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투자와 장신화로 희망의 빛을 본 한국전력 [2020~2021시즌 V리그 준비현장을 가다]

김종건 기자 2020. 9. 3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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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시즌 V리그 개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남녀부 13개 팀은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수많은 관중이 편하게 경기장을 찾던 일상으로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각 팀은 비시즌 동안 과감한 트레이드와 자유계약선수(FA) 영입으로 새 시즌의 기대감을 높였다. 17번째 시즌을 앞두고 땀으로 젖은 각 팀의 훈련장을 돌아봤다

한국전력이 V리그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는 서재덕과 전광인이 함께 뛸 때였다. 2013~2014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팀은 통산 83승94패, 시즌 평균 14.6승을 따냈다. 2014~2015시즌과 2016~2017시즌에는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가장 우승에 근접했다.

아쉽게도 팀을 떠받들던 2개의 기둥 가운데 전광인이 먼저 자유계약(FA)선수로 떠나면서 고통의 시간은 찾아왔다. 2018~2019시즌 외국인선수 선택의 실수와 불운까지 겹쳐 7위(4승32패)로 추락했다. 또 다른 기둥 서재덕이 군에 입대한 뒤 장병철 감독이 새로 지휘봉을 잡았지만 반전은 쉽지 않았다. 종기 종료된 2019~2020시즌도 7위(6승26패)로 마감했다. 열심히 노력해도 이전 시즌보다 고작 2승이 늘어난 것에서 알 수 있듯 배구는 에이스가 차지하는 영향이 다른 어느 스포츠보다 크다. 암흑의 시기에 팀에 필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성이었다.

● 장병철 감독 장신화의 성공적인 틀을 다지다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 스포츠동아DB

감독 취임 이후 2년째 장병철 감독은 많은 것을 바꿨다. 팀의 기틀을 다지고 새로운 팀 문화를 주입시키려고 과감한 물갈이도 했다. 그 준비과정을 치열하게 한 덕분에 팀의 골격은 제대로 갖춰졌다. 과감한 투자의 덕을 봤다. FA시장에서 연봉 7억원의 박철우와 1억3000만원의 이시몬을 영입했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서는 기대했던 1순위 구슬은 아니었지만 원했던 26세의 미국 대표팀 출신의 카일 러셀을 선택했다. 지난해 신인드래프트에서는 1순위로 세터 김명관을 지명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전력은 지난해 뛰었던 멤버 가운데 센터 조근호를 제외한 모든 자리의 주전 명단이 바뀌었다.

한국전력 안요한. 사진제공 | 한국전력

감독이 구상했던 새로운 틀의 키워드는 장신화였다. 그동안 한국전력은 다른 팀보다 신장이 낮았다. 키가 권력인 배구에서 높이의 차이는 넘지 못할 벽이었다. 상대는 한국전력의 블로킹 위에서 편하게 공격을 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해줄 장신화는 제천·KOVO컵 우승으로 성공을 예고했다. 외국인선수 통역에서 센터로 급조시킨 신장 200cm의 안요한이 가세한 한국전력은 선발 6명(206cm 러셀~195cm 이시몬~200cm 박철우~199cm 조근호~197cm 김명관)의 평균신장이 199.5cm로 V리그에서 가장 장신의 팀으로 하루아침에 탈바꿈 했다. 무엇보다 블로킹과 서브 능력이 뛰어난 V리그 최장신 세터 김명관이 주는 임팩트가 컸다.

● 높이의 위력을 더해줄 기초는 탄탄하지만 아직은 도깨비 같은 팀

한국전력 박철우. 사진제공 | 한국전력

높아진 블로킹 벽은 KOVO컵 결승전에서 확인됐다. 5세트 19-18에서 대한항공 정지석의 마지막 퀵오픈 공격은 블로킹을 시도하는 김명관과 1-1 상황이었다. 상대의 높이에 부담을 느낀 정지석은 옆으로 비껴 때리려다 아웃, 우승확정 포인트가 됐다. 네트 좌우에서 높은 기둥을 세우듯 러셀과 박철우가 사이드블로킹 벽을 강화하고 중앙에서 센터와 김명관까지 가세하면서 한국전력은 상대가 쉽게 공략하기 어려운 팀으로 변했다.

높이만 좋아진 것이 아니다. 2020~2021시즌의 한국전력은 기초가 탄탄해졌다. 이시몬이 큰 역할을 했다. OK저축은행 시절부터 리시브 능력은 인정받았던 그가 가세하면서 팀은 기초공사가 단단한 건물이 됐다. 리베로 오재성이 중심을 잡고 이시몬이 거들어주면서 의문부호가 따르던 러셀의 리시브 능력도 차츰 좋아지고 있다. 간혹 리시브가 흔들려도 김명관이 어지간한 공은 네트 위에서도 잡아서 연결해주기 때문에 리시버들은 다른 팀보다 훨씬 편안해졌다.

좋아진 리시브 영향으로 예전보다 2단 공격은 줄어들고 세트플레이는 많아졌다. 새로운 공격옵션으로 장착한 러셀의 중앙후위공격은 타점까지 높다. 그래도 한국전력이 원하는 시즌의 기본 그림은 지난 시즌 444득점, 공격성공률 51.48%를 기록한 박철우와 러셀이 좌우에서 타점 높은 강타로 확실하게 득점을 하는 것이다. 빠르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정확하게 높게만 올려주면 승산은 있다고 본다. 물론 중앙의 속공이 약해 상대팀의 예측은 가능하지만 알고도 못 막는 것이 배구다.

● 박철우의 꾸준함을 닮아야 할 러셀

한국전력 카일 러셀. 사진제공 | 한국전력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한꺼번에 모든 것이 좋아지지 않는다. 아직은 김명관의 연결능력이 정확하지도 꾸준하지도 않다. 세트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느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도깨비 같은 팀”이다. “때로는 엄청난 블로킹으로 다 막아내고 공격도 무시무시한데 어떤 때는 대학 팀보다도 못한 플레이가 나온다”고 했다. 제천·KOVO컵에서 MVP에 올라 퇴출위기에서 벗어난 러셀이 최근 연습경기 때 자신감과 자만심의 경계선에 있는 것도 장병철 감독은 걱정이다.

러셀은 8월 25일 자신의 생일날에 벌어진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짐을 싸서 돌아가야 했다. 그날 한국인 장인은 그를 위해 생일축하 꽃다발과 카드를 제천의 원정숙소로 보냈다. 러셀은 그날 32득점, 70%의 엄청난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는 인생경기를 치른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부진하면 또 위기는 찾아온다.

새롭게 꾸며진 한국전력의 퍼즐은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조직력을 다질 시간은 필요해 보인다. 다만 이제 좋은 방향으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터라 어디를 보완하면 더 좋아질 것인지 예측이 가능한 팀으로 탈바꿈은 했다. 구단의 현명한 투자와 코칭스태프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거듭하면서 팀의 방향성과 콘셉트를 제대로 잡은 결과다.

한국전력은 팀의 숙원사업이었던 새 전용훈련장 건설도 시작하려고 한다. 이런저런 문제로 착공이 지연됐던 오산의 변전소 시설 부지에 남부럽지 않은 전용훈련장을 지을 수 있게 됐다. 훈련장 건설의 첫 삽을 뜨면 안정된 전력과 함께 선수들이 오고 싶어 하는 팀으로 탈바꿈 할 전망이다. 그런 면에서 2020~2021시즌의 한국전력은 힘들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진정한 프로페셔널 팀으로 시작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

●IN&OUT ▲IN=박철우(삼성화재에서 FA영입) 이시몬(OK저축은행에서 FA영입) 러셀(새 외국인선수) ▲OUT=장준호(우리카드로 FA이적) 이호건(삼성화재에 FA보상선수로 이적) 이민욱(군 입대) 구본승(임의탈퇴) 신으뜸 이병준 손주상(이상 자유신분선수)

●예상 스타팅 오더 ④레프트 러셀 ③세터 김명관 ②센터 조근호 ⑤센터 안요한 ⑥라이트 박철우 ①레프트 이시몬 ▲리베로=오재성, 김강녕 ▲웜업존=이승준, 김인혁, 공재학(이상 레프트) 이태호(라이트) 박태환(센터) 이승호(세터) 금태용(리베로)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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