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애인 등 '친밀한 관계' 내 폭력에 위협받는 여성들

조회수 2020. 9. 17. 1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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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정도는 통계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정폭력 피해가 늘고 있다 (자료 사진)

‘헤어지자고 해서’, ‘좋아해서’, ‘밥을 달라는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아서’, ‘짜증을 내서...'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을 상대로 폭력을 가하거나 살해한 가해자들이 범행의 이유로 든 말이다.

최선혜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17일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친밀한 관계는 어떻게 폭력을 지우는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이런 "사소한 이유"로 여성들이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여성들이 친밀한 관계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통제'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9년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8명, 살인 미수 피해 여성은 최소 108명으로 나타났다.

또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8년 총 살인범죄 건수 849건 중 7.8%가 연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는 가정폭력을 포함해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이 있다.

공통적으로 피해자가 적극적인 신고나 도움 요청을 하기 어렵고, 신고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사소하거나 개인적인 사건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2019년 가정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배우자로부터 신체적, 성적, 경제적, 정서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 중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단 2.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효정 부연구위원은 "실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정도는 통계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계속 늘어나는 '친밀한 관계'에 의한 범죄 또는 폭력에 비해 이에 대한 처벌 기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1998년부터 가정폭력처벌법이 시행됐지만, 가정구성원을 법률상 혼인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으로 국한하여 정의하고 있다. 사실혼 관계를 포함하고 있으나, 사실혼의 정의가 폭넓은 만큼 이를 증명해내기가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은구 경찰청 가정폭력대책계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실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사실혼' 여부를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다.

법적 가족이 아닌 동거를 하는 사람이 가해자일 경우에도 격리나 접근금지 명령을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또 "실제 나중에 사실혼 관계가 증명이 안 돼 접근금지 조치가 기각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사실혼 판단 가이드라인에는 ‘3년 이상 동거' ‘가해자와 자녀 출산' ‘제사 등 집안 행사 참여'와 ‘생활비 공동사용’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같은 경우, 피해자 보호를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전통적인 혼인 관계에 부합하는 관계를 맺었는지를 따져보는 구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계장은 “가정폭력처벌법에 사실혼 개념을 별도로 규정하거나 동거 관계를 포함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있어야 “현장에서도 그에 따른 대응이 잘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데이트 폭력

비동거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의 경우도 관련 처벌기준이 미비하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우리 법에 데이트 폭력에 대한 개념, 대상, 유형, 피해 등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동거 관계에 있지 않았던 연인 또는 헤어진 연인에 의한 폭력 범죄는 가정폭력 특례법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으로 분류돼 처리되는 실정이다.

전 입법조사관은 현재로서는 가해자가 폭행, 주거진입, 강간, 살인 등 형법상 범죄를 저질러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스토킹 범죄

스토킹 범죄는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전조증상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초기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인 대응과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직 한국에 스토킹 관련 처벌법은 없다

한민경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2019년 발표한 ‘스토킹 피해현황과 안전대책의 방향’을 보면, 성폭력 범죄 피해가 발생할 위험은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 약 1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수정 교수 또한 BBC 코리아 인터뷰에서 ‘스토킹 방지법’은 강력범죄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법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토킹이라는 죄명은 없고, 폭력이나 폭행, 상해가 있어야만 비로소 처벌되니까 스토킹을 당하는 기간은 참고 있어야 한다”며 “실제로 다치거나 하면 그때 가서 전화하라는 식"이라고 현실을 짚었다.

스토킹 범죄 처벌 법안은 1999년 15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뒤 계류와 폐기를 반복해 왔다.

2018년 법무부에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각 정부 부처와 여성단체의 이견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발의조차 되지 못한 상황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지금까지 5개의 스토킹 범죄 처벌 관련안이 발의된 상태다.

현재 경범죄처벌법에 포함된 ‘지속적 괴롭힘’ 조항으로 스토킹을 처벌할 수는 있다. 하지만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만을 규정하고 있어, 스토킹을 '중범죄'로 인식하고 처벌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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