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⑨ 프랑스 화가가 만들어낸 나치 경례법 : 나치 '군대식 경례'는 20세기 초 민주국가인 미국서도 유행
나치와 무관했지만 모양은 똑같아
2차 대전 발발하며 미국서 사라져
서구인들은 로마식 경례법으로 착각
실은 佛 화가 다비드 작품서 첫 등장
있지도 않던 전통.. 역사의 아이러니

사진 속 단 한 사람만이 그 경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냥 경례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예 팔짱을 끼고 적극적인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1991년 독일의 ‘디 차이트’ 신문이 찾아내 공개한 이 사진은 큰 화제가 되었다. 당시의 기록과 인물들의 사진을 비교한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사람은 아우구스트 란트메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얼굴만 닮은 게 아니라 당시 그가 겪고 있던 일을 생각하면 나치에 적극적으로 반대했을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란트메서는 사진 속 행사가 있기 5년 전인 1931년, 취업의 기회를 얻기 위해 나치당에 가입했다. 그런데 1935년 이르마 에클러라는 유대계 여성과 약혼을 했다는 이유로 당에서 쫓겨났다. 그는 개의치 않고 이르마와 결혼했지만 나치가 만든 ‘독일 혈통 보호법’에 따라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다. 곧 첫 아이가 태어났지만, 그들은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때가 사진 속 진수식이 열린 시점이다. 그가 팔짱을 끼고 경례를 거부한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이 경례법을 제안한 건 벨러미가 아니라, 청소년 잡지의 편집장 제임스 업햄이었는데, 업햄은 팔을 들어 올리면서 두 발의 뒤축을 큰 소리가 나게 붙이는 동작도 포함했다. 우리가 영화에서나 보는 나치 경례법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미국에서는 벨러미의 국기에 대한 맹세와 이 경례법이 함께 퍼져나갔고, 전국 학교의 학생들이 이를 따라 했다. 이는 이 경례법이 나치나 미국 등 특정 국가나 세력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당시에 유행하던 방식이었음을 보여준다. 벨러미가 쓴 글에 학생들이 “군대식 경례”를 하자고 한 것으로 보아 이런 경례법은 전체주의 국가는 물론, 미국에서도 군사문화가 일반에 확산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역사적 오류가 존재한다. 고대 로마가 남긴 예술작품과 기록 어디에도 손을 뻗어 경례했다는 얘기는 없기 때문이다. 황제가 오른손을 높이 드는 제스처를 하는 모습은 동상 등에서 볼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권력자가 군중에게 화답하는 권위의 상징이지 군중이 권력자에게 하는 경례와는 거리가 멀다.
학자들은 19세기 유럽인들이 이 경례법을 로마의 것으로 착각하게 된 근원을 신고전주의 회화, 특히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작품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5)에 등장하는 장면에서 찾는다. 로마 공화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는 삼 형제의 신화를 그린 이 작품은 애국심과 남성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전체주의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림 속에서 삼 형제는 아버지가 들고 있는 칼 앞에 맹세하는데, 이는 훗날 국기에 대한 맹세를 만들어낸 독일과 미국 모두에 하나의 모범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에서 이 경례법을 사용한 다비드는 1791년에 그린 프랑스 혁명 기념작 ‘테니스 코트에서의 맹세’에도, 나폴레옹 황제를 그린 ‘독수리기의 분배’(1810)에서도 같은 동작의 경례를 사용했다. 당시 유럽회화의 최고봉이었던 프랑스, 그리고 그 나라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역사 화가였던 다비드의 작품에서 이렇게 꾸준히 사용되었으니 이 경례법이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은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나치의 상징처럼 기억되는 경례법이 결국 프랑스 화가가 만들어냈다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지지만, 존재하지도 않던 전통이 만들어지고 수백 년 전부터 이어진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특히 근대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함부르크의 조선소에서 나치 경례를 거부했던 란트메서는 이듬해 아내와 함께 독일을 탈출하려다 실패한 후 감옥에 갇혔고, 죄수들로 이루어진 부대에 배치되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유대인이었던 아내는 결국 붙잡혀 강제수용소에서 다른 많은 유대인과 함께 살해당했고, 둘 사이에 태어난 두 아이는 고아가 되어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되었다.
박상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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