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선거공작 의혹' 윤상현 기소 놓고 엇갈린 검·경
KBS는 4선 중진의 무소속 윤상현 의원과 '함바왕' 유상봉 씨의 이른바 '선거공작 의혹'을 지난달 연속 보도했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유상봉 씨가 윤상현 의원 측 요청을 받고 경쟁 후보들을 흠집 내는 내용의 진정서와 고소장을 일부러 써줬다는 게 핵심 요지였다.
유상봉 씨 부자(父子)가 윤상현 의원 측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다른 경쟁 후보인 민주당 박우섭 후보(당내 경선에서 패배), 미래통합당 안상수 후보(본선에서 3위)를 각각 겨냥한 진정서와 고소장을 썼다는 게 유상봉 씨가 KBS와의 인터뷰에서 폭로한 내용이다.
진정서와 고소장에는 유 씨가 과거 두 후보 측에게 각각 돈을 건넨 적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고, 실제 총선 국면에서 유 씨의 이같은 주장이 인천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보도되면서 적잖은 소란과 이슈를 낳은 바 있다.
윤상현 의원은 전국 지역구 가운데 가장 적은 표차인 171표 차이로 인천 동구·미추홀을에서 4선에 올랐다.
(※'함바'는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임시 식당을 말한다. 유상봉 씨는 201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함바게이트'의 장본인이다. 함바 수주를 대가로 고위공직자들에게 금품을 뿌린 혐의가 인정돼 본인도 실형을 선고 받았고, 공직자들도 줄줄이 형사처벌된 바 있다.)
■ 윤상현 의원 놓고 검경의 엇갈린 의견..."기소해야" vs "불입건"
인천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①유상봉 씨 ②유 씨의 아들 ③윤상현 의원 측 조 모 보좌관 등 3명을 선거공작에 가담한 혐의, 즉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수사의 초점은 윤 의원도 이들처럼 피의자가 되느냐였다.
KBS 취재 결과 경찰은 윤 의원도 선거공작 혐의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재판에 넘기자는 '기소 의견'을 인천지방검찰청에 전달했다. 그러나 검찰은 윤 의원에 대해 '불입건'해야 한다는 지휘를 경찰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피의자 3명에 대한 의견은 동일하지만, 수사의 초점이라 할 윤 의원의 혐의에 대해선 경찰과 검찰의 의견이 정반대로 엇갈리는 것이다.
■ "직접 가담 소명 부족" VS "직접적 행동 많아 기소는 당연"
인천지검은 윤상현 의원이 유 씨를 여러 측면에서 챙겨준 사실 자체는 맞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윤 의원도 직접 선거공작에 가담했는지를 증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검찰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상현 의원이 직접 행동한 사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기소는 당연하다는 것이고,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이후 수 개월 동안 전개된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면 "민원 해결"이라는 윤 의원 측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 KBS가 확인한 '윤상현 의원 개입 정황들'
KBS 사회부는 '함바왕' 유상봉 씨가 카메라 앞에서 말했던 폭로 내용을 하나하나 검증해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KBS가 확인 보도한 내용 가운데 일부를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간략한 정리를 위해 존칭을 생략한다.
▲윤상현·유상봉이 지난해 8월 세 차례 직접 만났고, 윤상현이 동료 의원인 정성호·김두관 의원에게 직접 전화해 유상봉 아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잘 봐달라"는 취지의 청탁성 전화를 걸었다.
▲정성호 의원은 유상봉 아들을 경기도시공사 사장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줬고, 김두관 의원은 경남 통영시장 측과 만나도록 주선해줬다. 이후 유상봉 아들은 실제 그들과 접촉했다.
▲윤상현 측은 유상봉 아들에게 '롯데 관련 3건'의 이익을 챙겨준 바 있다. 롯데건설이 시공 중인 경기도 성남시 호텔 건설 현장의 임시식당(함바) 운영권, 롯데백화점 구리점의 음식 판매 계약, 롯데백화점 일산점의 음식 판매 계약이 그것이다.
▲윤상현 부인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조카인 신경아 씨로, 유상봉은 신 씨를 지난해 8월 직접 만나 사업 관련 논의를 한 바 있다.
▲윤상현은 법률 자문이 필요한 유상봉을 위해 채동욱 변호사(전 검찰총장)를 소개해 만나게 해줬고, 녹내장 진료가 필요했던 유상봉을 위해 서울아산병원도 직접 연결해줬다.
▲KBS는 유상봉 아들과 또 다른 사업가 사이 오간 40여 개의 통화 음성 파일을 입수해 유상봉 부자가 윤 의원 측과 긴밀히 소통하고 교감하면서 선거공작에 가담한 흔적을 고발했다.
KBS가 확인한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윤상현 의원은 "민원 해결" 차원이고 선거공작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부인하고 있다. 피의자로 입건된 조 모 보좌관도 "유상봉 부자가 딱해서" 자신이 알아서 챙겨준 것일 뿐 윤 의원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역 의원이 선거를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민감한 시점에, 어쩌면 '악명이 높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른바 '함바왕'을 수차례 만나 꼼꼼하게 챙겨줬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구가 큰 것도 사실이다.
■ 첫 만남에서 녹음된 파일은 어디에?
그런데 KBS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유의미한 사실을 포착했다. 윤상현과 유상봉 두 사람이 처음 마주한 지난해 8월, 이 자리에는 만남을 주선한 미래통합당 관계자 김 모 씨가 동석했다. 김 씨는 현장에서 대화 내용을 녹음했는데 이 녹음 파일을 경찰이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피의자로 입건된 조 보좌관은 지난달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 파일을 자신이 갖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윤상현 의원의 결백을 주장하고 싶다면 문제의 파일을 공개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취재진 요청에 그는 "정무적 판단을 해보겠다"고 답했다. 아래는 취재진과 윤 의원 보좌관 조 모 씨 사이 오간 인터뷰 대화다.
그러나 윤상현 의원과 조 보좌관은 최근 언론 접촉을 사실상 피하고 있다.
첫 만남에서 윤 의원이 선거공작과 관련한 구체적인 말을 했는지, 아니면 주로 유상봉의 이야기를 듣고 호응해준 정도였는지는 더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윤 의원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건 실체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경찰은 문제의 파일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진행한 수사 내용만으로도 윤 의원을 재판에 넘기는 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 경찰, '재지휘 건의'하기로...윤상현 의원은 무혐의로 끝날까?
경찰은 검찰의 '불입건' 지휘를 따를 수밖에 없다. 선거법 위반은 '공안 사건'으로 분류되는데, 이 경우 경찰은 수사 단계에서부터 검찰 지휘를 받도록 대통령령에 규정돼 있다.
경찰은 새로 지휘해달라는 요청을 담은 '재지휘 건의'를 검찰에 공식 전달하기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검찰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유상봉 부자와 보좌관은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윤상현 의원은 '무혐의'로 끝나게 된다. 선거법 위반 혐의는 공소시효가 6개월이다. 두 달이 채 안 남았다.
이재석 기자 (jaeseo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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