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진중권이 있다면 남아공엔 이 사람이 있다

조회수 2020. 9. 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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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재무장관은 어쩌다 '프로 불편러'가 됐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티토 음베위니 재무장관

평소 회색 정장을 자주 입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티토 음베위니 재무장관은 내성적일 것 같은 이미지다. 하지만 그의 최근 행보는 그런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

그는 트위터에서 국내외 이슈로 설전을 벌이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87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음베위니 장관은 최근 트위터로 잠비아 대통령을 비난해 공분을 사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 왔다. 남아공 대통령까지 음베위니 장관의 해당 트윗을 질책하기도 했다.

그는 외교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현지에선 사실 '집안일'로 더 유명하다. 남아공에선 그를 '티토 삼촌'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매운 '집밥 트윗'으로 인기

그는 다양한 현안에 대한 트윗을 올린다. 하지만 일반 시민의 관심을 끄는 건 그가 올리는 '집밥 트윗'이다. 사실 그가 쉐프가 아니라 재무장관이 된 게 다행일 정도로 그의 음식 솜씨는 썩 좋지는 않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그의 집밥 요리에서 고추와 마늘은 빠지지 않는 재료. 하지만 입맛이 민감한 이들에겐 이 두 재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은 충격 그 자체다.

Tweet about chillies

2018년 그는 고추와 마늘을 섞어 만든 양념으로 눈물 콧물을 쏟아낸 셀카를 트위터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장관이라는 자리에 있으니 농담을 모르는 진지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농담의 대상이 되는 걸 개의치 않는다.

Tweet with a picture of a roast chicken

최근 그는 직접 요리한 로스트 치킨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잘 만든 치킨은 아니었다. 남아공 사람들은 재무장관의 망친 음식을 대놓고 놀렸고, 현지 유명 럭비 선수 시야 코리시는 직접 로스트 치킨을 만들어 장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Siya Kolisi holding roast chicken

'혼밥'에 적당하다며 올린 혼밥 메뉴 사진뿐 아니라 남아공 경제 상황이나 국제 정세에 대한 불만 또한 음베위니 장관의 단골 트윗 소재다. 하지만 트위터상에서의 너무 솔직한 발언으로 다른 정부 관료와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윗선도 못 말리는 '사이다' 발언 장관

음베위니 장관은 최근 밀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는 시리즈의 트위터 게시물로 잠비아와 '외교 문제'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난 8월 넷째 주말 잠비아 대통령이 자국의 중앙은행 총재를 해임한 걸 두고 직언을 하면서다.

그는 "아프리카 대통령들은 아침에 갑자기 일어나 중앙은행 총재를 해고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면서 잠비아 대통령이 (총재 자리를) 마치 개인 재산인 것 마냥 취급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총재는 좋은 사람이었다. 왜 우리 아프리카엔 이런 일이 자주 있는가? 잠비아 대통령은 중앙은행 총재를 해임한 이유를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지옥처럼 될 것이다!"고 썼다.

이에 대한 잠비아 대통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음베위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드러내고 상대를 저격했다.

그는 "내가 잠비아 은행 총재의 해고에 대해 뭐라고 했다고 곤경에 처한 것 같은데 나는 번복하지 않는다"며 "중앙은행 독립은 타협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모든 국가의 중앙은행 수장들이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음베위니 재무장관의 트윗 때문에 그를 질책해야 하기도 했다

해당 트윗은 나중에 삭제됐다. 하지만 이미 문제의 트윗에 대한 파장은 커졌고 잠비아 인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남아공 대통령은 음베위니 장관을 질책하면서 그가 잠비아 정부에 대해 "유감스러운 발언"을 했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하지만 어떻게 재발 방지할 건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음베위니 장관의 트위터 게시물이 유달리 전투적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그가 윗선의 귀에 거슬릴 수도 있는 '소신'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잠비아 관련 발언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음베위니 장관이 먹고 살기에 급급하지 않기에 직언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그가 '프로 불편러'가 된 이유

음베위니 장관의 삶이 트위터에서만 고단한 게 아니다. 그는 실제로 많은 역경을 거쳤다.

1980년 아프리카 민족 회의(ANC)에 가입해 당시 소수였던 백인들의 통치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였다. 때문에 레소토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그는 현재 여당의 최장수 의원 중 한 명이고 몇 년간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앞서 1999년과 2009년 사이 중앙은행 총재직을 역임해 흑인 최초 중앙은행 수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중앙은행을 통제하려 한 ANC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해오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을 맹렬히 지지해 왔다. 그가 왜 잠비아 은행 총재 사임에 목소리를 높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음베위니는 1959년 남아공 빈민촌에서 태어났다. 당시 흑인에겐 직업 및 교육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고 이동권 또한 제한됐다. 3남매 중 막내인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뚝심을 발휘해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해 정상에 올랐다. 레소토에서 경제학 및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개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는다.

'모두 까기' 전사

ANC 내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좌파 진영에선 그가 너무 기업 친화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지적한다.

그는 아무리 같은 당 사람이라고 해도 논쟁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해 전자 도로 통행료의 유지 여부를 두고 같은 당 소속의 가우텡주 주지사와 공개적인 논쟁을 벌였다. 앞서 ANC는 통행료를 없애겠다고 약속해왔다. 하지만 음베위니 장관은 "나는 왜 가우텡주의 중상류층이 우리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은지 모르겠다. 노동자 계층은 전자 도로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대중교통, 모르냐?"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해당 주지사는 음베위니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대통령이 나서 이 둘의 논쟁을 막아야 했다. 마치 학생이 교장실로 불려간 것 상황처럼 말이다.

세수 확대를 위해 대마초의 합법화를 요구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트위터에 직접 키운 대마초가 싹을 틔운 사진까지 올려 말이 많았다. 분명 음베위니 장관의 트윗은 장난기 섞여 재미있기도 하고 종종 정치계에 경종을 울리기도 해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이 선출한 국가 중대사를 다루는 정부 고위 관료다. 이점을 고려하면 잠비아 사례처럼 그의 트위터 발언이 지나치게 논쟁적이고 정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도 음베위니 장관의 기가 꺾이진 않는 듯하다. 오늘도 '티토 삼촌'의 사이다 발언은 이어지고 있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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