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경찰이 잡는다..'한국판 FBI' 초유의 실험
[편집자주] 간첩수사로 대변되는 대공수사가 국정원에서 경찰로 이관된다. 당정청은 이같은 방안을 확정하고 지난 4일 여당이 관련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 개정을 거쳐 이관이 이뤄지면 미국처럼 대외정보(CIA), 대공수사(FBI)가 분리돼, 경찰이 한국판 FBI로 거듭나게 된다. 한편에선 경찰의 해외 정보 네트워크 및 전문성 부족 등으로 대공수사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 안보가 걸린 대공수사에 새 전기가 될 '한국판 FBI' 성공의 길을 조명해본다.

경찰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60여년 만에 대공수사권을 되찾아온다. 과거 대공수사는 대한민국 정부 출범과 함께 경찰이 독점하고 있었지만 여러 정치적 이유가 개입되면서 1961년 대부분의 대공수사 인력이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로 넘어갔다.
문재인 정부는 대공수사권을 공개수사기관인 경찰로 이관해 수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권한 남용이나 인권침해 소지를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4일 여당은 대공수사권을 3개월 이내에 다른 수사기관에 인계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양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 대선공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가수사본부에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은 경찰은 한국형 FBI(미국 연방수사국) 모습을 갖춘다. 미국처럼 대외정보와 수사를 분리하는 형태다. 미국의 경우에도 CIA(중앙정보국)는 대외정보 수집만 하고 수사권을 갖지 않는다. 국내 활동 자체가 금지돼있다. 수사권은 FBI에 있다.
◇'안보수사본부' 출범 준비…경찰, 내부 통제·견제 체계 마련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향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에 맞춰 경찰청 내 보안국은 '안보수사본부'(가칭)로 개편될 예정이다. 경찰청 안에서 수사를 맡는 국가수사본부와 대공수사 등을 맡은 안보수사본부가 공존하는 셈이다. 현재 경찰 내 보안국 소속 경찰은 2000여명이다.
경찰청은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비해 지난 3월 보안국의 하부조직을 개편했다. 효율적 인력운영과 보안경찰 전문성 강화를 위해 유사부서를 통폐합했다. 보안 1·2·3·4과였던 명칭도 명확하게 역할이 드러나도록 △보안기획과 △보안관리과 △보안수사과 △보안사이버과로 바꿨다.
보안수사과는 직접 수사에 전담할 수 있도록 자체 정보 분석기능을 폐지했다. 대신 비슷한 업무를 하는 보안관리과와 보안사이버과에 분석 기능이 강화됐다. 또 보안경찰 발전방안 마련을 위한 보안발전계를 신설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첩보분석과 검증 기능 강화, 보안첩보에 대한 이중필터링 체계 구축 등으로 내부통제를 강화했다"며 "견제와 균형의 관점에서 업무를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남파 간첩 수사' 한계있지만…"수사력은 점차 쌓일 것, 정보기관 탈정치화에 초점"

경찰은 지난해 169건의 안보범죄를 수사해 156건(657명)을 검거했다. 검거 인원 중 대공수사권과 관계가 깊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9건(12명)이다.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검거 실적은 경찰이 국정원보다 더 많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약 70%를 경찰이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검거는 찬양·고무죄(제7조)에 집중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 안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북한 직파간첩과 지하당 사건 수사 등은 국정원이 우위다. 이 때문에 "경찰에게 간첩을 몇 명이나 잡았냐고 물어보라"며 대공수사권 이관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공수사는 국정원과 경찰이 공조해 진행하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국정원의 수사권이 완전히 경찰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공수사권 이관을 수사력보다는 국정원의 탈권력·탈정치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자의든 타의든 국정원 수장이 바뀔 때마다 당시 정권의 핵심인물이 보직을 맡으면서 정치적으로 치중된 활동을 하게 된 경우가 있었다"며 "단기적으로는 대공수사력이 약화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보기관이 객관화되고 전문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수사력도 시간이 지나면서 쌓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국정원은 지금까지 상당한 시간을 들여 대공 수사 능력을 갖춰온 것이기 때문에 경찰에게도 인력과 예산, 시간을 줘야한다"며 "경찰도 보안 업무를 해 온 만큼 정부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전수사 역량은 충분히 쌓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공(對共) 수사권의 경찰 이관에 대해 검찰과 과거 국정원 출신 인사들은 수사력 악화를 우려한다. 다른 수사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찰의 해외 정보 네트워크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15일 대공 수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국내에서 진행되는 대공 수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 해외에서 이뤄진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한 공안 검사 출신 변호사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간첩을 잡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해외에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간첩이 제3국을 경유하거나 거점을 제3국에 두기 때문에 해외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국내 정보원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주로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는 해외 정보원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해 국내 활동 간첩을 검거하는 게 최근 대공 수사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에서 정보원을 만나 수사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선 그 나라와 외교적인 부분에서 먼저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정원과 대검 공안부의 경우 대표 수사기관 자격으로 오랜 기간 외국 수사기관들과 소통해 왔지만 경찰은 어떨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국정원 출신 한 변호사도 "해외 정보 수집 없이 대공 수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국정원에서도 해외 공작원들이 제3국에서 간첩 의심자들을 감시하는 등 첩보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현재 200여 개의 해외 공작 거점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정원 해외 공작원들이 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간첩 검거는 단순히 제보 하나 받아서 한명 검거하는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수많은 정보원들로부터 첩보를 입수해 그것을 정보로 만든 뒤 수사해야 간첩 한명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이적물 관련 수사 정도만 진행해 온 경찰이 하루아침에 간첩을 잡을 수는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우려에 경찰 수사 관계자는 "경찰의 해외 네트워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뒤 인력과 시스템을 보완해 나가다 보면 빠르게 부족함 없이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찰이 현재 보유 중인 해외 정보 네트워크가 거의 없다시피해 수사권을 넘겨받는다고 해서 갑작스레 없던 네트워크가 구축되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경찰의 해외 네트워크 부족 문제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다. 대공 수사 뿐 아니라 마약 수사 등 최근 글로벌 범죄가 늘어나면서 더 이상 국내에서만 수사해선 범죄자들을 검거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경찰 외사 파트 경찰관이 해외에 파견되지만 주로 재외국민 보호와 국제범죄 공조를 담당해, 특히 대공수사 관련 정보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경찰이 역량을 갖출 때까지 일정 부분 대공 수사의 공백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국정원 파견 검사 출신 변호사는 "해외 정보망 부족 문제가 두드러질 때마다 경찰이 내미는 카드는 각 대사관에 파견된 경찰 영사인데, 이들은 수사 업무와 전혀 무관하다"면서 "경찰 영사를 통해 해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이 대외안보정보원(현 국정원)과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만들어 제대로 정보 교류가 이뤄지느냐가 단기적으로는 대공수사 이관의 성패를 가를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검 공안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공 수사 관련 정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강력한 유대관계를 기초로 하는 휴민트(HUMINT)를 통해 대부분 얻는다"면서 "정보원이 정보를 주면서 그 정보가 다른 기관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걸 안다면 내밀한 정보는 절대로 주고받을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지금 경찰이 대공 수사를 담당하겠다고 하는데 제일 걱정되는 것이 바로 이 휴민트 생성 문제"라면서 "유대감은 하루아침에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대공 수사 업무를 경찰이 하게 된다면 새로운 정보원과 새롭게 유대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수사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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