐름의 50%를 환원하고 연간 9조8000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밸류업 공시를 한 10대 그룹의 한 IR 담당자는 "거래소 밸류업 공시 간담회 때 삼성전자에선 '우리는 이미 많은 정보들을 공시하고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밸류업 공시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귀띔했습니다.
본업에서의 부진 때문에 밸류업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라는 분석도 많았습니다. 한 증권사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이미 잉여현금흐름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생기면 절반을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한 올 초 약속도 못 지킬 상황인데, 더 의지적인 내용을 내는 게 무슨 소용이겠느냐"라며 "본업 개선이 선결 사항이라고 봤을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특히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부담 탓에 발이 묶여 있다는 해석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은 금융산업 구조 개선에 대한 법률(금산법)에 따라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유지 중입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땐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높아지는 만큼 삼성화재와 합친 삼성전자 지분이 10%를 넘어 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내부에선 소각도 못하는데 자사주 매입에 의미가 있는지 등을 두고 고민이 컸던 것으로 안다"며 "삼성전자 순현금은 80조원대지만 대부분 해외법인 곳간에 있어 투자나 배당 여력도 어렵기 때문에 이런 상황상 밸류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고 짚었습니다.
한목소리를 내기 힘든 삼성그룹의 특징에서 이유를 찾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국내 5대 로펌 한 ESG 전문가는 "다른 재계는 지주(그룹)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내고 방향성을 맞춰서 계열사들도 궤를 같이 하게끔 하는 경향이 있는데, 삼성은 워낙 상장 계열사들이 많아 지주 차원의 리더십이 발휘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삼성은 계열사끼리도 경쟁관계여서 되레 외부에 자사 계열사들 현황을 묻더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비금융 제조사로서 밸류업에 선도적이었던 금융사들과는 업태나 방향성이 다를 수 있다"며 "밸류업 공시만 안 하고 있을 뿐 주주환원에 대해선 연초 실적 콘퍼런스콜 등에서 꾸준히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밸류업 공시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공감하는 만큼 현재 방안과 공시 등도 신중히 검토 중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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