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수어 통역사'가 알려주는 코로나19 브리핑 뒷이야기

조회수 2020. 9. 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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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통역사'가 바라본 코로나19와 한국 사회는 어떠할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브리핑 현장. 이곳에는 정부 관계자 만큼이나 이목이 쏠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옆에서 브리핑 내용을 수어로 전하는 수어 통역사들이다. 이들은 35만 명 농인들의 귀가 되어 중요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다.

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코로나19 상황과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정부 브리핑 통역사인 신환희 통역사를 통해 알아봤다.

브리핑 수어 통역 현장...'외줄 타고 내려온 기분'

"짧은 시간 진행되지만, 브리핑 통역은 에너지 소모가 굉장히 많은 편이에요"

올해로 12년 차지만, 신 통역사는 '쉬운 수어 통역'은 없다고 했다. 어떤 통역이든 대상과 상황에 대해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도 코로나19 브리핑은 부담감이 상당한 편이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이름 같은 의학 용어와 '코호트 격리' 등 행정용어까지 다방면에 걸친 내용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매일 달라지는 상황 탓에 수어 통역사들은 늘 뉴스를 달고 산다. 신 통역사는 일상의 많은 부분이 코로나19 브리핑 통역 준비로 채워져 있다고 했다.

"브리퍼(브리핑을 하는 사람)의 억양, 말 빠르기나 화법이 귀에 익숙해지도록 종전 브리핑도 참고해 듣는 시간을 가져요. 더 나은 통역을 하기 위해 그 주에 했던 통역 영상을 보고 농인들에게서 피드백을 받고 다음 통역을 준비해요"

통역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준비는 멈추지 않는다.

음성언어 통역사가 목을 가다듬는다면, 수어 통역사는 이른바 '손을 풀며' 준비를 한다.

신 통역사는 "수화할 때 사용하는 손가락과 어깨 팔 등이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숫자와 단어도 써 본다"고 했다.

그가 브리핑룸에 꼭 챙겨가는 준비물도 있다.

기사 내용이나 통역 자료를 보기 위해 우선 스마트 기기를 챙긴다. 핸드크림과 손세정제도 잊지 않는다. 수어를 하면 손으로 입과 얼굴을 만지게 되므로 꼭 필요하다고 했다. 표정이 중요한 수어의 특징상 통역할 때는 마스크를 끼지 않지만, 앞에 서는 시간 외에는 마스크를 꼭 착용한다.

수어 외에는 시각이 분산되지 않기 위해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고 짙은 화장도 피한다.

브리핑 20분 전쯤이 되면 순간순간이 더욱 긴박해진다. 설명문, 키워드 자료, 기자 사전질의 내용이 주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고도로 집중해 내용을 파악한 후 통역 자리에 올라 한 문장 한 문장에 최선을 다한다. 신 통역사는 이 과정을 "마치 외줄을 열심히 타고 내려온 기분" 같다고 표현했다.

수어 통역 브리핑을 본 농인들의 반응

정부는 지난 2월 4일부터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 수어 통역사를 배치했다.

현재 신환희 통역사를 포함해 통역사 6명이 2명씩 팀을 이뤄 1주일에 2~3일씩 번갈아 통역을 맡는다.

이런 변화는 농인 사회에서 큰 의미다. 정보 전달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수어가 하나의 언어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통역사가 브리핑하는 사람과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큰 변화였다.

수어는 손동작을 비롯해 입 모양과 표정, 공간 등을 활용해 전달하는 언어다. 그래서 작은 화면보다는 큰 화면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시력이 좋지 않은 농인의 경우 화면이 작으면 어려움이 더욱 커진다.

신 통역사는 "많은 농인 분들이 실시간으로 자신의 언어인 수어가 나오는 것을 너무나 반가워하셨다"라며 "(화면 하단) 작은 창 속을 통해서 수어 통역을 보는 게 아니라, 동일하게 크게 볼 수 있어서 시원하다고 하셨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 브리핑뿐만 아니라 공공 민간 전 영역에서 작은 통역 창이 아닌 '큰 화면'으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했으면 한다는 바람도 많이 들었다"며 현장의 반응을 전했다.

수어 통역사들은 정부 브리핑 외에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여러 업무를 하고 있다.

시군구 단위 수어통역센터의 통역사들은 관내 농인들에게 영상 전화로 코로나19를 비롯해 재난 상황 및 유의점에 대해 안내를 하기도 한다. 농인들이 코로나19 검사나 진료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이들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교육, 의료 통역을 하거나, 사회 전반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며 농인 인권 활동을 하는 수어 통역사들도 있다.

여전히 시선 밖에 있는 '수어'

코로나19 브리핑을 계기로 인식이 바뀌고는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수어가 설 자리는 여전히 부족하다.

방송 영역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이후로 수어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지닌 언어가 됐음에도 개선할 부분은 많다.

코로나19 브리핑도 초반에는 막상 정부 관계자만 클로즈업된 채로 방송이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신 통역사는 "(방송에서) 수어로 브리핑을 볼 수 있겠구나 기대를 했는데 브리핑이 시작됐을 때 통역사가 사라져버려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면서 "현재도 방송국 편의에 따라 통역사가 편집되는 일이 많이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자막으로 처리하면 되는데 왜 수어 통역을 써야 하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일부 수어를 모른다거나, 자막이 편한 농인이 있긴 하다. 그러나 자막과 수어 통역은 동일 선상에 있지 않다.

"한글은 한국어를 문자로 표기한 것이지 한국 수어를 표기한 것이 아니에요. 농인에게는 제 2외국어와 같아요. 이런 이유로 수어 사용자들이 자막을 읽을 때 청인보다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수어 통역을 동반하는 프로그램도 별로 없다. 현재 방통위가 고시한 수어방송 의무 편성 비율은 5%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수어를 쓰는 농인들은 나머지 95% 정도에 해당하는 정보에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수어 통역이 붙는다 해도 주요 방송 시간대보다는 대부분 새벽이나 심야에 통역이 제공된다. 그는 "어떤 어린이 프로그램 방송국은 밤 11시 이후로 수어 통역을 제공해 농아동이 애니메이션을 보려면 그 시간 이후에 잠시 볼 수 있다"고 했다.

교육 현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수어 통역의 폭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수업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통역이 제공되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신 통역사는 "이런 제약들로 인해 농인이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현 사회 시스템이 청인들의 편의에 맞춰 소리 정보 중심으로 구성된 것은 아닌지 청인들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또,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일 역시 누구를 위한 수고와 배려가 아니라 일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농인과 농사회에 관심을...'

신 통역사는 무엇보다 농인에게 관심을 보여달라는 말을 강조했다.

"다양한 곳에서 저희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관심을 가져준다는 건 우리에게 고마운 일이에요. 하지만 단기간이 아닌 앞으로 지속적으로 저희 수어 통역사와 더불어 농인과 농사회에도 많은 관심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는 이번 브리핑 수어 통역을 '귀한 자리'라면서 앞으로 농인들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통역"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청인과 농인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더 욕심을 내자면 청인이 어제 만난 사람이 농인인 것을 일부러 생각해야 알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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