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의 지난 삶과 자동차를 함께 만나는 곳 – 아우토&트락토 박물관

“트랙터 박물관?”

트랙터 박물관을 찾는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많고 많은 자동차 박물관을 놔두고 왜 트랙터’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려는 잠시 접어두어도 됩니다. 독일 남부에 자리한 이 박물관은 여러 의미에서 추천할 만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전통 가옥 형태를 하고 있는 아우토 & 트락토 박물관 / 사진=이완


시골 전경이 박물관 앞으로 펼쳐진다 / 사진=이완

정식 명칭은 아우토 & 트락토 박물관 보덴제 (Auto & Traktor Museum Bodensee)로, 2013년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박물관 이름에는 3가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농기구인 트랙터 박물관이라는 것, 그리고 트랙터만 있는 게 아니라 자동차도 있다는 것, 그리고 보덴제라는 곳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덴제(Bodensee)는 콘스탄스 호수(Constance Lake)로도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은 독일어인 보덴제로 부르는 휴양지입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 걸쳐 있는 면적 536km²의 거대한 호수로, 그 주변으로 도시와 마을이 있고, 와인 생산과 함께 다양한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꽃과 호수, 와인과 문화, 역사 유물들로 가득한 보덴제 주변은 또한 레저의 천국이다 / 사진=bodensee.eu

관광지가 아닌지라 단체 관광객이 없으면서도, 보고 즐기고 쉴 곳이 많아 개인적으로 독일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있는데요. 이런 곳에 자동차 박물관이 있다면 휴양과 박물관 탐방을 함께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겠죠? 보덴제 주변으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지역에 있는 박물관들까지 몇 곳을 조사했고, 그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아우토 & 트락토 박물관을 선택했습니다.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에서 각각 자동차로 2시간쯤 달려오면 도착하는 이 박물관은 시골 풍경 물씬 풍기는 울딩엔-뮐호펜(Uhldingen-Mühlhofen)이라는 곳에 2013년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200여 대의 세계 각지에서 온 트랙터와 약 100년에 걸친 독일 시골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소품들로 가득한 곳이죠. 그리고 프리츠 부쉬라는 사람이 만든 자동차 박물관이 이곳과 2016년 합치기로 결정이 났고, 이듬해인 2017년 자동차 & 트랙터 박물관으로 다시 탄생했습니다.

박물관 입구와 그 앞에 세워져 있는 거대 트랙터가 인상적이다 / 사진=이완

작은 시골 마을에 위치해 좁고 불편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넉넉한 주차장과 넓은 앞마당, 그리고 탁 트인 전망이 방문객들에게 한껏 여유를 줍니다. 겉모습만 보면 이곳이 자동차와 트랙터 박물관이 맞나 싶은데요. 입구에 있는 거대한 트랙터가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립니다.

대다수의 자동차 박물관이 주로 맨 위층에서 관람이 시작되는 것과 달리 이곳은 지하로 내려가야 합니다. 좁고 어두컴컴한 그런 곳에 트랙터 몇 대 세워둔 거 아닌가 싶어 조금 걱정도 했지만 막상 들어가니 규모와 전시 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하 트랙터 전시실 들어서면 보게 되는 전시실 풍경들 / 사진=이완


‘트랙터와 시골 생활 100년’이라는 주제로 구성된 지하 전시실은 이곳부터 시작된다 / 사진=이완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독일 등, 곳곳에서 실제 사용되었던 트랙터가 전시된 것은 물론, 생산 연도도 115년 전의 것부터 현대의 것까지 정말 다양했습니다. 그중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1906년 생산된 베르그만(Bergmann)이라는 트랙터였는데요. 벤츠를 만드는 다임러 가게나우 공장 (주로 상용차를 생산하는 곳)에서 테스트용으로 제작된, 독일 최초의 트랙터입니다. 또1925년에 생산된 18마력의 MWM- 모토페어트(Motorpferd, ‘엔진말’이라는 뜻)도 관심이 갔는데 최초로 디젤엔진이 장착된 트랙터였습니다.

베르그만 / 사진=이완


MWM-모토페어트 / 사진=이완


1917년에 만들어진 미국 트랙터 워털루 보이-R(사진 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감비노(1936년형, 사진 아래). 색깔이 화려하다 / 사진=이완

전시된 트랙터 크기와 모양도 다양했고 원색의, 눈에 잘 띄는 강렬한 칼러로 색칠된 트랙터들도 다수 눈에 띄었습니다. 복잡할 거 없는 단순하고 튼튼한 구조 덕에 100년 이상 된 트랙터를 포함, 상당수 보존 상태가 좋았는데요. 농부들에겐 잔고장 없이 오랜 세월 제 역할을 해준 트랙터만큼 고마운 것도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과거 독일 시골 생활을 잘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 사진=이완

그런데 이 지하 공간이 특별한 것은 트랙터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곳에 오면 100년 전부터 이어져 온 독일 농촌, 시골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시골의 작은 학교 교실, 장난감 가게, 대장간, 그리고 거기서 만들어진 다양한 농기구 등이 놀라울 정도로 가득, 촘촘하게 전시돼 있습니다.

시골 병원의 모습, 신발 가게, 또 야생동물 포획을 위한 덫을 판매하는 가게도 생동감 있게 재현돼 있었고, 다리미를 비롯해 옛날 시골에서 사용했던 수많은 생활용품이 빠짐없이 공간을 채웠습니다. 자동차와 트랙터 박물관이라고 하지만 독일 시골 생활을 이처럼 잘 재현해 놓은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는데요. 생활사 박물관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수준이었습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커피와 커피 그라인더 판매점, 야생동물용 덫 판매점, 여러 개의 다리미, 재현된 옛 농가 마당의 모습 / 사진=이완


지하 전시실의 중앙부 모습. 브랜드별로 다양한 트랙터들이 모여 있다 / 사진=이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일의 옛 시골 모습을 감상한 후 1층으로 올라가면 그때부터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의 전시실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3개 층에 걸쳐 약 150대의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전시돼 있고, 구멍가게, 미용실, 잡지판매대, 의류판매점, TV와 라디오를 팔았던 전자제품 판매점 등, 옛 독일 도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습니다. 이처럼 당시 시대 분위기를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아우토 & 트락토 박물관만의 경쟁력이 아닌가 합니다.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둘러볼 수 있는 1층 전경 / 사진=이완


(사진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 옛날 독일 상류층 거실 모습, 구멍가게와 미용실, 그리고 잡지판매대 모습 / 사진=이완

화려한 전시 모델 속에서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 못한 1922년형 시트로엥 타입 C 톨페도가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1919년에 창업한 시트로엥의 거의 초기 모델로, 2인승부터 3인승은 물론 배달을 위한 밴 등으로 변형돼 8만 대 이상이 팔려나갔던 히트 모델입니다. 포드의 대량생산 방식을 적용해 성공적인 판매를 거둔 모델이라 더 의미가 있네요.

기본 뼈대만 남아 있는 시트로엥 타입 C 톨페도 / 사진=이완


란치아 람다 투어러. 4기통 59마력에 최고 속도는 115km/h / 사진=이완

또 녹색의 1927년 란치아 람다 투어러를 이곳에서 보게 돼 반가웠는데요. 이 길~쭉한 차는 상당히 의미 있는 모델입니다. 요즘 자동차 대부분에 적용하고 있는 모노코크바디(섀시와 차체 일체형)가 바로 이 차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또 앞바퀴에 독립된 서스펜션을 처음 적용한 모델이기도 합니다. 1922년부터 1931년까지 11,000대 이상 생산되었고, 전시된 1927년형은 두 번째로 가장 많이 생산(약 3천 대)되었던 일곱 번째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사진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BMW 327, DKW 슈넬라스터, 그리고 슈미트 메르쿠어 / 사진=이완

그 외에도 1층에는 BMW 327과 메르세데스, 그리고 아우디박물관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예쁜 슈넬라스터(잉골슈타트로 옮긴 후 아우디의 첫 번째 생산 모델로 4개 회사 중 DKW에서 생산), 또 앞 쪽에 마련된 박스에 각종 물건을 넣고 달릴 수 있어 상업용으로 인기가 있었던 1928년형 슈미트 메르쿠어(Merkur)와 같은 희귀 모델도 볼 수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이번엔 50년대 주로 생산되었던 마이크로 자동차들을 볼 수 있는데요. 메서슈미트가 만든 못난이 KR200, 1958년형 NSU(아우디에 합병 전)의 프린츠1, 또 유명한 BMW의 이세타와 후속작 BMW 600 외에도 다양한 미니카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1950년대 자동차 캠핑 현장을 재현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왼쪽 상단에서 시계방향) 메서슈미트 KR200, NSU 프린츠 1, BMW 이세타와 600, 다양한 마이크로 자동차들 / 사진=이완


1950년대 캠핑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 / 사진=이완

3층은 다락방 구조라 조금 좁고 답답한 느낌이지만 화려한 자동차들이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한방에 씻어줍니다. 포르쉐의 첫 번째 양산 모델인 356부터 폭스바겐 비틀 (독일어로는 케퍼라 부름), 또 미국 차 분위기가 느껴지는 푸조의 54년형 203 카브리오와 아우디의 한 축이었던 DKW의 64년형 F12 로드스터 등이 분위기를 밝게 해주네요.

3층 전시실은 화사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 사진=이완


푸조 203 카브리오(사진 위)와 DKW F12 로드스터 / 사진=이완

끝으로 출구 바로 앞에는 여러 배우와 귀족 등, 유명인의 사인이 가득한 1972년형 포드 카프리 RS가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카프리는 1968년부터 1986년까지 생산이 되었던 당기 기준으로 중형 쿠페였죠. 미국에서 머스탱이 있었다면 유럽엔 카프리가 있었는데 190만 대나 팔리며 머스탱의 성공을 유럽 등에서 재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돼 있는 카프리 RS는 경주대회용으로 생산된 것입니다.

1972년형 카프리 RS / 사진=이완

이렇게 모두 4개 층으로 된 아우토 & 트락토 박물관은 트랙터와 자동차, 그리고 근대 독일 시골과 도시의 생활을 모두 엿볼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구성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 최대 휴양지라 할 수 있는 보덴제 바로 옆에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데요. 자동차 구경하러 왔다가 휴양지와 독일인들이 과거 생활상까지 둘러보는 일석삼조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표소 옆에 있는 작은 기념품점과 나이 지긋한 직원이 지키고 있는 매표소, 그리고 넉넉한 레스토랑이 허기진 방문객들을 반긴다 / 사진=이완


글/이완(자동차 칼럼니스트)


<아우토&트락토 박물관 기본 정보>

박물관명 : 아우토 & 트락토 박물관 보덴제 (AUTO & TRAKTOR MUSEUM BODENSEE)

브랜드명 : 아우토 & 트락토 박물관

국가명 : 독일

도시명 : 울딩엔-뮐호펜

위치 : Gebhardsweiler 1

88690 Uhldingen-Mühlhofen, Germany

건립일 : 2013년

휴관일 : 무휴(성수기), 비수기(월요일)

이용시간 : 성수기 (5월~10월),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비수기, 오전 10시~오후 5시

입장료 : 성인 11유로, 어린이 (6~15세) 5유로

홈페이지 : autoundtraktor.museum

보덴제 안해 홈페이지 : bodensee.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