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첫 볼넷 배트 플립
피곤한 날이다. 하루 전(10일) 힘든 근무 탓이다. 거의 4시간을 꽉 채웠다. 11회까지 연장 근무였다. 정리하고, 씻고. 퇴근 시간은 자정이 가까웠다. 그나마 이겨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파김치 담글 뻔했다.
다음 날이 문제다. 이럴 땐 시작이 조심스럽다. 정신줄 꽉 잡아야한다. 잘못하면 낭패다. '어~, 어~' 하는 새 그르치기 십상이다. 그런 초반이다. 묘한 일이 생겼다.
홈 팀의 1회 공격이다. 첫 타자 이창진은 볼넷이다. 1루로 나가는 찰나. 아차, 장갑에 끈끈이가 너무 많다. 휘리릭~. 뜻하지 않게 포수(이지영)가 봉변을 당했다. 배트가 머리로 날아온 것이다.
뭐지? 도발인가. 아니면 이것도 배트 플립? 하긴. KBO 리그 아닌가. 퍼포먼스의 왕국이다. MLB 따위는 감히 엄두도 못낸다. 다양함과 화려함의 궁극이다. 어쩌면 야구사를 수놓을 첫 사건일 지 모른다. 4구 다음의 배트 플립이라면 말이다.찰나의 혼란이 스친다. 그러나 가해자의 표정이 말한다. 당황스러움이다. 두 손을 젓는다. 미안함도 엿보인다. 구심(이용혁)이 사태에 개입한다. 적극적으로 둘 사이를 막아선다. 대치 상태는 곧 종식됐다.
하지만 이건 예고에 불과했다. 악몽의 1회 말이다. 원정 팀 배터리는 계속된 패닉에 시달려야했다.

나비가 날자, 꽃이 피었다
혼란은 수습됐다. 그리고 공습이 시작됐다.
어수선한 4구 다음이다. 2번이 폭발했다. 프레스턴 터커다. 강렬한 타구를 우중간으로 뺐다. 그 사이 배트 플립의 주인공은 3루를 돌았다. 홈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이지영은 어쩔 수 없이 비켜줘야했다. 선취점이다.
3번 타순은 의외로 쉬웠다. 최형우가 삼진으로 돌아섰다. 투수(이승호)는 한숨 돌렸다. 그러나 잠시 뿐이다. 더 거센 몰아침이 다가오는 중이다.
이번엔 나비가 날았다. 4번 나지완 차례다. 뜻밖의 간결한 스윙이다. 타구는 나비의 날개짓 같았다. 팔랑거리며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날았다. 2루의 터커를 부르기 충분한 적시타다.
나비가 날자, 꽃이 핀다. 다음은 5번 황대인이다. 홈 팀이 준비한 회심의 카드다.
1사 1루, 카운트 1-1이다. 3구째 126㎞짜리 슬라이더였다. 실투는 아니다. 바깥쪽 보더라인에 걸친 괜찮은 커맨드다. 흠이 있다면 높이였다. 벨트 라인 약간 아래였다. 묵직한 스윙이 출발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공을 거꾸로 걷어올렸다.
방향은 우중간이다. 웬만한 힘으로는 넘볼 수 없는 펜스다. 하지만 29도의 발사각은 120m를 날았다. 엄청난 파워가 느껴지는 투런포다. 그걸로 스코어는 4-0이다. 사실상 이 경기의 향방을 결정짓는 한 방이었다.

꽃범호의 후계자, 꽃대인
하나가 아니다. 두번째도 있다. 이번에는 기막힌 기술의 결정체다.
6-3으로 쫓기던 5회였다. 카운트 2-2에서 6구째다. 임규빈의 승부구는 스플리터다. 131㎞짜리가 제법 예리했다. 몸쪽으로 파고들어오는 역회전 코스다. 쳐봐야 별 볼 일 없다. 인플레이 타구 만들기 어려운 각도다. 파울, 아니면 기껏 내야에 플라이 정도다.
그런데 짧고 간결한 반응이다. 스윙이 모두 펴지지도 않았다. 배트에 감긴 타구는 뜻밖의 거리를 날았다. 좌측 펜스 너머 홈 팀의 불펜에 떨어졌다. 발사각은 1회 때와 똑같은 29도짜리다.
타이거즈 팬들은 환호했다. 좌투수용 버전인데, 우투수에게도 쳤다. 그러니 반가움도 더했으리라. 게다가 가장 어려운 몸쪽 아닌가. 얼핏 박병호와 박석민의 모습도 보인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찬사는 따로있다. 바로 눈부신 자태에 대한 반응들이다. 꽃범호 은퇴 후 상당수 팬들은 외모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취향 저격의 대상이 등장한 것이다.
썸네일부터 화제다. 요염한 뒤태. 설현을 연상하는 팬들이 환호한다. 이범호의 후계자는 이제 그의 차지다. 영예로운 꽃대인의 칭호까지 얻었다. 두 번의 베이스 일주,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충격적이다. 이날따라 하필이면 핑크빛 유니폼이다. 팬들의 설렘은 이미 절정에 달했다.

연승의 바탕, 두 번의 인사 발령
타이거즈는 7월 초가 별로였다. 일주일전(5일) 다이노스 게임 역전패의 후유증도 컸다. 이후 주중 3연전(kt 위즈)도 루징 시리즈였다. 때문이 이번 주말도 걱정이 많았다. 히어로즈가 부담스럽기도 했다(상대전적 2승 4패).
그런데 벌써 기대 이상이다. 일단 2승을 선점했다(최근 3연승). 이건 물론 여러 요인의 복합이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시기 적절한 인사 정책이다. 포인트에 맞는 선수 기용 말이다.
첫 날(10일, 금요일) 연장 11회다. 1사 1, 2루에서 대타를 투입했다. 뜻밖에도 최원준이었다. 그리고 끝내기 안타를 얻어냈다.
"대주자로 나갈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타석에 나가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도 그럴 수 밖에. 6월 한 달 내내 5타석, 7월에 고작 2타석이 전부였다. "내가 이 팀에 필요한 선수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리고 이튿날의 1루수 캐스팅이다. 상대 좌완 선발에 황대인 카드는 상식적이다. 문제는 타순이다. 설마 5번까지? 그런 승진 인사는 예상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날 승부는 그 타순에서 결정됐다.
꽃 피는 시기를 알아내는 것. 어쩌면 그게 인사권자의 예지력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