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ience >소리에 따라 BTB용액 색깔 변해..'음파로 화학반응 조절' 입증

노성열 기자 2020. 9. 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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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송재우 기자

- 기초과학硏 김기문 연구팀 ‘네이처 케미스트리’ 게재

화학반응과 유체역학을 접목

소리로 분자 거동제어 첫 성공

스피커 위에 실험용 접시 올려

담겨있는 물에 주는 영향 연구

자연상태서도 소리 활용 가능

동식물 생명활동에 응용 주목

소리(음파)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장면을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한 기발한 연구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에너지가 낮은 소리로 분자의 거동을 제어하는 데 성공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분자 수준의 변화를 초래하는 화학적 반응은 흔히 농도, 온도, 수소이온농도(pH) 또는 빛 등의 변수로 조절해왔다. 아직 획기적인 새 발견은 나오지 않았지만, 화학 연구에 소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참신한 발상으로 기존의 통념을 깨버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연구진은 그동안 전혀 시도된 적이 없는, 소리가 생체 내 화학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계속 파헤칠 계획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김기문(포스텍 화학과 교수) 단장 연구팀은 소리가 물리현상뿐 아니라 화학반응까지 조절할 수 있음을 규명하고, 그 결과를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소리를 화학반응에 접목한 첫 연구로 평가된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 IF 21.687)’ 8월 11일자(한국시간)에 실렸다.

김 단장은 23일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피리 소리로 쥐의 움직임을 통제했듯, 우리 연구진은 소리로 분자의 거동을 조절했다”며 “화학반응과 유체역학을 접목해 발견한 새로운 현상으로, 앞으로 소리를 이용한 다양한 화학반응 조절과 이를 활용한 시스템 화학 등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우선 음파에 의한 유체의 떨림 현상에 착안해 이를 활용한 화학반응 조절 시스템을 찾는 데서 출발했다. 특히 용액과 기체의 접촉면에서 발생하는 기체의 용해 현상을 이용해 산소에 의한 산화·환원 반응이나 이산화탄소에 의한 산·염기 반응을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1831년 마이클 패러데이가 수직 진동하는 접시의 물이 복잡한 패턴을 만드는 현상을 처음 보고한 이후, 물리학자들은 파장에 의한 물의 움직임을 연구해왔다. 반면 물의 움직임이 화학반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연구한 화학자는 드물었다.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나 초음파에 비해 파장이 긴소리는 에너지가 작아 분자의 변화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여서 그동안 화학연구의 대상으로 잘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물의 움직임에만 주목한 기존 연구와 달리, 물의 움직임에 의한 공기의 용해도 변화에 관심을 뒀다. 소리로 물결의 패턴을 제어해 용해도를 조절한다면, 한 용액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발단이 됐다. 게다가 이를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실험을 설계했다. 우선, 연구진은 스피커 위에 페트리접시(둥근 실험용 접시)를 올려둔 뒤, 소리가 접시 안의 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했다. 소리가 만들어낸 미세한 상하 진동으로 인해 접시 안에는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만들어졌다. 동심원 사이의 간격은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좁아졌으며,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다른 패턴을 나타냈다. 소리의 주파수와 그릇의 형태에 따라 나타나는 물결의 패턴을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후 연구진은 지시약(indicator)을 써서 소리가 만들어낸 물결이 화학반응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먼저, 파란색이지만 산소와 반응하면 무색으로 바뀌는 염료(바이올로젠 라디칼)를 접시에 담은 뒤, 스피커 위에 얹은 후 소리를 재생했다. 물결에서 움직이지 않는 마디 부분은 그대로 파란색을 유지한 반면, 주기적인 상하 운동을 했던 마루와 골(가장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은 산소와 반응하며 무색으로 바뀌었다. 공기와 접촉이 활발해 산소가 더 많이 용해되기 때문이다. 이어 산성도(pH)에 따라 색이 변하는 지시약인 BTB 용액을 이용해 같은 실험을 했다. BTB 용액은 염기성(알칼리성)에서는 파란색, 중성에서 녹색, 산성에서 노란색을 띠는 지시약이다. 연구진은 접시에 담긴 파란색 BTB 용액을 스피커 위에 놓고 소리를 들려주며 이산화탄소에 노출시켰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으면 용액이 산성으로 변하는데 소리를 들려주자 용액 속에 파란색, 녹색, 노란색이 구획별로 나뉘어 나타났다. 물결로 인해 기체의 용해도가 부분적으로 달라지며 산성, 중성, 염기성이 공존하는 용액이 만들어진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황일하 연구위원은 “용액의 산성도는 전체적으로 동일하다는 상식을 뒤엎은 흥미로운 결과”라며 “소리로 산화·환원 또는 산·염기 반응을 일으켜 물리적 가림막 없이도 용액 내 화학적 환경을 서로 다르게 구획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평형상태에서 고주파로 화학반응을 조절하려는 연구가 시도된 적은 있지만, 실제 자연과 같은 비평형 상태에서 소리를 이용해 화학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화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데 과학적으로 조금 먼 동네인 유체역학이나 물리적 지식이 필요해 애를 먹었다. 하지만 색깔 패턴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미처 알지 못하던 새로운 물리현상을 발견해 이와 관련된 후속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일부 관찰된 현상의 경우 관련 분야 전문가들도 처음 보는 것이어서 그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있다. 소리는 기체나 액체 등 매질의 움직임을 만들어냄으로써 생물에게 영향을 준다. 식물이나 젖소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 요법’도 음파가 세포벽에 물리적 자극을 줘 광합성, 신진대사를 증진할 것으로 여겨서다. 아직까지 대부분 물로 이뤄진 생체 내에서 소리가 화학적반응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는 연구된 바가 없다. 후속 연구를 통해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복잡하고 신비한 생명 활동의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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