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면서 사로잡지 못하면 끝.. 그러다 보니 서론에 힘을 너무 주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2020. 12. 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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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 '기승전결'이 사라진다
BTS. /연합뉴스

올해 가장 뜨거웠던 노래인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커즈 아-아-아임 인더 스타즈 투나잇!’ 번역하면 ‘난 오늘밤 별들과 있으니까’란 뜻이다. 이 노래의 가장 핵심적인 멜로디다. 이처럼 후렴에 나올 하이라이트를 일단 외치고 시작하는 노래가 요즘엔 많다.

기승전결(起承轉結)은 글이나 음악의 이상적인 구조로 오랫동안 여겨져 왔다. 잔잔하게 시작해 이야기를 끌어올렸다 한번 ‘꺾기’를 해주고 마무리를 해야 독자가 끝까지 몰입한다는 것이다. 엄정화의 ‘포이즌’,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 같은 1990년대 대표 히트곡들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잔잔하게 시작해 후렴 겸 하이라이트를 향해 긴장을 끌어올리다 숨을 고르며 마무리를 하는 구조가 많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승전결’의 절대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너무나 빠른 세상, 점점 바빠지는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참을성이 적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작품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간 독자나 청중이 바로 ‘다른 재미’를 찾아 떠나 버린다. 영화나 드라마도 최근엔 클라이맥스에 나올 법한 화끈한 액션을 맨 앞에 넣는 게 대세가 되었다.

1990년대 vs 2020년 대표 노래 스타일

이런 흐름은 심지어 학술 논문의 구조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경제학 논문은 여느 분야처럼 서론-본론-결론 구조를 갖추고 있다. 20여년 전만 해도 서론은 운을 띄우는 성격이 컸다. ‘중요한 문제가 ○○이고, 이 논문은 그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정도를 맨 앞에 언급하고, 논문의 주요 주장은 결론 등에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점점 서론에다가 모든 것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요즘 웬만한 경제학 논문은 서론만 읽으면 주장 뿐 아니라 분석 방법 등 논문의 주요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있다.

‘서론에 힘주기’ 전략의 부작용도 있다. 서론이 지나치게 길어졌다. 예전엔 머릿말이 한두 쪽을 안 넘어갔다. 요즘은 5~6쪽짜리 서론도 흔하고, 그러다 보니 논문 전체가 길어지고 있다. 데이비드 카드와 스테파노 델라비냐가 1970~2012년 기간 동안 경제학 분야 세계 5대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의 평균 길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70년대만 해도 평균 15쪽 수준이던 것이 2012년에는 45쪽으로 거의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긴 서론’은 논문을 길게 만든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심지어 ‘논문이 길어서 서론밖에 못 읽겠다’는 이들이 늘어난다. 이건 거의 악순환이다.

‘유튜브 갑부’가 쏟아지는 디지털 세상에선 ‘클릭수’가 곧 돈이다. 그러려면 남들보다 먼저 주목을 받아야 한다. ‘눈’을 사로잡으려는 경쟁은 오랜 기간 아름다움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기승전결’이나 서론-본론-결론이라는 논문의 기본 틀도 바꿔놓고 있다. ‘기-승-전-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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