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실패한 드래프트와 다저스의 우승

조회수 2020. 12. 1. 07: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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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먼 사장, 데이브 로버츠 감독, 스탠 카스텐 회장(왼쪽부터). 사진 = 게티 이미지 제공

모든 일은 거기서 시작된다. 뉴욕 인근 세카우커스란 소도시다. MLB 네트워크의 스튜디오가 있는 곳이다. 매년 6월이면 대형 이벤트가 열린다. 신인 드래프트다.

2015년의 일이다. 유독 낯선 얼굴들이다. LA 다저스의 테이블이다. '출전 선수'가 싹 바뀐 탓이다. 사장, 단장이 새로왔다. 앤드류 프리드먼과 파한 자이디다. 뿐만 아니다. 드래프트의 실무 책임자도 새 얼굴이다. 유명한 로건 화이트가 보이질 않는다. 대신 파드리스에서 이직한 빌리 개스퍼리노가 그 일을 맡았다.

이들은 시작부터 공격적이다. 밴더빌트 대학의 오른손 에이스를 찍었다. 1라운드, 전체 24번 픽이었다. 두번째인 샌드위치픽(1라운드 전체 35번)도 비슷했다. 역시 우완 투수다. 루이빌 대학 3학년생이다.

데뷔전은 처참했다. 뉴 페이스들의 선택은 완벽한 실패였다. 1순위 지명은 사인하자마자(8월) 드러누웠다. 팔꿈치 수술 때문이다. 계약금만 177만 달러가 지출됐다. 워커 뷸러다.

두번째 픽은 더 문제다. 아예 계약 자체가 틀어졌다. 200만 달러나 제시했는데 외면당했다. 대학으로 돌아가겠다며 없던 얘기가 됐다. 카일 펑크하우저다.


2015년 드래프트 때 다저스 프런트의 핵심들. 개스퍼리노, 자이디, 프리드먼(왼쪽부터). 사진 = 다저스 SNS

2년 내리 비판받았던 드래프트 픽

이듬해, 또다시 6월이 됐다. 절치부심, 와신상담. 다저스 수뇌부와 스카우트 팀은 칼을 갈았다. 재기전 무대다. 1년 전 실수를 만회해야했다. 그런데 결과는 비슷하다. 별로 달라진 게 없다. 1번 픽만 타자였다. 위스콘신 고교 유격수 개빈 럭스다. 상당수는 투수다. 그것도 '흔하디 흔한' 오른손잡이들이다.

까칠한 켄 거닉 기자(mlb.com)가 한마디했다. "다저스는 하나도 안 변했다.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대졸 투수들만 집중 공략했다. 대부분 우완이다. (지명한) 42명 중에 23명이 투수였고, 그 중 20명이 오른손이다." 대졸 유망주에 대한 집착은 시대착오적이다. 빌리 빈 시대의 유산일 뿐이다.

게다가 더 큰 의문도 제기됐다. 무모함이다. 거닉 기자는 일갈했다. "저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지 모르겠다. 이번에 지명된 투수 23명 중에 6명이나 수술 전력을 지녔다.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던 선수들이다." 1년 전이 떠오른다. 1번 픽이 수술대에 누웠다. 반복된 시행착오를 우려하는 촌철살인이다.

스카우트 책임자(개스퍼리노)의 반론이 등장한다. "(일부러 리스크를 감수하는) 특별한 방침은 없다. 그런 전략은 있을 리 없다. 우린 그냥 장래성 있는 선수들을 선택할 뿐이다. 수술해도, 1년 뒤에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그래서 강한 공을 던지면 된다. 최우선적인 기준은 명확하다. 좋은 자질을 가졌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상황, 팀의 전력 균형 같은 것들보다 우선한다."


2020 mlb 드래프트는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어떻게 뽑고, 어떻게 키워야하는가

앤드류 프리드먼은 유능한 GM(단장)이다. 트레이드 솜씨가 현란하다. 덕분에 한국에서 별명도 얻었다. 프기꾼이다. 탬파베이 레이스가 빠른 시간에 성장한 동력이었다.

반면 신통치 못한 구석도 있다. 드래프트다. 성공작을 찾기 어렵다. 가장 비판받는 지점이다. 그래서 주목받은 게 2015~2016년이다. 사장으로 승진, LA로 이직한 뒤 초반 작품이다. 반복하지만, 다저스는 사장ㆍ단장ㆍ(국내) 스카우트 책임자가 모두 바뀐 시점이었다.

당시만해도 비난이 쏟아졌다. 왜 아니겠나. 1번 픽은 병원 신세, 이듬 해도 신통할 게 없다. 2년 내리 망친 농사다. 다저스 팜에는 냉랭한 한기가 돌았다. 근근이 버티는 중이다. 어쨌든 가을 야구는 계속했기 때문이다. 물론 팬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갈증은 더 심해졌다.

하지만 결국 염원을 이뤘다. 단축시즌이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32년만에 월드시리즈(WS) 챔피언에 등극했다. 덕분에 몇 가지가 사라졌다. 돌버츠, 가을 커쇼 같은 말들이다.

그들의 우승은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시사하는 바도 크다. 그 중 하나가 '육성'이라는 측면이다. 어떻게 뽑고, 키워야 하는가. 우승에 대한 비전과 장기적 전력 유지는 상충하는 가치다.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실현시키는가. 그런 지점에서 명확한 성공 사례가 분명하다.


뷸러, 메이, 곤솔린, 스미스(왼쪽부터)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WS 로스터 중 5명이 2015 ~16년 드래프트 멤버

이번 월드시리즈 로스터는 28명이다. 그 중 5명이 눈에 띈다. 워커 뷸러, 더스틴 메이, 토니 곤솔린(이상 우완투수), 윌 스미스(포수), 맷 비티(유틸리티). 바로 2015~16년 드래프트 출신들이다. 프리드먼의 취임 이후다. 구단의 핵심 프런트 라인이 교체된 뒤였다. 당시는 비판받던 선택들이다. 하지만 결국 우승의 동력이 됐다.

믿는 바를 실천해낸 덕이다. 워커 뷸러의 예가 그렇다. 드래프트 당시 소문은 파다했다. 팔꿈치가 멀쩡하지 않다는 수군거림이다. 때문에 앞선 픽들이 꺼렸다. 하지만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수술 뒤 회복에 대해 확신했다. 물론 전제는 엄중했다. 치밀하고 엄격한 사후 관리였다.


2020 월드시리즈 28인 로스터. 이미지 출처 = mlb.com


유망주들은 목숨처럼 지켜낸다

또 한가지 요소가 있다. 유망주들을 목숨처럼 지켰다는 사실이다.

작년 5월이었다. 저명한 기자 존 헤이먼(mlb 네트워크)이 사과문을 올렸다. 몇 개월 전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러니까 2018년 시즌 직후다. 다저스가 J.T. 리얼무토의 영입에 심혈을 기울일 때다. 헤이먼 기자는 이런 견해를 밝혔다. '다저스 외야는 포화 상태다. 벨린저를 내보내고 리얼무토를 데려오는 게 효율적이다.'

그러나 다저스는 꿈쩍도 않았다. 벨린저는 이듬해 폭발했다. 5월이 되자 헤이먼은 곧바로 태세 전환했다. 트윗에 올린 반성문이다. '다저스 구단에 사과한다. 내 말을 듣지 않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벨린저는 결국 그 해 내셔널리그 MVP에 선정됐다.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어디 벨린저 뿐이겠나. 뷸러, 훌리오 유리아스, 코리 시거 등은 트레이드 시장의 단골 메뉴다. 수많은 유혹이 있었다. 그래도 꿋꿋이 버텼다. 때문에 트레이드는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나 결국은 이들이 전력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덕분에 다저스는 늘 팜 랭킹의 상위권을 유지한다. 현재도 3위를 지키고 있다.

팜 출신들은 예산 소모가 적다. 구단에 재정적 여력을 제공한다. 덕분에 무키 베츠 같은 승부수도 가능해진다.

소신으로 뽑는다. 철저히 관리하고, 육성한다. 굳건히 지킨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게 바로 지속적인 전력 유지의 요인이다.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만든 비결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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