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이글스파크 1루쪽을 지킨 팬들을 위해


벌써 겨울인가보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초저녁인데 10도 안팎이다. 밤 되면 얼음도 얼겠다. 그런 걱정이 들 정도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스름한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대전 중구 대종로 이글스 파크 주변이다. 곳곳에 환한 얼굴, 웃음꽃이 핀다. 저마다 양 손에 한가득이다. 유니폼, 응원도구, 플래카드…. 왜 아니겠나. 창단 첫 우승이 바로 눈 앞이다. 이제나, 저제나. 손꼽은 날이다. 먼 길 마다않고 달려온 정성들이다.

이미 하루가 밀렸다. 전날(22일) 광주 게임은 헛탕이었다. 비 때문에 경기가 취소된 탓이다. 덕분에 기대감은 두 배가 됐다. 오늘이야말로, 반드시 이루리라. 자못 결연함까지 느껴진다.

MBC Sports+가 현장을 취재했다. 게임 전 스케치가 색달랐다. 다이노스 선수단 도착 장면부터, 팬들 인터뷰까지. 마치 대관식을 앞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법하다. 1등과 꼴찌의 대결 아닌가. 승차가 무려 37.5게임이다. 더 이상 순위 싸움이 의미없는 팀과의 대결이다.

게다가 1위 팀은 에이스가 뜬다. 드류 루친스키다. 잘 하면 20승까지 넘보는 투수다. 앞선 이글스전 성적도 안정적이다. 2게임 모두 승리투수였다. 14이닝에 1실점(ERA 0.64)이 전부다.

맞서는 매치업은 워윅 서폴드다. 홈 팀의 1선발이지만 예상치는 일방적이다. 시작전 중계화면에 팬들의 기대치가 떴다. 82.1 대 17.9%. 압도적인 원정 팀 우세다.

MBC Sports+ 중계화면 캡처

숙연했던 은퇴식 "저는 30~40점짜리 선수"

하루 전이다. 그러니까 다이노스가 광주에서 (비 때문에) 철수할 무렵이다. 이글스파크는 숙연한 이벤트가 열렸다. 김태균의 기자회견이다. 돌연 라커룸에서 짐을 빼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걸 확인하는 자리였다. 첫 순서는 꽃다발 전달이다. 정민철 단장, 최원호 감독대행이 악수를 건넸다. 주장 이용규는 고개를 숙였다.

덤덤하게 자리에 앉았다. 본격적인 인터뷰 시작이다. 그리고 막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한화 이글스 김태균입니다." 그런 직후다.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큼직한 손으로 눈가를 덮는다. 머리를 쓸어 넘기고,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러고도 주체하기 어렵다. 한동안 마이크는 침묵을 지켰다. 대신 카메라 셔터 소리만 요란했다. 거의 3분만에 인터뷰가 재개됐다.

"2006년 한국시리즈를 경험했습니다. 그 때는 얼마나 소중한 지 몰랐습니다. 기회가 또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선수 생활을 평가하면) 30~40점밖에 안되지 않나 싶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팀의 중심타자였고, 주축 선수로서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점수를 많이 줄 수 없습니다."

은퇴 경기를 마다한다는 얘기에 다시 한번 숙연해졌다.

"감사하게도 구단에선 (은퇴 경기를) 제의해줬습니다. 저만의 한 타석, 개인적으로 소중하겠지만 저보다 더 간절하고 소중한 타석의 선수들이 있습니다. 제가 마지막 가는 길에 그 선수의 소중한 기회를 뺏는 게 아닌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다시 번복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연패를 끊기 위한 꼴찌의 몸부림

막상 게임은 만만치 않았다. 82.1 대 17.9%의 예상은 턱 없이 빗나갔다.

1위 팀은 추위에 얼었다. 수비 실수가 속출했다. 3회가 비극의 이닝이었다. 나성범이 빠트리고, 노진혁이 뚫렸다. 마운드의 에이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한꺼번에 5실점, 초반에 분위기는 완전히 넘어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꼴찌 팀은 착실히 점수를 벌어나갔다. 브랜든 반즈와 송광민이 3안타씩 불을 뿜었다. 최재훈, 이용규, 김민하, 노시환도 모두 멀티 히트 게임이다.

최원호 감독대행은 의미를 부여했다. "에이스 대결이라 경험있는 베테랑 선수들로 기용했다. 이들이 최선을 다해 플레이했다. 활발하게 찬스를 만들어주고, 득점까지 연결시켰다. 모두가 한마은으로 연패를 끊은 점에서 의미 있는 경기였다."

주장의 소감도 비슷했다. “연패를 끊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NC가 우리 팀을 이기면 우승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막으려고 했다. 서폴드의 10승에도 도움주고 싶었다.” (이용규)

그리고 하루 전 일을 꺼냈다. 선배 김태균 얘기다. “태균이 형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고 힘들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떠나게 돼 너무 아쉽다. 태균이 형이 팀에 남았을 때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웃는 모습으로 야구를 많이 했어야 했다.” (이용규)

가장 빛난 곳은 1루쪽 홈 팀 응원석

이날 이글스파크 유료 관중은 1353명이다.

상당수는 3루 쪽에 자리잡았다. 원정 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눈길들이다. 구단주도 방문했다. 다이노스 직원들도 대거 출동했다. 모두 광주 찍고, 대전으로 이동이었다. 강행군의 수고도 아끼지않았다. 첫 우승의 간절함이야 오죽했겠나.

하지만 <…구라다>는 자꾸 반대쪽이 눈에 밟힌다. 1루 쪽 홈 팀 응원석 말이다.

유난히 쌀쌀한 날씨다. 팀 성적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자칫 안방에서 남의 잔치 해주게 생겼다. 그런데도 요지부동이다. 굳이 찾아와서, 꿋꿋이 자리를 지킨다. 마지막까지 그라운드를 향한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다시 은퇴 기자회견이 생각난다. 주인공이 했던 말이다. "늘 시즌 전에만 희망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한번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팬들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김태균)

어제(23일) 이글스파크에서 가장 빛난 곳은 그곳이다. 갈채와 응원은 그곳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내년 이맘 때는 1루 쪽 응원석도 뜨거워지길 기대해본다. (1999년 이후) 21년간의 암흑은 너무 잔인하다.

MBC Sports+ 중계화면 캡처


MBC Sports+ 중계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