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마음잇기? 농인 눈엔 "너 전화해!"..챌린지용 수어들 알고 보니
[경향신문]

양손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새끼손가락끼리 맞댄다. ‘덕분에’ 챌린지에 이어 ‘전화로 마음잇기’ 챌린지가 등장했다. 추석 연휴가 코로나19 확산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며 고향에 내려가기보다 전화로 안부를 묻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농인단체들은 이 손동작이 “올바른 수어가 아니다”라며 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어민들레’는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에서 “덕분에 챌린지 등 수어를 활용해 긍정적인 영향력을 심어주고자 한 기획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올바른 수어를 사용했을 경우에만 국한된다”며 “‘전화로 마음잇기’에서 표현한 수어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 기관에서는 챌린지를 통해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가족과 잇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지만, 농인 입장에서는 ‘너 전화해!’처럼 명령조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수어민들레는 “올바른 수어가 무엇인지 농인들에게 의견을 수렴한 뒤 챌린지의 수어 단어를 바꿀 것을 요구한다”며 새로운 수어를 제안했다. 농인 일러스트레이터가 새로 만든 챌린지 포스터를 보면 서로 다른 사람의 손이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편 채로 마주보고 있다. 단체는 “상대방과 내가 서로 전화기를 들고 있는 수어”라며 “‘나부터 실천해요’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할머니가 ‘전화하다’ 수어를 쓸 때 할아버지가 뒤에서 살짝 엿듣는 듯한 모양의 포스터도 그렸다. 단체는 “명절에 전화할 때 자식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것으로 정겨운 분위기를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수어민들레는 농인의 언어인 ‘한국 수어’를 존중해달라고도 했다.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화언어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농인과 한국수화언어 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그럼에도 청인 중심 사회에선 여전히 한국 수어를 ‘이등언어’나 ‘수준이 낮은 언어’로 취급한다. 최근 벌어진 의사파업에서는 덕분에 챌린지에 사용된 수어를 비틀어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이 밖에도 한국 수어가 청인에 의해 왜곡되거나 희화화 대상이 된 경우가 수 차례 있었다. ‘산(山)’을 표현하는 수어라며 가운뎃손가락만을 치켜드는 게 대표적이다. 2012년 종영된 KBS 예능 프로그램 <스펀지>에 소개된 후 해당 방송 장면은 인터넷에서 비속어를 쓰는 용도로 사용됐다. ▶관련기사 : 우리가 무심코 비튼 '수어'…농인에겐 또다른 차별
수어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사실’로 굳어져버릴 때 농인들은 수어가 청인들에 의해 훼손될까 우려한다. 수어민들레도 “한 국가에서 같은 국민으로 공존하는 이상 농인의 언어인 수어를 활용하기 전에 농인의 입장을 고려해 달라”고 밝혔다. 장애인 인권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도 지난 15일 논평에서 “코로나19 브리핑 수어통역 이후 수어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졌지만 이벤트로 사용되는 수어들이 원래 뜻과 다르게 쓰이고 있다. 일부는 청인들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이어 “유희를 목적으로, 깜짝 이벤트를 위해 청인들이 작위적으로 만드는 손모양은 수어를 왜곡시킬 우려도 있다”며 “수어를 사용할 경우 농인들이 쓰는 용어를 우선 발굴하고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백상현 인천시 소통기획담당관은 23일 통화에서 “전화로 마음잇기 챌린지는 수어를 차용한 게 아니다”라며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전화 모양의 손동작을 사용했다. ‘마음’을 상징하기 위해 새끼손가락을 겹쳤다”고 말했다. 백 담당관은 “농인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 챌린지 진행 전 인천광역시농아인협회 부설 수어통역센터에 자문을 구했고 ‘사용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에서 명령을 의미하는 수어를 확인해보니 챌린지에 사용된 손동작과 달랐다”고 했다. 인천시는 “챌린지가 본 의도와 무관하게 일부 농인 여러분께 염려를 드린 점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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