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개 문체의 변주..'문체 연습' 번역했다고?

김슬기 2020. 11. 1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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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룡 교수, 레몽 크노作 번역
20세기 실험 문학의 최고봉
아흔아홉 가지 목소리로 노래 하는 가수를 상상해보자. 반세기 전 프랑스 작가가 이런 몽상을 현실로 구현해냈다. 초현실주의자이자 언어학자, 수학자로 활동했던 레몽 크노(1903~1976)가 극단적 언어실험을 펼친 문제작 '문체 연습'이 조재룡 고려대 불문과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47년 발표된 '문체 연습'은 반쪽짜리도 안 되는 동일한 일화에서 출발한 99개의 문체 변주에 따른 실험 연작이다. 에피소드는 간단하다. 이야기 속 화자가, 목이 길고 희한한 모자를 쓴 웬 젊은이 하나가 만원버스에서 누가 자꾸 자기 발을 밟는다고 항의하는 걸 봤는데, 두 시간 후 로마광장에서 외투 앞섶 단추를 올려달라며 조언을 건네는 친구와 같이 있는 그자를 다시 마주친다는 내용이다. 이 짧은 이야기를 '조심스레' '은유적으로' '싹수가 노랗게' '편파적으로' '일본어 물을 이빠이 먹은' '미쿡 쏴아람임뉘타' 등의 문제로 현란하게 변주한다. 크노는 "문학을 파괴하려는 시도는 전혀 내 의도가 아니었고, 어쨌거나 연습을 해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면서 "그것이 어쩌면 고루하고 여러모로 녹슨 문학에서 문학을 잘라내는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문판은 유명 작가들의 수려한 번역으로 널리 이름난 바버라 라이트가, 세르비아어판은 슬라브어권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다닐로 키슈가, 독일어판은 그의 이름을 딴 상이 있을 정도로 쟁쟁한 번역가이자 문인이었던 오이겐 헬름레가 옮겼다. 세기의 번역가들의 뒤를 이어 험난한 도전에 나선 조재룡 교수는 99가지 아이디어에 대한 주해를 달았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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