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명, 자살교 오명 씻는다"..지역 살리는 '착한 기업의 꿈'

문창석 기자 2020. 12.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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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경쟁시대 딥체인지⑥] 포스코에너지, 시천교에 '투신방지 난간'
태양광 전력은 야간 교량 전력에 환원..ESG 경영으로 사업기회 확대
지난 22일 인천시 서구 시천교에서 바라본 시천철교 위로 해가 지고 있다. © 뉴스1

(인천=뉴스1) 문창석 기자 = 서쪽 하늘에 빨갛게 스며든 저녁 햇살이 한겨울의 강을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두 마리의 오리는 물결을 따라 느릿느릿 강기슭으로 향했고, 푸들 한 마리와 산책 나온 노부부는 적갈색 참나무가 가득한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즈넉한 낙조는 구름 속을 빠져나와 이내 지평선 너머로 떨어졌다.

"아이러니한 일이네요." 기자의 말에 이영미 인천시 주무관은 안타까운 듯 말을 흐렸다. "경관이 아름답고 자전거를 타기에도 아주 좋아서 봄부터 늦가을까지 굉장히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이에요. 그런데도 여기에서 투신하려는 분들이 그렇게 많으니…"

경인 아라뱃길의 16개 교량 중 하나인 시천교(始川橋)는 인천시 서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검암경서동(약 4만5000명)의 북쪽과 남쪽을 중간에서 잇는 요충지다. 강원도 강릉 정동진의 대칭 지점인 '정서진(正西津)'으로 향하는 길목이라 햇볕이 좋은 날에는 석양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현재까지 경인 아라뱃길에서 발생한 158건의 투신 시도 중 29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절반에 가까운 11명의 사망자가 시천교에서 나왔다. 매년 1명이 넘는 사망사고가 꾸준히 발생한 셈이다. 현재 교량별 투신 시도 횟수는 파악되지 않지만, 인천시는 사망자와 비슷한 비율의 투신 시도가 시천교에서 있었던 것으로 본다. 지난 22일 시천나루 산책로에서 만난 한 시민은 "동네에선 시천(屍川)교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며 불안해했다.

교량 난간 높이가 낮았던 과거 시천교의 모습(포스코에너지 제공). © 뉴스1

유독 이곳에서 투신 시도가 많았던 이유는 교량 난간의 높이가 1.4미터(m)로 낮아서다. 일반적인 성인이라면 금방 난간 위로 뛰어 올라갈 수 있는 높이다. 주변 약 500m 거리에 전철역이 있어 외지에서 쉽게 도착할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인천시 서구에 액화천연가스(LNG) 복합발전소가 있는 포스코에너지는 이런 지역 문제에 눈을 돌렸다. 우선 인천시와 함께 난간 높이를 기존의 1.4m에서 2.8m로 두 배 높여 넘어갈 수 없게 했다.

혹시 난간 위로 오를 경우에도 대비했다. 난간 상부의 각도를 다리 안쪽으로 휘게 해 오르기 힘들게 만들었고, 최상부에는 바둑알 모양의 회전 롤러를 설치했다. 굳이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더라도 손이 미끄러져 다리 안쪽 인도로 떨어지게 되는 구조다.

포스코에너지와 인천시가 시천교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시설 융합형 투신방지 안전난간. 난간 상단에는 스테인리스 바와 회전 롤러가, 하단에는 태양광 모듈과 발광다이오드(LED)가 설치돼 있다. © 뉴스1

난간 하부에는 포스코에서 생산한 파란색·노란색·빨간색의 컬러 태양광 모듈과 발광다이오드(LED)를 설치했다. 태양광 시설에서 낮 동안 생산한 전력을 모아 밤에 LED를 켜는 방식으로, 저녁 시간대 경관성을 확보하고 보행 환경도 개선했다.

이 주무관은 "그동안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경찰과도 많은 논의를 했지만 투신을 막을 수 있는 특별한 대책이 없었다"며 "늘 걱정했던 난간을 높인 만큼 이제 투신 시도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완공된 시설이어서 투신 방지 효과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비슷한 사례를 통해 짐작할 수는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마포대교 난간에 안전 시설물을 설치하자 다음 해인 2017년에는 투신을 시도한 사람이 22.7% 감소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30명이 사망한 경남 창원 마창대교에선 이번 시천교처럼 난간을 높이고 회전 롤러를 설치하자 이후 1년 동안 한 건의 투신 시도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천교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켜진 모습. © 뉴스1

이번 시천교 안전난간 설치는 기업이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다리에 설치된 투신 방지 시설은 모두 지자체가 추진했는데, 시천교처럼 민·관이 협력한 건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업의 아이디어는 포스코에너지가 '회사의 역량을 활용해 지역의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주제로 실시한 임직원 대상 공모전에서 나왔다.

이 사업이 포스코에너지의 수익 증진과 직결되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업의 지속성과 건전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볼 때 기업이 해당 지역에서 어느 정도의 신뢰를 받고 있는지, 어떤 잠재적인 위험이 있는지 등은 투자를 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다.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가 단순히 직원과 고객뿐만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 등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 활동이 이뤄지는 지역 사회(Society)의 숙제를 해결한 건 앞으로 더 많은 사업 기회를 가져올 것이라는 평가다. 이 주무관은 "그동안 사고자가 많이 발생한 시천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이젠 그런 이미지를 벗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천교로 들어서는 입구 바닥에 자살 예방을 당부하는 로고 라이트가 투사되고 있다. © 뉴스1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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