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LA갈비의 추억
“이게 얼마 만의 후임이야? 나는 입사 14년 차인데, 네가 오기 전 막내였어.”
2009년 스물네 살 나이로 특급호텔 주방에 입사했을 때 직속 선배가 건넨 첫인사다. 이 호텔은 88올림픽 때 생겨, 주방엔 근속 기간 10년이 넘는 베테랑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신입인 내가 맡은 첫 업무는 ‘LA갈비’. 이 요리는 연회와 뷔페의 꽃이라 담당 요리사들의 자부심이 상당했다. 첫날 작업이 끝난 뒤 선배가 맛보라며 구워준 갈비는 태어나 처음 먹는 우아한 맛이었다.

행사에 쓸 갈비는 대부분 전날 손질해 양념에 재워둔다. 당일엔 커다란 오븐팬에 겹치지 않게 깐 다음 230도 이상에서 겉면이 살짝 캐러멜화될 때까지 구워낸다. 오븐이 오래돼 타이머가 작동하지 않아 수시로 익어가는 상황을 체크해야 했지만, 갈비가 구워지며 풍기는 냄새는 온 주방을 메울 정도로 강력해서 보고 있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만무일실(萬無一失) 하며 지내던 어느 날, 200인분의 VIP 연회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익어가는 LA 갈비 향을 체크하며 일을 돕는데, 그날따라 코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LA 갈비는 아직인가요?” 뛰어온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린 순간 오븐에서는 불이 난 듯 자욱한 연기가 났고, 갈비는 숯덩이로 변해 있었다.
상황을 알아챈 팀원들은 하던 일을 전부 멈추고 달려와 다음 날 쓰려고 준비한 갈비를 꺼내 프라이팬에 굽기 시작했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 목소리와 함께 선배들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200인분 갈비를 제시간에 구웠다.
행사를 마친 후에도, 그 다음 날도, 선배 중 누구도 갈비 사건을 입 밖에 내 꾸짖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무언의 꾸짖음은 지금까지 내가 셰프 생활을 하는 데 긴장감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주방을 지휘하다 보면 광주리에 담은 밥도 엎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팀원 중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큰 실수를 저지르면, 나 역시 혼을 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날 그때의 영웅들처럼.
※11월 일사일언은 김호윤 셰프를 비롯해 이현아 ‘그림책 한 권의 힘’ 저자, 한태민 샌프란마켓 대표, 임승유 시인, 김미향 기획회의 편집인이 번갈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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